[서른 살이 묻는다] 5人의 동갑내기 일·사랑·재테크 등 고민과 희망 나눠

# '설운 서른'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서른은 서럽다. 모험과 도전의 20대를 거친 서른 살들은 힘겹게 사회에 적응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실험 대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서른 살. 이 때 시행착오는 도태의 동의어다. 때문에 모든 선택에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고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서른을 '제2의 사춘기'라고 했던가. 마음은 여전히 20대지만 기성세대의 틀 안에 몸과 사고를 맞춰야 하는 격변의 서른 살. 그럼에도 나름의 희망과 계획을 가지고 30대를 살아갈 다섯 명의 서른 살들이 모여 서로의 고충을 나눠보았다.

서른 살 신입생, 지난 반 년을 돌아보면

# 가볍게 시작해보죠. 서른이 되니까 좋은 점이 있나요?

병수 : 20대 후반에 '30대를 맞기 전에 해야 할 것들'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고,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 있었는데, 막상 30대에 들어서니까 다시 뭔가 시작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아요. 채워지는 느낌도 있고, 마음의 부담감이 덜어진 거 같아요.

화영 :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서른을 넘기게 됐는데, 결혼 후에는 이전에 고민하던 게,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닌 게 되더라구요. 일에 대한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이 이젠 이 일을 해서 좀 더 돈을 벌고, 이 가정이 행복하게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로 바뀌면서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고민하는 게 더 낫다고 해야 할까.

승연 :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미혼녀보다 기혼녀가 높대요.

화영 : 결혼 전에는 회사의 고마움을 몰랐어요.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니까 돈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정생활을 해보니 돈 들어갈 데가 굉장히 많아서 회사가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일이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만족도도 높아지는 거 같아요.

# 회사를 그만두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게 서른 즈음이죠

승연 : 스물아홉 살에 한 작가님에게 고민을 얘기했더니, 그분 말씀이 20대 후반에는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고, 30대 초반에는 반반이래요. 조금씩 '자기'가 생겨나는 건데, 서른 다섯 살이 넘어가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게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서른이 되고 나니까 좀 알 거 같아요. 누군가 내게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물으면서 차후 계획에 대한 이런저런 예측을 할 때, 저에게 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조차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저한테 집중하게 된 거 같아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데, 서른이 되면서 가장 고마운 게 남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병수 :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가지 느낌이 드는 거 같아요. 지금처럼 주기적인 삶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한 편으로는 대안이 뭔데? 하는 시기심도 생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당차게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부럽죠.

서른 살의 고민, 우정, 연애, 결혼, 그리고 재테크

# 서른이면 역시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때인데요

슬기 : 전 연애는 할 만큼 한 거 같아요. 헤어졌던 이유가 하나씩 집안과 부딪히는 게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제 주변에도 종교나 집안과 부딪혀서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래서 선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저희 부모님도 선으로 결혼하셔서 잘 사시고 계시거든요.

희경 : 결혼에 대한 조급증은 없어요.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만나려고 굳이 노력하지도 않구요. 지금은 일에 열중하고 싶어요.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도 많아서 그다지 급하게 생각되지도 않네요.

승연 : 저는 8년 정도 만난 친구가 있어요. 중간에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했구요. 재미있는 건, 20대 후반에 소개팅을 했는데, 20대 중반의 만남과 너무 다른 거에요. 남자들이 계산을 너무 하는 게 보이는 거에요. (슬기: 여우지요. 자기도 모르게 계산이 되는 거에요) 그리고 여덟 번을 만났는데 안 사귀어요. 그래서 20대 초반에 만난 남자가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뭔가요?

승연 : 단 한 번도 그동안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 조금 외로워졌어요. 약간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했고.

화영 : 저는 어릴 때부터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어요. 우리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 않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가 결혼을 했는데, 나중엔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은 가족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말이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친밀함은 없어도 결국은 날 챙겨주는 사람들은 가족뿐인 거 같아요.

병수 : 원래는 결혼을 서른 다섯쯤 하려고 했어요. 아내가 동갑인데, 아내 친구들이 스물일곱 살부터 시집을 가는 거에요. 그걸 봐오면서 많이 싸웠어요. 그러다 스물아홉에 결정적인 순간이 왔어요. 결혼할 마음이 없으면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헤어진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는 거에요. 그날로 예식장 예약했죠. 지금 꽉 잡혀 살아요. 한 달 용돈 3만원이에요. (일동 경악)

화영 : 저는 남편 용돈 15만원 주고 있는데. 깎아야 하나(웃음)

#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을 나이이기도 하죠.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병수 : 재작년에 펀드 많이 했잖아요. 본전도 못 찾고 뺐지요. 80% 잃고. 해외 펀드 쪽으로 많이 했어요. 재테크도 그렇게 망해봐야지 공부하게 되고. 그래서 요즘 이를 갈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주식 공부를 하고 있어요.

화영 : 저는 제 뜻과 무관하게 통장이 저한테 다 왔는데, 사실 돈 관리하기 싫었거든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돈에 대해서 관심 있다거나 돈을 불려야지, 하는 욕심이 없어서 '수입의 얼마를 적금하고 적금할 때는 금리 높은 데다 넣어야지' 정도의 상식만 있었는데, 막상 결혼을 하니 수입도 두 배가 되고 쓰는 곳도 많아지고, 5년 정도의 계획이 나오는 거에요. 결혼 전이라면 그 식으로 하면 안 될 거 같고 공부해야 할 거 같아서 경제신문도 열심히 읽고, 블로그에서 정보도 얻고,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모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거에요.

# 재테크해서 가장 하고 싶은 건 뭔가요?

화영 : 저희 집은 전세인데, 아쉬운 게 바닥도 고치고 여기저기 꾸미고 싶은데 우리집도 아닌 데 돈을 쓰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내 집을 빨리 사서 가족에 맞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혼 전에는 집에 뭐가 중요한가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까 뭐든 나의 소유로 있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병수 : 특히나 집이요. 저도 그런 관념이 별로 없었는데, 기왕이면 내 집이고, 기왕이면 역세권, 또 기왕이면 애들 교육하기 좋은 환경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희경 : 저는 부동산에 관심이 좀 있는데, 결혼을 하면 원룸에서 남편과 살고 다른 돈으로는 집을 사서 월세 놓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주거보다는 재테크의 한 방법으로 생각해요.

지나온 20대, 살아갈 30대

#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뭔가요?

희경 : 저는 오히려 스물 여덟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서른이면 내 인생 꺾어지는데, 이뤄놓은 것도 없고. 저는 연애보다도 일 적인 부분이 컸어요.

슬기 : 저 역시 이뤄놓은 것은 없지만 여전히 남자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서 고민을 많이 했죠. 멘토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다들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요즘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서른에 관한 책도 읽어봤지만 길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승연 : 전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읽고 흥미로워서 김혜남 선생님을 인터뷰했어요. 감동적이었던 문구는 '무엇이든 네가 옳다'는 거였죠. 스물 아홉 살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왔고 이제는 그걸 즐겼으면 좋겠는데, 제 안에서는 '이건 네 길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죠.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슬기 : 제가 지금 그래요. 제가 어디에서도 잘 잤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도 쿨쿨 자서 상사들한테 혼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잠을 잘 못 자요.

승연 : 그렇다고 해서 남들 눈에 비치는 내 현실이 20대에 생각했던 완벽한 커리어우먼은 또 아닌 거죠. 실무는 넘치고, 일은 창의적이지 않고, 아랫사람은 부리기 힘들고.

화영 : 공감해요. 저 같은 경우는 위에서 일을 시키면 일단 '알겠습니다'했거든요. 그런데 회사 후배들은 제가 일을 시키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일일이 다 알려달라고 해요. 답답하죠. 걱정도 되는데, 야단칠 여력이 없어요. 내 일도 바쁘고, 나이가 어리지도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신경을 끄게 되고

슬기 : 조직 사회에서 하나의 미션을 가지고 끌고 가야 하는데, 점점 힘드네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팀의 업무가 융화되어야 하는데, 그걸 제가 못 끌어가고 있으니까 그게 더 힘들고. 그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거 같아요. 저흰 외국계 기업이라 일을 못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즉각 아웃 당하는 구조에요. 얼마 전에도 한 후배가 문제가 많아서 해직시켰는데 위에선 잘했다고 하지만 제 마음은 힘들죠.

# 20대를 돌아보면 어떤 아쉬움 같은 게 남나요?

희경 : 저는 올해 들어서, '죽기 전에 해야 할 100가지' 목록을 쓰고 있는데, 아직 30개밖에 못 적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렇게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를 회상하기 보다는 앞으로 뭘 할까를 더 생각하게 되게 되요. 오히려 지금이 저의 황금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행복해 보인다며 부러워하는 좌중) 또 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승연 : 지금 그 일을 20대에도 쭉 해오셨나 봐요.(희경 : 네.) 전 20대 때 너무 모범적인 생활을 해왔나봐요. 학점, 토익, 배낭여행, 연수처럼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쌓아온 거에요. 그렇게 안 살았으면 이제 와서 회사를 그만두진 않았을 거에요. 20대에 영화에 관심이 많으면,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기자가 되고 싶으면 언론고시를 쭉 준비했어야 했는데. 위험성을 배제하면서 살다 보니, 너무 노멀한 모습을 갖게 된 거죠. 그게 아쉬워요.

# 30대는 40대를 위한 준비 기간이기도 하잖아요.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멋진 40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나요?

슬기 : 사실 하루하루 살기 급급해요.

화영 : 전 결혼은 했지만 삶이 무미건조해서. 쉬는 날은 하루 종일 남편이랑 티비 보면서 있기도 해요. 그게 싫어서 둘이 같이 할 만한 취미를 찾는 중이에요. 헬스도 며칠 전에 시작했고, 사진 찍으러 다니려고 카메라도 샀어요(웃음). 뭔가 같이 하는 재미를 들여놔야 앞으로 부부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취미가 즐긴다기보다 공부라는 인식이 있는 거 같아요.

슬기 : 맞아요. 얼마 전에 한 친구를 만났거든요. 그들도 서른 살 동갑내기 부부인데, '너희 뭐하고 사냐'고 물어보니까 중국어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년에 중국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그때 쓸 수도 있고 나중에 자녀가 태어나면 그 아이들은 제2,3외국어까지 배울 텐데, 무시당하지도 않는다는 거죠. 너무 계산하면서 고달프게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 한국에서 서른으로 살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요?

병수 : 전 학생 때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취업준비 하면서 나와는 별개의 세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죠.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아내랑 같이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분향을 했거든요. 그런 게 있어요. 뭔가 사회적 책임은 느껴지고, 동참하고 싶은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보니 이대로여도 될까. 거기서 오는 안타까움이 크죠.

화영 : 공감이 되는 게, 지금 이 사회는 저희가 만든 사회는 아니잖아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인데, 이제 앞으로의 사회는 저희가 책임을 지고 목소리를 내면서 만들어 가야 하죠. 민감한 사안들이 많잖아요. 4대강 유역 사업이라던가, 광우병 문제라던가.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내가 해서 뭐가 변하겠어'라는 생각과 그래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는 그런 상태예요.

슬기 : 회사도 그렇고, 요즘 다니는 학교도 그렇고 중간에서 소통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위치인 거죠. 하지만 저도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승연 : 저는 사실, 공지영 작가의 옛날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우연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다시 읽고 깜짝 놀랐어요. 주인공인 서른 즈음의 여자 세 명이 다들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끼고 있더라고요. 나는 지금도 어린애 같은데. 그 당시의 서른이 그런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서른은 너무나 풋풋한 거 같아요.

화영 : 저도 결혼하면서 역할이 늘어났잖아요. 며느리와 아내란 역할이요. 하지만 저도 아기 계획을 뒤로 미룬 이유가 두 개의 역할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엄마로서의 역할까지 늘어나면 제대로 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렇다면 사회에 바라는 점은 뭐가 있나요?

화영 : 가진 사람들이 자기 것을 좀 더 내놓을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좀 더 나눌 수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보여지거든요.

승연 : 다양한 사회였으면 해요. 살아가는 방식에 표준전과처럼 답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병수 : 전 회사에서 많이 느끼는 건데, 한번 실수하면 그에 따른 폐해가 너무 큰 거죠. 부담이 크다 보니, 창의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검증된 것을 반복 적용하게 돼요. 미국은 패자부활전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인 거 같아요.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는 회사가 극소수인데, 그럼에도 실패한 경험이 큰 자산으로 남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패자에 대해 너무 야박한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여유도 없고. 사회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30대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세요?

승연 : 삼십 대는 제 길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해요. 20대에 어떤 게 내 길일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길을 찾고 쭉 나아갔으면 하죠.

슬기 : 그동안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간 느낌인데, 이제는 제 방식을 찾아갔으면 하죠.

승연 : 남들 의식하는 거랑 남을 배려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남들 의식하지 않고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행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