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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속 기독교의 재발견
기독교, 사회와 소통하다
'한국기독교의 역사3' '해방후…' '이덕주 교수가…' 등 출간 재조명 시도 눈에 띄어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지난 5월 나온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은 출간 자체가 상징적이다. 한국 기독교사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었음을 뜻할 뿐 아니라 기독교사에서 본격적으로 '현대'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다. 한국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더, 한국 현대사와 큰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서술하기에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올해 들어 한국 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의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눈에 띈다. 김포새소망교회 김명배 목사가 196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교회의 사회참여운동에 대해 서술한 <해방 후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중심으로 1960-1987>을 냈고,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의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에도 한국 기독교의 현대사가 언급된다.

이들 역사서는 한국 기독교와 한국 사회의 관련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기독교 내부를 자아 성찰함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두한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의 양세진 사무총장은 "특히 작년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논란을 거치며 기독교 내부에서는 '어떻게 사회와 관계 맺어야 하는가'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으며, 시민 사회가 성숙한 지금, 사회와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은 채 '진리'만을 주장하는 소통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회의가 기독교 내부에서도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이들 역사서가 쉽게 쓰인 것도 넓은 독자층을 의식한 결과다.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은 "교역자나 평신도는 물론이고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각주나 자료 인용은 최소화했다.

● 소통의 의지, 성찰을 낳다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은 1권(1989년)과 2권(1990년)이 나온 지 20년 만에 출간되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남북분단, 6.25 전쟁, 군사정권 등 아직도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논의되고 있는 역사적 시기에 대한 판단 없이 한국 기독교사를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책머리에서도 "민감하고 복잡한 시기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고 관점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또 같이 공부하며 고민해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종교인으로서의 성향이 강한 이명박 정부 들어 기독교 내부에서도 정권을 지지하고 비판하는 진영 간 차이가 첨예해졌다. 기독교인의 70~80%를 차지하는 보수 진영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를 지지했지만, 70~80년대 군사정권에 저항하면서 생겨난 진보 진영은 이명박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정치적으로도 교리적으로도 비판했다.

대안기독교 운동단체인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의 정강길 연구실장은 "기독교 내부 여러 진영이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각자 역사를 재조명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러한 필요성은 한국 기독교 전체의 위기의식과도 맞물린다. 기독교역사학회의 박명수 목사는 "기독교와 사회가 잘 소통하지 못하면서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럴 때 한국현대사에서 교회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연구들은 한국현대사 속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찰하며 교회와 국가, 교회와 정치 사이를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은 초대 정부에서 기독교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언급한다.

당시 국회의원, 정부 내 고위 관료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각각 약 21%, 38%였다는 수치를 통해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적지 않았다"는 성찰에 도달한다.

<해방 후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는 보수 진영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주장하며 3선 개헌 반대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등 진보진영의 사회참여를 비판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군사정권 등에 대한 친정부적 성향을 보인 모순을 직시하며,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에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감리회관'이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58년 봄, 기독교인의 표를 노린 자유당 이기붕 의장이 특혜를 주어 만들어졌다는 뒷이야기가 나온다.

2009 부활절 연합 예배에는 3만여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참석했다. 조영호기자 voldo@hk.co.kr


● 한국 기독교 전환기, 정체성 재설정 해야

이런 성찰의 내용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이진구 연구실장은 "정치권력화된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언론 등 외부로부터의 비판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기독교 내부의 자아성찰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진구 연구실장은 "교회 내부 개혁 세력의 혁신 노력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사회적 정체성을 재설정할 시기라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부 기득권화된 보수 진영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지난 정권을 비판하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한국 기독교를 "역사를 퇴보시킨다"는 외부의 비판에 직면하게 한 탓도 있다.

이진구 연구실장은 "종교는 시대의 예언자이자 선각자로서 이상적인 세상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 기독교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정강길 연구실장 역시 지금이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기독교의 전환기"라고 설명했다. 기독교의 진원지인 유럽과 미국에서도 기독교 신자 비율이 급감하는 등 기독교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착화 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 등 보수적 기독교 역사관에서 평가 절하되었던 비주류 신학적 움직임들이 최근 출간된 역사서 속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새로운 기독교의 지향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근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사상으로서, 기독교에 동양 철학을 접목시킨 류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과도 궤를 같이 한다. 민족 문화, 현실에 관심을 두고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이들 신학이 주류 기독교의 한계를 객관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한국 사회 패러다임으로서 기독교 공론화의 의의

이들 역사서의 내용에는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동 집필된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은 그 때문에 "단일한 관점으로 쓰이기 어려웠다"(이진구 연구실장)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진보의 입장에서 많이 서술됐다"(박명수 목사)는 아쉬움을 표하는 쪽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 기독교의 위상과 방향성을 공론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기독교 내외부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종교는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패러다임이며, 특히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모순마저 공유해온 한국 기독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사회의 대표적 초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70년대에 일어난 한국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의 배경과 부작용에 대한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의 서술은 한국 사회 전체의 상황을 통렬하게 압축한다.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민주적 정치 행위를 탄압한 군사정권 하에서의 욕구불만과 분배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진 경제성장이 낳은 상대적 박탈감, 이 과정에서 목격한 도덕과 원칙의 파괴,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붕괴와 그로 인한 불안 등은 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었고 안식처로서의 종교는 "현세적, 물질적 축복을 약속하며 강력한 보상적 기제로 작동했다."

이 와중에 상당수의 기독교 교회 역시 "적극적 사고, 성공의 복음, 풍요의 복음 등 자본주의화된 축복의 메시지"를 통해 번창했으며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아 교세 확장 운동이 활발해진 1970년대에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급격한 물량적 성장이 교단 내부 결속력이나 기독교 전체 협력관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많은 교회들은 각 교회의 유지와 확장에 몰두했고, "이기적인 개교회주의"가 나타났다. 기독교 교회도 한국 현대사의 아노미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이 역사서들의 제언은 곧 한국 사회의 보편적 정신, 패러다임에 대한 제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성장에 집착하면서 놓친 것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 감화력이었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도덕적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해방 후 일제잔재를 충분히 청산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중략)

이후 이승만 정부 시절 나타났던 독재 세력과 교회의 밀월관계, 군사독재 기간 동안 불의 앞에서 대부분의 교회가 유지했던 긴 침묵, 그리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연루되었던 각종 비리 사건은 한국교회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시키고 말았다.(중략)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에 달려있다."(<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

"대부분의 한국개신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사회참여보다 개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했고, 기독교의 본질을 복음전도와 더불어 사회참여의 역동적 관계로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특히 대부분의 보수적 성향의 교회 지도자들은 왜곡된 형태의 정교분리주의를 주장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역사와 사회에 무관한 타계적인 것으로 설교하였고 부도덕한 세속권세에 묵종하기도 하였다.(중략)

이러한 결과의 근원적 이유는 한국교회의 사회, 정치신학의 부재와 교파분열에서 온다.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독교의 사회윤리가 무엇인지? 정치윤리가 무엇인지? 에 대한 성찰을 가지지 못했고, 단지 개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했다.(중략) 개혁교회 전통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 사회윤리 혹은 정치윤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해방 후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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