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그 확장과 진화] 가요서 영화·드라마·책·물건·예술작품으로 영역 넓혀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허경영을 불러봐 넌 웃을 수 있고/ 허경영을 불러봐 넌 시험 합격해.’

최근 가수로 데뷔한 경제공화당 허경영 총재의 디지털 싱글곡 ‘콜미(call me)’ 가사의 일부다. 지난 대선에서 파격적인 공약으로‘허본좌’열풍을 일으켰던 그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자마자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난 그 때문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콜미’는 싸이월드 배경음악에서 한때 1위를 차지했고 여전히 반응이 뜨겁다. 이 노래에 호감을 표하는 연령대도 10대부터 40대 이상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그가 안무한 무중력춤과 오링춤도 화제다.

웃겨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그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개그맨이나 코미디언 출신인지 여부’를 묻거나‘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없다’에 대한 논의가 오갈 정도로 허경영은 현재 이슈의 중심에 있다. 마이클 잭슨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혼과 사망 직전에 교신했다는 사이비 종교적 발언도 한편에서는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정치인에서 엔터테이너로 끊임없이 호기심과 유머를 자극하는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웬만한 스타를 넘어선다. 하나의 팬덤현상이다. ‘허경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팬(fan)에 집합적 접미사 덤(dom)을 합성한 팬덤은 전통적으로 스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팬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연예인 외에도 정치인이나 영화, 드라마, 책, 물건, 문화예술 작품에 대해서까지도 그 영역은 확장되었다. 해리포터, 미드, 앙상블 디토를 중심으로 한 젊은 남성 클래식 연주자들, 닌텐도 아이팟과 같은 IT기기까지 확장되고 있다.

가히 팬덤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이미 팬덤문화는 더 이상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나 하위문화가 아닌 것이다. 허경영 역시 확산된 팬덤의 독특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위) 빅뱅 (아래) 원더걸스

팬덤이 이미 대중문화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여전히 서태지에서 증폭된 이후 현재 빅뱅, 동방신기,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의 가요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존 10대 팬 중심의 가요계는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20-30대들이 중추적인 역할자로 떠오르면서 대중음악의 팬클럽 문화도 바뀌어갔다.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은 그들을 수동적인 팬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화 재생산자로의 변신을 가속화했다. 그들은 좋아하는 스타의 생일이나 드라마 종방 등의 특별한 날에 신문 광고를 통해 스타들을 축하하고 격려하고 위로한다.

좋아하는 스타의 그림을 그리는 팬 아트와 그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짓는 팬 픽은 팬들이 직접 생산, 가공하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여기에 UCC까지 가세하면서 스타의 이미지는 무한 변주되었다. 원더걸스의 히트곡‘텔미’의 경우, 안무를 따라하는 이들이 여고생, 경찰, 남중생, 게다가 건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스타의 마케팅이나 활동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은 기획사에 심심찮게 반영된다. 때론 스타의 소속 단체가 하지 못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일까지도 척척 해내기도 한다. 국가대표 피겨 스케이터 김나영 선수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리는 5차 그랑프리에 어렵사리 참가할 수 있었다.

기존에 참가하기로 했던 선수가 기권하면서 김나영 선수에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던 한국빙상연맹을 대신해 팬들이 직접 러시아에 연락해 초청장을 받아냈다. 한국빙상연맹의 업무태만과 함께 과거와는 다른 팬들의 영향력과 적극성을 확인한 사례가 됐다.

소녀시대를 추종하는 ‘삼촌부대’의 탄생에서 볼 수 있는 연령층의 확대와 피겨 스케이트 팬들에게서 보여지는 문화적 주체자로의 변신, 그리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영역의 확대와 변이. 대중문화의 한 켠에서 태어난 팬덤문화는 이제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사람과 타 영역에 친화적인 성격은 이미 태생부터 예견되었는지 모른다.

일찍이 팬덤문화에 주목했던 문화이론가 존 피스크는 이렇게 말했다.‘팬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대량 생산되어 대량 분배된 오락의 레퍼토리 가운데 특정 연기자나 서사 혹은 장르를 선택하여 자신들의 문화 속에 수용하는 현상을 보인다. 선택된 것들은 더 강렬한 즐거움과 의미를 발생시키는 대중문화로 재가공된다.’ 팬덤의 확장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열려있는 셈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