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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문화의 새로운 세계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팬덤’은 연예계 유명 스타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의 문화이다.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세계 최대의 팬클럽 집단인 ‘카시오페아’, 소녀 팝의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소녀시대의 ‘소시팬덤’, 피겨 요정 김연아를 좋아하는 ‘승냥이’, 그리고 서태지의 영원한 동반자 ‘태지매니아’ 등 팬덤은 스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문화로 인식되어 온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모든 팬덤 문화는 스타를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팬덤의 어원은 ‘열광적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어의 ‘파나틱’(fanatic)과 특정한 세력권을 의미하는 ‘덤’(dom)이 합쳐진 말이다. 말하자면 팬덤은 특정한 대상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진 집단의 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 이때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연예인만이 아니라 예술작품, 발명품, 기호품, 도시, 음식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팬덤이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스포츠,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에서 특정한 물건, 장소,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는 것은 분명 팬덤문화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예컨대 추리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애독자, 포도주를 좋아하는 애주가, 고성능 스피커를 좋아하는 오디오광, 새로운 전자제품을 앞서서 소비하고 싶은 전자광 등도 넓은 의미에서 팬덤 문화를 즐기는 문화부족이라 할 만하다.

팬덤문화를 이렇게 확대해서 정의하면 혹자는 ‘매니아 문화’나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특정한 기호품에 대한 팬덤은 내용 면에서는 매니아 문화나 오타쿠 문화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이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다르다. ‘매니아’나 ‘오타쿠’가 특정한 기호품을 좋아하는 개인들의 독특한 취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팬덤은 기호품과 개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적인 문화현상에 주목한다.

가령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집단들의 문화를 오타쿠가 아닌 팬덤으로 바라볼 때는 공포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의 정도를 넘어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집단들의 사회적 의미와 파장효과에 주목한다. 오타쿠 문화가 개인주의적인 문화취향을 강조한다면 팬덤문화는 특정한 문화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집단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팬덤문화 세계가 이렇게 확장되는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의미가 있을까?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특정한 기호품을 스타처럼 좋아하는 이유는 개성 있는 생활을 하고 싶은 개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과도한 관심 때문이라는 점이다. 가령 애플사의 ‘아이폰’(iphone)이나 삼성의 ‘햅틱’(Haptic)과 같은 새로운 휴대폰에 대한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은 새로운 전자제품들을 빨리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의 품격을 높이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다기능 휴대폰 아이폰의 출시에 대해 “이것은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욕망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아이폰 출시에 맞춰 신제품을 먼저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긴 행렬은 흡사 아이돌 스타들의 콘서트에서 열성 팬들이 하는 행동을 연상케 한다. 이른바 새로운 전자제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을 일컫는 ‘얼리어답터’(early-adopter)라는 용어는 전자복제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문화부족들이다.



1-소녀시대
2-햅틱
3-아이폰3G
4-아이팟 터치


마치 동방신기 팬은 펄레드, 빅뱅 팬은 엘로우, 소녀시대 팬은 파스텔 로즈라는 색깔로 다른 팬덤과 차별화하듯 기호품 팬덤은 자신이 선호하는 제품을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의 구별짓기를 시도한다. 이는 나이, 주소, 취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이 기호품에 대한 선호만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신식 기호품은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식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를 좋아하는 팬덤과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강한 소유욕의 대상이다.

따라서 강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기호품 팬덤현상은 포스트 소비문화의 중요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소비문화는 단순히 제품을 실용적으로 소비하는 욕구와는 다르게 소비제품에 대한 정보적 가치를 중시한다. 사실 어떤 점에서 포스트-소비주의 시대에 제품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로 존재한다. 제품에 대한 미디어의 과도한 홍보와 제품의 소비를 조장하는 온라인 정보들의 범람, 그리고 제품 소비의 확대를 위해 끝임 없이 재생산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보들의 흐름을 보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팬덤의 특이성을 갖고 있다.

정작 소비하고 있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정보이다. 기호품 팬덤은 전자제품에 대한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제품을 구입한 이후에도 동일한 제품을 선호하는 커뮤니티에서 일정한 유대감을 갖길 원한다. 기호품 팬덤은 인간 대신에 제품, 물질 대신에 정보,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소비주의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물신숭배 현상을 보여준다.

물론 동시대 기호품 팬덤현상 중에는 상품 물신숭배와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친밀감 있는 문화도 존재한다. 네팔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월드뮤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개성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화적 취향들은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팬덤문화의 사례들이다. 팬덤문화가 오로지 ‘오빠’와 ‘상품’을 위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것만 아니라 제3세계를 고민하고, 무역의 불평등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을 대변해 준다. 이러한 팬덤 문화는 다원화된 문화세계화의 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 팬덤문화는 다원화되고 있다.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을 표현하는 10대들의 팬문화는 20대 언니들의 팬문화, 30대의 아줌마 팬문화로 확대되고 있다. 한때 팬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에 열광했지만, 지금은 드라마 자체를 오랫동안 동경하는 이른바 ‘폐인’의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팬들의 동경은 스타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의 문화적 연대감으로 확장된다.

가끔 상품에 대한 지독한 물신숭배로 보이지만, 팬덤문화의 새로운 세계는 개인의 문화적 삶을 위해 생산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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