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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서 하루키의 의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 84>가 25일 국내 출간된다. 헬스클럽 강사인 아오마메(?豆)와 소설가 지망생이자 재수학원 강사인 덴고(天吾)의 시선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이 소설은 신흥종교집단의 내부폭력과 잔인성, 20년 만에 재회한 두 초등학교 동창생의 사랑이야기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진다.

지난 5월 일본에서 출간 된 후 두 달 만에 200만부를 돌파한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서도 판권계약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을 출간하는 문학동네를 비롯해 민음사, 문학사상사, 열린책들 등 10여개 출판사가 경쟁을 벌였고 언론은 출간 두 달 전부터 기사를 쏟아냈다. 하루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집착으로 비춰질 정도다.

그렇다면 한국문학계에서 하루키는 어떤 의미일까? 작가들에게 하루키는 어떤 존재일까?

왜? 하루키에 열광했을까?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가 국내 출간된 건 1989년. 이 책은 1992년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등이 ‘하루키를 닮았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단번에 90년대 문학계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하루키 현상이 나타난 1990년대 중반을 이렇게 회상한다.

“제가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95년에는 마니아들이 있었죠. 작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타처럼,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현상. 일종의 팬덤 현상이었습니다.”

고려대 김춘미 교수는 <한국에서의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하루키 문학의 수용양상을 밝히는 것은 90년대 한국문학 연구에 필요불가결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선이 사라졌다. 일상생활의 심미화현상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았고, 그 중심에는 하루키가 있었다. 거대 담론이 움츠러든 시점에 개인을 화두로 삼은 하루키의 작품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김춘미 교수는 같은 글에서 “거대담론에서 개인으로 회귀하고 자유롭고 싶다고 희구하던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하루키 소설은 정치사회소설이 아니라도 문학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 준 것”이라고 분석한다. 박혜경 문학평론가 역시 “민족, 민중과 같은 거대 담론이 상실되는 공허감, 이념의 진공 사태에서 하루키는 하나의 대안이었다”고 말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하루키 현상은 90년대 문학계의 여러 현실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90년대 문학계가 하루키 한 작가의 영향 때문에 바뀌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 화두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작가들이 고민하는 중에 하루키라는 모델을 발견했고, 이들에게 자극이 된 건 사실입니다. 독자들의 요구와 문학사의 흐름, 하루키란 작가의 출현이 복합적으로 맞아 떨어진 거죠.”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사이

신형철 평론가는 하루키의 작품을 “철학성과 일상성, 신화성을 현학적이지 않게 결합한다”고 말한다. 철학적이며 실존적인 주제를 세밀한 감정 묘사로 드러낸다. 신화성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단번에 읽히는 이유는 추상적 담론을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청년기의 화자, 올드팝과 스파게티로 대표되는 대중 취향의 반영, 농도 짙은 감정의 묘사 등 ‘하루키 표’ 소설은 단 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상업적 성공은 언제나 하루키 소설의 작품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실제 일본학계에서는 몇몇 평론가들은 하루키 소설을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사이에 놓인 ‘중간소설’로 분류하기도 한다.

국내 출판계에서는 공지영, 신경숙, 박민규 등이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에 섰다는 점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가들은 하루키와 문학적 화두, 서사 방식, 문체에서 닮은 면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이 문단에 등장한 것은 하루키가 한국문학계의 아이콘이 됐던 90년대 초반이며, 대표적인 2000년대 작가인 박민규 역시 대학시절 ‘하루키 현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40대 작가다. 국내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작가들의 논쟁(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중문학이 순수문학으로 출판시장에 소개된다는 문제 제기)이 바로 하루키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이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하루키에 대한 많은 오해 중 하나가 작품이 대중성이 있기 때문에, 그를 대중소설 작가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서 대중문학적 요소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명원 평론가는 “하루키 소설이 대중문학의 외양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의 세계문학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공지영을 비롯한 이들 작가 역시 상업적 성공이 보도될 때마다, 작품성이 논란이 되곤 했다는 점에서 역시 닮은꼴로 보인다.

하루키에 대한 이율배반적 감정

그렇다면 하루키는 이제 2000년대 한국문단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90년대 초반 작가들이 하루키 문학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면, 2000년대 작가들은 보다 다양한 해외작가들의 작품에서 롤모델을 찾고 있다. 즉, 90년대 초반 윤대녕, 장정일, 박일문의 작품과 같이 하루키 문학과 유사성을 가진 2000년대 젊은 작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문학 작품보다 서양문학 작품을 통해 습작을 하는 경우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많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작가들이 하루키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고 말한다. 2006년 교수신문의 ‘30대 문인 설문조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해외 작가 1위로 하루키가 꼽혔지만, 이는 하루키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는 설명이다.

박혜경 문학평론가는 “국내 문학의 화두가 거대 담론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하루키의 역할이 있었다. 9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국내 작가와 평론가들이 '하루키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루키에 대해 작가, 평론가, 출판사, 기자들이 갖는 이 집요한 관심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국문단에서 하루키의 영향력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일본에서 평가도 엇갈려


하루키가 대중문학 작가인가?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동시에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점에서 '일본의 헤밍웨이'로 통한다. 하루키의 문학성은 일본에서도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선 하루키의 데뷔작이자 군조신인상 수상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에 대해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마루야 사이치(丸谷 才一)는 미국문학의 영향을 지적하면서도 "이 신인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평했다. 마루야는 이후 하루키의 지지자로서 긍정적인 평론을 발표한다.

그러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후보가 된 81회 아쿠타가와상 심사에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와 하이쿠시인이자 소설가인 다키이 고사쿠(瀧井 孝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특히 다키이는 "번역소설을 많이 읽고 쓴 듯한 겉멋 든 버터 냄새 나는 작품"이라고 하루키의 문학을 비판하고 있다.

<1973년의 핀볼>이 후보로 올랐던 83회 아쿠타가와상 심사 때는 소설가인 요시유키 준노스케(吉行 淳之介)가 지지했지만 역시 유명소설가인 이노우에 히사시(井上 靖)와 평론가이자 작가인 나카무라 미쓰오(中村 光夫)의 반대로 선발되지 못했다.

그가 등단한 군조신인상과 수상후보로 올랐던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의 대표적인 순수문학상이다. 일부 국내 평론가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중문학 작가'라고 평가한 것과 달리 일본 내에서는 언제나 본격 문학권에서 논의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론가 가토 노리히로(加藤 典洋)는 하루키의 문학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한 학자로 그에 대한 연구서를 다수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 론>에서 "미국에서 높이 평가받는 <해변의 카프카>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작품은 일본 사회에 지금도 여전히 있는 불안정함과 으스스함, 불안을 상당히 정확하게 전 세계에 전달하고 있다"고 평한다.

신간<1Q84>에 대해서도 '지금 일본 소설과는 격이 다르다'는 말로 격찬을 보내고 있다. 평론가 후쿠다 가즈야(福田 和也)는 하루키를 "근대 일본의 대문호인 나쓰메 소세키 이후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평하기도 한다.

물론 비판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가라타니 고진(柄谷 行人)은 1980년대, 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 그려지는 '풍경'은 인간의 의사에 종속되는 인공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00년 서울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은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상품'을 창출했지만, 일본에서 문학은 끝났다"고 말했다.

역시 문학평론가인 와타나베 나오미(渡部 直己)는 하루키의 이야기방식을 수사학의 용어를 빌어 '돈절법'이라 평하며 작품 자체가 자기애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불문학자이자 유명평론가이며 도쿄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또한 하루키의 소설을 '결혼사기 소설'이라고 단언한다.

한편 일본 문단의 엇갈린 반응에 대해 평론가인 사이토 미나코(?藤 美奈子)는 <문단아이돌론>에서 단카이세대(전후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 하루키 역시 단카이세대에 속한다) 이전 세대인 평론가들이 하루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단카이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인 평론가들은 하루키의 소설에 열광하거나 긍정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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