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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홍대앞 변화상
  • 입력시간 : 2009/08/25 10:17:14
    수정시간 : 2009/08/25 10: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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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진한 초콜릿이다. 낡은 건물을 화사한 민트색 페인트로 칠한 가게에서 젊은 부부가 초콜릿을 팔고 있었다. 20대 후반밖에 안되어 보이는 남자는 상냥하고 느린 말투로 가볍게 투덜댔다. 초콜릿 가게가 맞긴 하지만 그보다는 친구들과 음악을 들으며 놀려고 연 곳인데 소문이 나는 바람에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손님들이 줄을 서 쉴 틈도 일한다는 것이다. 모든 창업자들의 꿈이 엉뚱한 곳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내게 홍대는 그런 곳이다. 나 좀 봐 달라고 떼 쓰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민트와 빨강으로 독특하게 꾸며진 실내가, 주인이 직접 찍은 벽에 걸린 풍경 사진이, 화장기 없는 여자가 만드는 재료를 속이지 않은 초콜릿이 내게는 홍대였다.”

홍대는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다는 말은 압구정이나 청담동에 넘겨주고 홍대에는 특이하다는 수식을 달아야겠다. 그렇게 해도 화낼 사람도 없는 곳이다. 통념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취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홍대로 모였다.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고 춤을 췄다.

그들만의 놀음판은 점점 커져 주시하는 이도, 찾는 이도 많아졌다. 주차장 골목은 바글바글해졌고 무엇보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좀 더 싼 작업실을 찾아 합정과 상수, 망원 쪽으로 이동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카페와 댄스 클럽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홍대가 변했다고 말했다. 상업화되었다고도 했다. 정말 홍대는 변했을까?

한국발 문화의 성지, 홍대

홍대 앞은 서울의 번화가 중 (전통 문화를 제외하고) 문화적 특성을 가진 유일한 장소다. 문화의 힘은 굳이 홍대를 예로 들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니치 빌리지와 소호는 지금처럼 벅적대기 전 예술가들의 둥지였고, 지금은 엄청나게 번화한 런던의 브릭 레인 역시 데미안 허스트와 뱅크시의 작업실이 있던 곳이다.

문화는 자본보다 강하다. 강호동이 뼈만 남은 이외수의 한 마디를 듣기 위해 그 산만한 덩치를 구부리듯이 원래 인간은 문화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눈 돌아가게 빠른 개발 속도 때문에 지역 문화라 할 만한 것이 거의 부재하고, 번화가라고는 돈 쓰는 곳밖에 없는 서울에서 홍대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서구 문화와 일본 문화는 강남을 중심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달고 있는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은 홍대가 유일하다고 하겠다.

‘홍대 문화는 XX다’ 라고 규정짓는 일은 홍대를 근거지로 삼아온 예술가들에 의해 종종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홍대는 끊임없이 변해 왔고 온갖 문화 예술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주류 같은 단어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외부인의 시선이 때론 쓸모 있을 때가 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내부인들의 자기성찰은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간 나머지 길을 잃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외부인의 간결한 판단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바깥에 비친 홍대의 이미지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주류 문화의 법칙을 비껴가도, 돈벌이나 성공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라도, 스스로 좋다고 여긴다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돈도 못 벌고 성공과도 동떨어졌다는 이미지도 덤으로 가지고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이 쓴 책 <홍대앞 새벽 세시>에서는 인디밴드 ‘크라잉 넛’의 등장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창법이나 가창력은 한 마디로 너무 미숙하고 유치해서 함께 작업하는 스탭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박자도 제대로 못 맞추는 데다가 툭하면 ‘삑사리’가 나는 그들은 기교의 측면에서 본다면 삼류 가수였다.

그러나 매끄러운 테크닉을 무력화시키는 진솔함, 날 것이 가진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들의 소리에 어떤 이들은 ‘사실은 이게 진짜 음악’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기완은 홍대 문화의 특성 중 하나로 아마추어리즘을 꼽는다.



1-홍대 라이브클럽
2-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3-홍대 앞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사진 : Michael-kay)
4-홍대 앞 몽마르뜨 언덕 뒤 '은하수 다방'


“이렇듯 아마추어리즘은 때로 전통적 메이저 신에서 유통되는 상대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규약이나 표준의 답답함을 뚫어내는 새로운 문법들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낸 다음, 그걸 작은 중심으로 정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크라잉 넛이 시초는 아니다. 산울림 때부터 지금의 장기하까지 그들의 무규칙성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진솔함이 우리를 즐거운 당혹감에 빠뜨리고 있다. 멋들어진 영어 간판이 유행할 때도 홍대에는 ‘푸른굴양식장’ 같은 푸르고 싱싱한 간판이 있었고 ‘여심(女心) 잡기’가 요식 업계의 불문율이 되었을 때도 금연 푯말을 붙이지 않는 카페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전문가적 노련함으로 무장한 주류 문화에 대한 무시 또는 무지. 그리고 결국 이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인디 음악이라는 말이 생겨난 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홍대 앞은 2002년 월드컵을 지나며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재미 있는 건 홍대에 반해서 온 사람들이 결국은 기존에 놀던 판을 이곳에서 다시 폈다는 것이다. 홍대역 주변을 중심으로 고깃집과 술집이 늘어섰고 한가롭던 주차장 거리는 카페와 옷 가게로 뒤덮였으며 라이브 클럽 대신 댄스 클럽이 들어섰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대학로나 강남역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한국 유일의 문화 특구가 사라졌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홍대를 오래 보아온 이들은 오히려 침착하다.

“마니아들만의 공간이 상업 지구로 또 관광 단지로 바뀌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입니다. 문제는 관광 단지화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광 단지가 되느냐 하는 것이죠.”

미술 평론가이자 상상마당의 전시 총기획을 맡고 있는 김노암 씨의 말이다. 홍대에서 거의 나고 자라다시피 한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아예 ‘홍대 변화설’ 자체를 부인한다.

“변했다고 하는 말은 적어도 이전에는 음악의 성지였다가 지금은 아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신촌 같은 곳을 두고 말이죠. 홍대는 아직도 소규모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공간입니다. 중심지에 카페와 댄스 클럽이 들어서고 작업실은 합정과 상수로 이동하면서 홍대 문화를 포괄하는 벨트가 넓어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본과 문화가 공존하는 이상 홍대가 그 문화적 성격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니아적 공간이 상업화 되는 건 필연”

2009년, 홍대 문화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팔릴 만큼 팔리고 있다.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벽장속 제습제는 벌썩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 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중>

랩인지 중얼거림인지 모를 장기하의 소리를 대중들은 이제 100% 수용한다. 수용할 뿐 아니라 열광하고 있다. 노래 속의 패배자 정신은 신선하고, 딱히 뛰어나지 않은 가창력도, 아이돌 가수들이 보여주는 절정의 테크닉에서 한참 동떨어진 안무도,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다 (그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어떤 안도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진짜든 흉내만 내든, 규율을 벗어난 것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홍대는 젊은이들 놀이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문제는 홍대다. 외부에서 홍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동안 홍대는 갑작스럽게 불어난 살들을 추슬러 다음 단계의 발전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홍대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 뒤에는 홍대는 계속 변해 왔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작업실 문화 다음에 펑크 록이 득세했고 그리고 프리 마켓, 카페 골목 등등. 뭐가 생겼고 뭐가 없어졌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새롭게 생긴 것들이 얼마나 문화적 소명에 충실하느냐가 관건이죠.”

다행인 것은 최근 홍대에 들어서고 있는 카페나 클럽들 중에는 홍대 문화에 공감하는 이들이 연 공간이 꽤 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새롭게 그려지는 홍대의 지형도에는 자본이 추가 되었다. 문화를 보호하고 사수하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다. 정부가 나서서 문화 구역을 지정할 때마다 그 지역의 문화는 정확한 확률로 급속히 변질됐다.

연극인들의 아지트였던 대학로는 문화 지구로 지정되자마자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극인들이 밀려나고 팔릴 만한 공연들만 판치는 곳으로 변했다.

홍대 문화를 키운 것은 팔할이 사람이다. 홍대 문화에 영향을 끼친 사람과 영향을 받은 사람, 사람이 이동하지 않는 이상 문화는 이들에 의해 어떻게든 흘러가고 발전하게 되어 있다. 홍대는 서투름까지 상품화시킨 외부의 홍대상에 신경 쓰지 말고 2009년의 진솔함과 날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사명이나 의무가 아니다. 이전에 하던 것처럼 진한 초콜릿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안 팔리면 친구와 노닥거리면 그 뿐이다.

도움말: 미술평론가 김노암,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참고 서적: 성기완 <홍대앞 새벽 세시> 사문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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