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1-Steal Life Series, 2009
2-Museum Display, 2009

먼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이 전시를 본다면, 일종의 ‘생활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할 법 하다. 일상적인 자잘한 집기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마 섬세하고 우아한 생김새에 끌리는 것 같은 컬렉터의 취향만 어렴풋할 뿐 진열품들 간 뚜렷한 닮은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전리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함경아 작가는 거의 10년간 전 세계 곳곳에서 컵과 그릇, 칼과 후추통 따위를 훔쳐 왔다. 이것들을 들고 다니며 또 비슷한 물건들과 슬쩍 바꿔치기 한 흔적을 남기는 것도 모자라( 시리즈) 이번엔 아예 대놓고 판을 벌였다.

이유는 있다. 이 전시장의 모델은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컬렉션을 구축한 유럽 강대국의 박물관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대 문화유산들이 뿌리 뽑힌 채 뿔뿔히 이들 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그러니 “폭력과 전쟁, 약탈”에 얼룩져 있는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역사에 비한다면 작가의 도둑질은 애교 수준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작가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욕망’뿐이 아니다. 이 아이러니의 정당화에 동참하고 있는 현대의 무감각도 이상한 일이다. “마치 욕망이라는 마취제를 맞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같다. 전리품들이 놓인 단정한 구도가 그 무감각을 대변하는 듯하다.

3-The Sharper and Fortune Teller, 2009
4-Museum Display, 2009
5, 6-Museum Display, 2009
7-Museum Display, 2009
8-Switched Stolen Object, 2002

이렇게 밀접한 욕망과 무감각의 공생관계를 작가는 나아가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낸다. 물건들을 17~18c 네덜란드 정물화처럼 연출하여 사진 찍은 것. 당시 정물화는 막 활발해진 식민지 개척과 해외 무역으로 축적한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그렸다. 함경아 작가의 정물화(Still life)는 그보다 더 솔직하거나, 혹은 그렇게까지 뻔뻔하지를 못해서 다.

함경아 개인전 <욕망과 마취>는 서울 종로구 화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 10월25일까지 열린다. 02)739-7067~706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