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생각한다] '천직 카페' ,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 '독도쿠키사업단' 등 새로운 시도

(사진 우측)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 행복설계아카데미 수료식

공무원이 한국인의 선호 직업 1위를 차지한 지 오래고, 대학생활은 대기업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기에 잠식당했으며 거의 모든 직장인이 실직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찾고, 벌이고 있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도, 앞날이 보장되어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일의 의미를 기억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세상과의 소통 통로, 나를 사랑하는 도구로서의 천직을 찾아

“직업 보험 가입하셨나요?”

‘행복한 밥벌이_천직을 찾아서’(http://cafe.naver.com/idealjob, 이하 ‘천직카페’)의 운영자 중 한 명인 김훈태 씨가 지난 7일 이 카페에 올린 글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을 많이 듭니다. 그런데 자기 직업을 위해서는 보험을 들고 있는지요?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어서 나만 잘 한다고 ‘내 인생이 항상 좋다’는 보장이 없죠. 지금 상황에서처럼요. 그래서 내성이 있는가, 자신의 직업에 위기가 닥칠 때 대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 씨가 주장하는 ‘내성’은 흔히 생각하듯 영어 실력이나 처세술이 아니다. 자신이 정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에 필요한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놓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알고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천직카페’는 천직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직업 체험의 기회를 나누는 커뮤니티다. 퇴직자의 전직을 지원하는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운영자들이 만들었다. 김훈태 씨는 “대기업이나 은행을 다니던 사람들도 퇴직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재취업의 기회가 너무 적더라. 그래서 회사 재직 중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된다. 운영자들의 목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이 서로 ‘멘토링’해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현재는 해외봉사활동 경험자, 여행작가, 뮤직 디렉터 등 몇몇 특이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이 멘토로 나서고 있다. 뮤직 디렉터인 박혜영 씨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멘토로 참여하게 된 예다. 그는 “이 직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 막막했던 나 자신이 떠오른다”며 이런 활동이 “스스로의 일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박영주 씨에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이 카페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사업에 뜻이 있었던 그는 지금 휴학을 하고 교육 서비스 관련 회사를 설립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결정을 학교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에는 “미래가 불확실한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자리에 취업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천직카페’ 회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인생 선배들이 많아서인지 대부분이 격려해주시더군요.”

‘천직카페’의 운영자들은 “천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 한다. 천직을 찾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두려움이다.

김훈태 씨는 “천직을 찾으러 왔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정적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경제적 수단일 뿐 아니라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는 통로이자 세상의 수많은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 그리고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후를 보장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퇴직 후 일

1959년 생인 박영규 씨는 올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저소득층 지역에 공공주택을 건설하고 지역 주민을 고용하는 등 주거 환경 개선과 건강한 경제 구조를 동시에 지향하는 대안적 건설 회사 ‘달팽이건설’의 상임이사가 된 것. 보수는 없다. 그는 “쉰 살을 맞아 더 이상 돈을 위해 일을 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기까지는 꾸준한 준비가 있었다. 원래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 20여 년간 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자신의 사업체를 꾸리는 동안에도 한 사회복지단체를 통해 후원 형식의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언젠가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직업학교를 다니며 시공, 용접, 중장비 기술 등을 배웠다.

이 모든 경험이 현재 일을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경제학과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회계, 인력 관리 등을 담당했던 경력도 ‘달팽이건설’의 살림을 꾸려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다.

퇴직 후 해외로 봉사활동을 하러 갈 계획이었던 박영규 씨가 달팽이 건설과 연을 맺은 것은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팀에서 운영하는 ‘행복설계 아카데미’ 과정에 참여하면서부터. 해피시니어는 퇴직자들이 자신의 경력을 살려 비영리단체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행복설계 아카데미’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기본 교육부터 현장 실습까지 포함된 ‘인재양성 프로그램’으로 현재 9기까지 운영되었다. 박영규 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퇴직자들이 자신의 연륜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박 씨에게 지금 이 일은 곧 삶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유난히 사회의 원로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다들 놓고 가는 것만 있지 가져가는 것은 없더라고요. 가져가려고 준비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누구에게 남길 것인가, 가 문제일 텐데 내 자식만을 위해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삶의 여러 단계마다 다양한 일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취업난에 시달리는 바람에 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젊은 세대를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설령 원하는 일자리를 갖지 못하더라도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고민하거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조금씩이나마 준비만 한다면 인생은 보장되거든요.”

경제 위기 넘는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일 네트워크

전국백수연대 대표인 주덕한 씨도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백수연대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독도쿠키사업단’을 꾸린 것. 청년 실업자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든다는 취지다. 노동부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받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쿠키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주 씨가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 NGO의 활동이다. “2004년부터 일본 NGO와 교류했는데, 그들이 빈 가게를 취약 계층이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을 하는 것을 보고 인상 깊었습니다. 여기서 일한 경험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독도쿠키사업단’의 직원은 총 25명. 청년 실업자와 퇴직자, 장애인 등 노동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단순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에서 영업, 홍보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해나간다. 다양한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보는 경험이 이들에겐 삶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독도쿠키사업단’은 현재의 경제 위기와 실업난, 극심한 경쟁 구도와 그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일의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다. 주 씨는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압박을 받고 있는 이런 상황은 혼자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 형식의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주덕한 씨는 회사를 그만둔 1996년 이후 백수로 지내며 백수연합을 만든 것은 물론 실업극복국민재단에서 운영한 청년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의 센터장을 지내는 등 한국 ‘백수사’의 산 증인 같은 인물. 그가 생각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각자가 갖고 있는 성공의 개념에 따라 일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보수가 안정적인 일을 선호하죠. 일이 생계유지에 중요하긴 하지만, 한국사회가 보수에 민감한 것은 그보다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 것이 과연 성공일까요?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작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그 판단을 미루기 때문인 듯해요. 특히 요즘 젊은 층들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년 실업자에게는 서경덕 ‘한국 홍보 전문가’를 예로 들어 오랫동안 한 분야를 파고들어 전문가가 되는 길, NGO 등 보수가 적더라도 의미 있는 일자리를 찾는 길을 제안했다. “일은 그 사람의 직장이 아니라 경력”이기 때문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