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영화 다시보기] 5번째 천만 영화 불구 이슈나 팬덤 없이 너무 조용

(사진 좌측) 영화 '해운대' 윤제균 감독

지난달 23일 영화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던 날, 인터넷의 반응은 ‘갸우뚱’이었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다섯 번째 천만 영화의 탄생을 보도했지만, 예전만큼 흥분된 어조는 아니었다.

천만을 앞둔 영화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방송과 신문은 하루하루 경과를 중계하듯 관객수에 주목해 대중에 전달했다. 그런데 <해운대>는 너무 조용하다. 차라리 해운대 해수욕장 뉴스가 더 데시벨이 높은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릴 정도다.

팬덤없는 천만 영화의 탄생

영화를 본 네티즌들은 의외로 재미있게 봤다는 의견도 냈지만, 대체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해운대에 발 담그러 가는 대신 '해운대 영화'나 보고 떼우려는 것 아니었을까’, ‘<디워> 때처럼 우리 거니까 몰아주자’, ‘천만 영화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와서 늦기 전에 보러갔다가 당했다’.

무조건적인 폄하보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한국 재난영화의 가능성과 CG의 발전 측면에서 진일보했다’, ‘흥행 감각만큼은 알아주는 감독이다. 이번에도 여름 흥행공식을 제대로 읽어낸 것’, ‘무난한 내용에, 여름에 딱 맞는 소재, 스타급 배우와 골고루 포진된 조연,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난 연출... 이만 하면 흥행할 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여하튼 천만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재관람을 했다는 말이나 그런 움직임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이제까지의 천만 영화와는 다른 현상이기도 하다. 보통 700~800만 정도가 되면 천만에 대한 기대와 함께 팬덤이 생겨나지만, <해운대>는 어떤 팬덤도 없이 조용히 천만 명을 채웠다. 관람 당 인원으로 따지면 <해운대>야말로 가장 ‘순도높은’천만 영화라는 재미있는 논리가 성립된다.

<해운대> 현상을 보는 시선들

평단에서도 ‘<해운대> 현상’을 해석하는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대체로 평론가들이 영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강유정 평론가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추격자>처럼 외래종 장르 영화가 한국적 정서로 토착화하는 데 성공했듯이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도 한국적 정서와 만나 융합하는 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는 <해운대>의 구체적인 정체성은 ‘재난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재난 코미디’. 윤제균 감독의 강점인 코미디가 ‘재난영화’라는 장르와 만났지만 여전히 영화의 포커스는 ‘코미디’에 있다는 지적이다.

관람 당시부터 ‘천만 영화’에 대한 느낌이 왔다는 김시무 평론가는 “천만 영화는 작품성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의성, 볼거리, 가족애 등이 적절히 합쳐져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최근 남해안과 일본 연안 사이에서 몇 차례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쓰나미가 예전처럼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게 된 상황도 <해운대>의 판타지에 현실성을 더해줬다고 해석한다.

반면 남다은 평론가는 사람들이 왜 보는지는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적절한 수준의 CG, 윤 감독 특유의 코미디와 드라마, 그로부터 파생되는 신파가 대중에 잘 먹혔다.” 한 마디로 지금 대중이 원하는 수준에 딱 맞게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

그는 “CG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고 드라마도 작위적이지만, 천만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에서 평론이 정색하고 말할 수 없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토로한다.

희망없는 현실의 가난한 대체재

이처럼 평단에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지점은 다르지만, <해운대>의 성공 원인을 영화 밖에서 찾는 부분에서는 대체로 일치를 보이고 있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기댈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고, 마침 <해운대>가 그런 대상이 됐다는 것.

김시무 평론가는 “최근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고 사회적으로 구심점이 없어져버려 허해진 상태에서 대중이 ‘집중할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분석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막막한 현실은 앞으로도 희망이 없고, 월드컵 때처럼 뭔가 국민을 대단결시킬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했는데 그럭저럭 ‘볼 만한’영화가 등장해 거기에 기댔다는 것이다.

‘볼 만한’영화라는 데 동의한다는 남다은 평론가는 그래서 이 영화를 <괴물>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한 번 보고 나오면 되는 오락영화 문법에 충실한 영화라는 것. 그래서 그는 “현실을 잊게 하면서 정신없이 막 지나가는 말초적인 부분이 크다”며 “<디워>와 <괴물>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영화”라고 <해운대>를 정의한다.

그러나 강유정 평론가는 애초에 이 영화는 비평 텍스트의 대상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전문가의 선택과 대중의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고, 얼마 전까지 작품성이 강한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전문 관객’을 만들어냈다면 <해운대>의 등장은 ‘일반 관객’의 선택을 입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시국이 공안정국에 가깝고 무언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 필요했는데 <해운대>가 그런 대상이 된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사회적 담론을 일으키지 못하는 천만 영화의 역할에 대해서는 “비단 <해운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이상 영화가 사람들의 삶에 ‘스파크’를 일으키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며 현실사회의 변화를 지적했다.

어쨌거나 <해운대>의 성공은 위기의 한국영화에 숨통을 틔워줬다는 점에서 부흥의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작가주의적 감독의 개인 역량에 주목했던 대중이 눈높이를 재설정한 것은 영화산업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에, 영화계 관계자들은 <해운대> 이후의 관객의 선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