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의 몰락, 무크지의 컴백]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인문지 부활 위해 '대중적 글쓰기'와 '세련된 소통 방법' 필요

"대중이 알아서 사회적 담론 찾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중에게 찾아가 말 거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기를 맞은 인문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백원근 백원근(42)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처방이다. 출판 전문가인 백 연구원을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한국출판연구소에서 만나 위기를 맞은 인문지에 필요한 생존의 법칙을 물었다.

평소에 지나쳤던 위기를 발견한 이에게는 급박한 문제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연구하며 출판시장의 위기와 대안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얼굴은 담담하고 차분했다. '조급'하게 보도하는 기성매체와 '차분'하게 조망하는 인문지의 차이가 이런 것 아닐까.

백 연구원은 "꽉 막힌 사회적 소통구조 속에서 시대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과제를 성취하는 데 기여해 온 인문지의 사회비판의식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라면서도 "다원화한 사회적 욕구에 적응하고 대중에게 찾아가 말 거는 방식 등을 변화해야 인문지가 이런 가치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요약했다.

"인문지, 아직 필요하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내용적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인문지는 뉴스를 통해서 매일 전달되는 정치불신과 왜곡된 사회구조를 상투적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해주는 매체입니다.

인문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백 연구원의 설명이다. 언로(言路)가 막혔던 시대, 인문지는 사회적 담론의 중심으로서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사회적 담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상비품' 같은 역할을 했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도 긴 호흡으로 비평하는 인문지의 역할은 여전하다고 본다.

학문 그 자체의 성숙에 기여 역시 인문지의 영향력이 유효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학자의 담론을 그들만의 소통으로 끝내는 학술논문이나 저널과의 차이다. 인문지의 효용성 가운데 하나는 이런 학문적 성과를 대중과 소통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를 사회와 연결 짓는다는 점이다.

발달된 기술과 온라인 매체환경을 감안한다면 어떨까. 백 연구원은 "인터넷 매체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인쇄매체의 영향력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소통과 발언을 지향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며 "현저한 인쇄매체의 퇴보가 아주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전까지 인문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무크지, 인문지의 대안 될 수 있다."

"다원화 사회에서 내용적 민주주주의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후퇴하는 계간지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는 무크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백 연구원의 시선 역시 따뜻했다. 발행의 부정기성이 특징인 무크지는 자유로운 틀과 양식을 갖추고 발행 시기를 고정해놓지 않기 때문이다.

마니아 무크지 역시 그 역할이 기대된다. 무크지는 자연스럽게 특정분야나 주제에 대한 사회적 발언에 기여할 수 있다. 마니아의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이를 전파하는 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덕분이다.

백 연구원은 "무크지는 발행의 부정기성으로 담론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면서도 "간행주기의 부담을 덜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자기발언으로 사회의 다원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인문지가 안주할 일은 아니다. 학자적인 담론을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좀더 세련되고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 일상의 공간에 대한 통찰, 변화된 독자들의 눈높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눈길을 마주치지 못했던 문제 등은 인문사회 계간지가 후퇴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고답적인 문투와 계몽적인 내용의 한계가 문제다. 인문지의 부활을 위해서는 결국 '대중적 글쓰기'와 '세련된 소통의 방법'이 요구된다. 보다 깊은, 정직한 소통의 장의 필요성에 의해 존재하는 인문지가 역설적이게도 다시 소통을 위한 노력을 요구 받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매체과잉의 시대에 사회담론의 중심으로서 인문지의 역할은 옅어졌다. 백 연구원이 "대중에게 찾아가고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그는 "정보소통 방식이 바뀌고 부정기 간행물로 바뀌기는 하지만, 활자매체로서 인문지의 기록성, 보존성, 윤독의 효용성 등의 가치는 여전하다"며 "금방 떳다 지워지는 방송, 온라인과 달리 장기적으로 정보를 축적하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창고로서 인문지의 가치는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백원근은…

1967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중앙대 대학원, 일본 죠치대 등에서 수학했다. 현재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출판학회 이사, 일본출판학회 정회원, 북스타트코리아(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기획위원, <출판저널> 편집기획위원, 교보문고 <북모닝 CEO> 북멘토 등으로 활동중이다.

한국출판연구소는…

1986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출판 전문 비영리 공익 재단으로 출판 및 독서와 연관된 폭넓은 조사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출판산업 연구 이외에도 연례 <국민독서실태조사>, 한국출판평론상 및 한국출판평론상 운영, 50여 차례의 출판포럼 개최, <출판연구>지 발행, 출판 관련 컨설팅 등을 수행했다. 이사장 임홍조.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