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간 통섭을 묻다] 뉴미디어 통한 문화정치적 실험들과 디지로그 공연 계속

유비쿼터스 디지털 기술은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의 양식 전반에 걸쳐 문명화된 모든 영역에서의 대대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초래했다.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휴대전화로 쉽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책이나 영화, 때로는 공연, 전시 관람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향유 양상을 염두에 둔 예술 창작도 빈번해지고 있다. 무대에서, 전시장에서 오만하게 대중을 기다렸던 예술은 이제 그들이 원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달려가는 양방향 텍스트가 된다.

따라서 창작자와 향유자의 '갑-을'의 관계를 해체시키는 유비쿼터스 기술의 일상화는 구조적으로 문화정치적 행동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광우병 파동 이후 일련의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실시간 상황 중계는 물리 공간과 가상 공간을 연결하는 제3공간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반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뉴미디어의 활용 영역을 능동적으로 확장해온 대중에 비하면, 예술이 이 새로운 공간을 보다 창조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고흐, 피카소, 르누아르 등 2세기 전 거장들의 아날로그 전시회가 여전히 대중 관객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예술 창작에 분발을 촉구한다.

그럼에도 이 같은 뉴미디어의 '민주적' 또는 수평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실험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특히 고전 명화에의 복귀로 관객의 관심이 지속되는 지금, 미디어 아트를 매개로 한 제3공간의 현장은 평단과 학계의 여전한 관심 대상이다.

2000년대 초 판옵티콘적인 인터넷 환경을 풍자한 'eGovernment'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한 양아치 작가의 시도는 뉴미디어를 활용해 정치적 행동을 표현한 실험으로 주목받는다.

1) 'j-th time'
2) '봄의 제전 Ⅲ'
3) '카마수트라, 꿈'


당시 주요 이슈였던 인터넷 실명제와 감시 카메라, 전자 팔찌 등의 소재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정부가 국민의 개인 정보를 장악한 '감시 통제 시스템'을 비판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인류에게 제공하는 청사진 대신 그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 그는 CCTV를 이용한 <감시드라마>와 <감시오페라> 등의 연작을 제작하며 뉴미디어를 통한 문화정치적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다.

미디어 퍼포먼스 전문 연출자이자 <봄의 제전> 연작 시리즈 예술감독인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몸과 디지털 미디어 요소를 결합시켜 새로운 스타일의 디지로그 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의 희생양과 제물을 모티프로 한 미디어 퍼포먼스 <봄의 제전>은 그 희생양을 현재로 불러들여 다시 제단에 세운다.

특히 올해 공연된 <봄의 제전 Ⅲ>는 한국의 다양한 굿 형식을 차용해 혼을 부르고,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상생시키는 구조를 각각 '입장', '청혼', '눈물', '희생', '쇼를 보다'의 다섯 마당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전작 <카마수트라, 꿈>에서도 인간의 몸과 두뇌를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뉴로이미지(neuro-image)'로 구현해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무용가의 춤사위와 성악가와 연주자의 라이브 공연, 다양한 디지털 요소들을 한데 융합시켜 새로운 소통 언어로 표현해냈다.

이달 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중극장에서 공연된 인터미디어 퍼포먼스 'J-th time'은 소재부터 매체까지 과학과 예술의 하이브리드를 추구한 융복합 작품이다. 이승연 상명대 인터미디어 퍼포먼스랩 교수의 세 연작 중 두 번째인 이 작품은 전작 'i-th Time'에 등장하는 여인이 추출한 난자들의 유전자 배합으로 탄생한 하이브리드들이 그 연결고리가 되어 그려진다.

물리적 신체장애는 최첨단 의료기술의 보강 시술을 통하여 차원이 다른 능력을 일으키게 되고, 이 능력은 기존의 의료기기를 응용하고 재구성해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인터랙티브 영상과 소리로 제시된다.

'J-th time'의 경우 흔히 예술계에서 사용하는 '다원예술'이라는 용어 대신 '융복합 공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하는 것이기 때문. 이 지점에서 과학기술에 경도된 수직적 통섭의 우려가 떠오를 만하다.

이에 대해 공연의 기획과 총예술감독을 맡은 이승연 교수는 "과학기술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면 공연이 기술의 데모 시연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양자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특성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역량과 함께 각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을 인터미디어 퍼포먼스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꼽았다.

이처럼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융합된 공연이 의미를 가지고 창작되고 향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작자(예술가-과학자)와 향유자(관객) 양쪽 모두에게 통섭적 사고, 특히 수평적 통섭의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승연 교수는 공연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가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한 후 "관객 입장에서 공연을 보니 만든 사람으로서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토로한 일화를 밝혔다. 그만큼 예술적 심미성과 테크놀로지의 형식의 조화와 융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과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민과학센터는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 간 공동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 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행사에서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는 앤디 워홀의 작업을 거론하며 예술가와 과학자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현대 과학이 주관적인 요소들이 삽입된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현대 예술은 점차 거대한 테크놀로지를 포섭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과학과 기술, 예술이 분리되어 있다는 예전의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래서 결국 제3공간의 예술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을 비롯한 다른 지식들과의 소통의 문제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함께 도약하기(jumping together=consilience)'라는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려는 새로운 통섭의 시도들은 다양한 유형의 지식들을 수평적으로 연결시킬 때 새로운 시너지를 일으킬 잠재력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