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그래피티] 그래피티 아티스트 한디-진스자신을 알리는 스타일 경쟁… 갱문화서 비롯된 미국과 달라

"뭔가 내걸 남기고 싶어서예요. 계속 뭔가 일기 쓰듯 써내려가는 느낌이 중독성이 있어요."

"우리는 스타일 경쟁을 하는 거예요. 한국 그래피티는 갱문화가 있는 미국과는 다르죠."

그래피티 아티스트 모임인 '원탁'의 멤버로 활동 중인 진스(본명 최진환∙32), 한디(본명 한도영∙32)의 말이다. 그들은 왜 허락 받지 않는 벽면에 자신들이 직접 산 스프레이로 태그(Tag; 자신의 별칭)를 남기는 것일까.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대부분 경찰 단속 등을 우려해 외부활동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그래피티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어 대외활동을 하는 이들을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까페 '토끼의 지혜2'에 만나 이유를 물었다.

몇 단계의 연락 끝에 자리에 나온 이들은 힙합 풍의 옷과 그래피티 문양이 들어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약속시간 보다 먼저 자리에 와있었고 공손한 말씨와 웃는 낯을 보였다.

존재의 드러냄, 혹은 과시의 양태를 띠는 '루저(loser; 패배자) 문화'로서 그래피티 요소가 이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인류학∙사회학자들은 그래피티를 '비주류 인종과 계층의 자기 존재 증명과 발언'으로 해석한다.

진스는 "일종의 배틀(battle;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라며 "자기 네임으로 글자를 더 멋있고 화려하게 보여주는 거죠"라고 말했다. "자기를 알리는 거에요.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나서 못 보던 것을 보게 되면 '누가, 언제, 어떻게 그렸지?' 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더 좋은 걸 그리고 싶어지는 거죠"라는 게 한디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말 루저인 것은 아니다. 원래 부산에서 활동했던 진스는 지난 2001년 일단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열차에 태그를 새겼다 철도 공안과를 드나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철도청의 의뢰를 받아 그래피티 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한디 역시 올초 서울 강북구청의 의뢰를 받고 진행한 큰마을길의 거리 개선 프로젝트에 이태호 경희대 미대 교수의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 그는 자동차수리센터 철제 문에 락카로 그래피티를 그려줬다.

갱스터 문화에서 비롯한 미국의 그래피티와 한국의 그래피티 문화는 다르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의 그래피티는 빈민지역인 슬럼가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래피티가 가장 먼저 생긴 곳은 부촌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강 둔치 입구다. 최근에는 청년문화의 메카인 서울 홍익대 인근에 많이 생겼다. 한디와 진스가 정규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사실이 있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들은 "나쁘게 보는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서 일어나는 반응을 오히려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자극을 받아요"라면서도 "외국 화랑이나 갤러리에서는 그래피티 초청전을 열기도 하고 경매도 활발해 작가 양성을 하기도 한다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디자인으로서 그래피티는 타투(tattoo; 문신)와 함께 패션∙산업디자인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이키∙컨버스 등 스포츠용품∙패션 회사에서 그래피티 작가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그들의 태그 등 그래피티가 들어간 티셔츠를 비롯한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이유다.

'비보잉은 되고, 태깅은 안된다?' 이들과 마주하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