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그리고 대중문화] 대중문화가 애국주의를 얼마나 상업적으로 선택·소비하는지 보여줘

이제는 탈퇴한, 그룹 '2PM'의 리더 재범은 본의 아니게 애국주의 논쟁의 시발점이 됐다.

몇 해 전 그가 한 지인과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던 대화의 내용이 5일 DC인사이드를 통해 공개되고, 이 글이 번역돼 언론에 '특종 보도' 되며, 2PM의 기획사가 사과를 하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논란의 불씨가 커지기도 전인 지난 8일, 박재범 씨는 '그룹 탈퇴'를 선언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인의 애국주의가 '네티즌의 광기'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한결 같은 언론의 담론이 이어지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그 주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토론 주제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SBS <시사토론>, 9월 11자, 2PM 박재범, 인터넷 여론재판 논란) 2.9%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이후 며칠간 해당 인터넷 사이트가 집중포화를 맞는 등 네티즌의 관심을 실감해야 했다.

비판을 받든, 비난을 받든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성공했다는 말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전형을 보여준 이 열흘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애국주의를 얼마나 상업적으로 선택, 소비하는지를 드러낸다.

인기그룹 2PM의 멤버 박재범이 한국 비하 발언 논란으로 팀을 탈퇴한 가운데 13일 오후 청담동 JYP 사옥 앞에서 팬들이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맨 위 사진)
사실 인터넷과 방송,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애국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제목부터 애국심을 강조하는 <태극기 휘날리며> <한반도>같은 영화가 그렇고, 사극이 대세를 이루는 드라마가 그러하며, 국내 선수들의 해외 경기를 중계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그렇다.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문화'산업'을 이루는 원동력이 자본임을 감안할 때, 대중문화의 이 '전략적 선택'은 무엇이 문제였나? 그에 앞서 묻는다. 애국주의는 왜 가장 잘 팔리는 대중문화 코드가 되었을까?

해프닝이 애국주의 코드를 만날 때

2PM의 리더, 재범의 한국 비하발언이 낳은 현상은 아이돌 스타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의 음악과 아이템을 소비하는 대중의 입장에서 4년 전 그의 말이 비록 철없는 10대의 사적 영역에서의 발언이라 할지라도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이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애국주의 담론으로 커지게 된다.

이 사건을 보도할 때 '우리나라가 싫다'는 헤드라인이 뽑혀 나오면서 국가주의적 담론을 촉발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대중문화전문웹진 <텐아시아>의 강명석 기자는 "그가 비난한 대상이 '우리나라'가 되니까, 일부 네티즌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게 적용되는 섹시한 코드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재미교포 출신 아이돌'이란 그의 신분은 이 상황에서 일부 대중의 '넷심'을 자극하기 좋은 소재가 됐다. 강명석 기자는 "마찬가지로 한국 비하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권상우의 예가 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재범은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병역 문제에 자유롭고, 이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대중이 있다. 또 아이돌은 가장 파급력 있는 대상이다. 모든 사람이 국가 문제에 대해서 엄청나게 신경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돌이면서 재미 교포라는 점이 화제를 삼을 수 있는 제일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이제 '담론'은 국내 네티즌들의 애국주의, 애국주의가 만든 파시즘으로 넘어간다. 허민호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11일 한 칼럼에서 이미 이 사건이 담론의 영역으로 넘어 갔다고 말한다.

'논란이 계속되는 과정, 즉 재범을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는 이미 재범은 없다. 거기에는 대신 미완의 국가 정체성과 토착성을 완성시키는 무엇인가가 공모되고 있다.' (칼럼 '재범 없는 재범을 둘러싼 담론들의 공모')

미디어의 나라사랑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자. 오로지 네티즌의 '애국주의적'인 집중포화가 그를 미국으로 돌아가게 한 걸까?

한국일보 서화숙 논설위원은 9월 10일자 칼럼 '조금 삐딱한, 조금 재미있는'에서 2PM 재범의 한국 비하발언은 네티즌의 애국주의적 파시즘보다 상업주의 문제라고 꼬집는다.

'재범이 투피엠을 서둘러 탈퇴해야 했던 것은 그게 돈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비난이 인기하락으로 이어지고 인기하락이 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는 그룹의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고 소속사가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결국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키워진 연습생 출신 아이돌 가수가 지닌 태생적 한계이다. 그러니까 재범이 떠난 데는 대중의 파시즘보다 업계의 상업주의 책임이 더 크다.'

아이돌 가수는 철저히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우상이 되는 존재다. 이미지가 실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이미지는 대중이 요구하는 테두리 안에서 작동할 때 문화 상품으로써 역량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아이돌 출신인 그는 자유로운 대중예술가가 아니라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연예인, 아이돌 가수이기 때문에 대중의 비난이 인기 하락으로 이어져 더 이상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언론에 대한 비난도 쏟아진다. 왜 하필 '우리나라가 싫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는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매체가 대중문화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애국주의를 하나의 상업적인 메커니즘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강명석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가 싫다'는 헤드라인이 뽑혀지면서 그 대상이 전 세대에게 적용되는 섹시한 코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각 언론사는 동일한 보도 프레임으로 고수한다. 언론사는 왜 갑자기 한 목소리를 내는 걸까?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김춘식 교수는 "통상 연예뉴스는 언론의 상업성이 되는 '인포테인먼트'뉴스다. 수용자들의 취향에 가장 부합하는 뉴스인 것이다. 자기들의 구독자 층을 늘리거나 수익을 증대하는 데 이것보다 좋은 뉴스는 없다"고 설명한다.

김춘식 교수는 "뉴스의 기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주의 시민양성에 기여하느냐'란 공익적 기능이고, 또 다른 미션은 '수익창출'이란 역할이다, 두 가지 가치는 상반된다. 수익을 창출하려면 독자나 시청자가 많아야 된다. 따라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경우 뉴스를 보도할 때 언론의 수익창출 문제를 고려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이 되지 않는 경우 언론의 논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즉, 정치성이 배제된 의제나 정확한 '팩트'에 근거해야 하는 과학 보도, 특히 이데올로기가 갈라질 수 없는 민족적 담론은 언론사들의 의견이 분열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수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국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이런 전략을 쓰는 것이 단순히 미디어의 보도뿐일까? 대중문화가 애국주의로 '마케팅'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드라마의 한 대세를 이루는 사극에서 애국주의 코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사극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룰 만큼 드라마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 등 다매체 시대에 가장 넓은 시청자 층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006년부터 각 방송사는 잇따라 고구려에 관한 사극을 내보냈다. 5월 MBC <주몽>을 시작으로 SBS의 <연개소문>, KBS <대조영>이 방송됐고, 이후 <태왕사신기>가 역시 MBC를 통해 전파를 탔다. 당시 방송사들은 하나 같이 '찬란한 한민족의 역사 복원', '민족의 저력과 웅지를 잘 대변했던 고구려의 재발견' 등을 제작의도로 들었다. 그러나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목적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허구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 "역사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상업적 선택과 별개로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애국주의로 응집될 때도 있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보도 초기와 영화 <디워>논쟁에서의 네티즌들의 집단적 반응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두 사건의 특징은 국민 개인의 '드라마틱한 성공'이 국가의 부를 안겨준다는 논리를 띠고 있었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보도의 초기, 황우석 박사의 지지자들은 외국의 '음모론'을 들고 나왔고, <디워>논쟁에서 역시 논쟁의 핵심은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이 영화가 가져올 '국위선양'의 효과였다.

강명석 기자는 "황우석 사건 때 초반 옹호했던 대중들의 상당수가 '배아줄기 세포연구는 국가에 부를 안겨준다'는 논리로 논문 표절 의혹을 음모론으로 몰고 갔다. 이번 2PM 박재범의 한국비하 발언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돈 벌어서 미국으로 빠져나간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무조건 국가주의로 볼 수는 없지만, 국가주의의 영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중문화는 어떻게 애국주의를 생산, 소비하는가? 그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면, 다음 페이지에 주목해보라.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