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시의 미래인가] 외부 힘에 의해 만들어진 '이민사회', 시민 스스로 내적 역량 갖춰야

2009인천세계도시축전 '도시계획관'에 만들어진 조형물
지금 인천은 건설이 한창이다. 송도, 영종, 청라를 중심으로 총 209㎢에 이르는 경제자유구역이 개발되고 있고 구월, 연수, 계산 등에는 대규모 신시가지가 들어서고 있으며, 중구, 동구, 남구 등 구시가지에는 무려 200건이 넘는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온 도시에 불어대는 이러한 건설의 바람이 앞으로 이 도시를 어떻게 변모시킬지에 대해, 우리는 기대와 희망이 어린 눈으로도 우려가 섞인 눈으로도 바라보게 된다. 과연 미래의 인천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한 도시가 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을 꿈꾸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물론 웅장함과 화려함이 그 모습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상실했을 우아함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도시가 과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면 오히려 우아함을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개선하는 변화는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까지도 더 빛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모든 도시가 과거와 미래를 늘 조화롭게 연결시키며 변화되어온 것은 아니다. 특히 근대 이후 동아시아의 도시들은 서구 세계에 의해 자극된 변화의 압력 하에서 격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과거와의 시간적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도시들에서 과거는 미래와 대비되면서 우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며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인천의 경우도 19세기 말 근대적 항만이 건설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개발과 성장을 진행해 오는 동안 이 도시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도시와 도시민의 정체성 형성을 방해했으며, 결국 도시 발전을 지속할 주체와 역량을 공고히 확보하는 것을 쉽지 않게 했다.

근대 건축물을 복합예술문화 매개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인천아트플랫폼(왼쪽), 지난 4월 시민 단체들이 연 '배다리문화선언선포식'
미래를 말하지만 정작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도시의 방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 인천의 '건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보다 비판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지금까지 인천의 도시 발전은 그 내적 수요와 논리에 의해 이뤄져왔다고 보기 어렵다. 주지하듯이 인천은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의 결과로 1883년 개항장이 되었다. 당시 인천은 문학산 기슭의 인천도호부를 중심으로 주읍을 둔 조그만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이 도시에는 근대적 항만 건설 등 개항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일본을 필두로 한 서구제국주의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요컨대 인천은 서구 세계의 수요와 논리 하에 놓인 식민도시로서 근대도시로의 이행을 실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항만도시로서의 기능은 해방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이어졌다. 인천은 전후 수출입 경제의 중심항으로서 또는 수출공업단지로서 꽤 활기를 띤 시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당시 인천의 활기는 중앙, 권력 중심의 정치, 경제 구조 하에서 통제, 동원되고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인천의 토착 자본은 사회 발전의 중심축이 되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그에 유착, 공생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의 거대자본에 대해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된다.

이러한 인천의 종속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 영역에 걸쳐서 인적, 물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왔다. 이렇게 인천은 근대도시로 외연적 성장을 해왔지만 그 도시 성장을 추동했던 수요와 논리는 외부로부터 제공되어왔다. 요컨대 인천은 인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서, 인천이 그 도시 발전을 주도할 내적 역량과 활력을 축적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따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인천은 토착인보다 이민자의 비율이 많은 이민사회다. 2005년 현재 인천의 인구는 253만 여 명에 달하며, 앞으로 2025년에는 400만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불과 두 세대 정도 전인 1930년대 그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다. 물론 개항 이전에는 그보다 더 적어 2만 명을 넘지 않았다. 이러한 인구 증가의 원인은 인천이 항만·공업도시로서의 성장하면서 그 경제 활동과 관련된 인구가 몰려들었던 것과 서울에 대한 종속도시로서의 기능 등과 연관이 있다.

어쨌든 오늘날 인천을 구성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길어야 한 두 세대 전에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민 인구였다. 그 간 인천의 도시 발전에서 내적 수요와 논리가 결여되었던 데는 위에서 언급한 외부적 압력과 개입 외에도 도시 주인으로서 정체성과 관심, 책임의식을 갖기 어려웠던 이러한 인천 주민들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도시 발전을 이끌 내적 역량과 활력을 기대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인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다른 근대 도시들도 이민사회로서의 문제를 안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서구적 자극과 발전의 요구 하에서 근대도시로서 외연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도시 인구는 이민자로서 채워졌고, 이러한 이민자들은 비록 주민으로 살기는 하지만 그 도시 건설의 주체로서 자리잡기 어려웠다. 이들 도시의 주민들이 정주와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현재 인천 시민의 정주 의식과 정체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민자 1세대의 정착 기간이 늘어나고 인천을 출생지로 하는 2,3세대의 폭이 증가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천 시민의 애향심, 자부심, 유대감, 지역 관심 등의 영역이 1998년에 비해 2002년에 이르러 부정적인 쪽이 삼분의 일이 줄어든 반면 긍정적인 쪽은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인천 시민들은 점점 더 도시 주체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비록 인천이 그 도시 성장을 추동했던 수요와 논리를 외부로부터 강박 당해왔고 그 주민들이 도시 건설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지만, 그 동안 인천을 지탱해올 수 있었던 데는 다름 아닌 인천 주민들이 있었다. 정주의식과 정체성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인천 주민들에게 이제 이 도시의 건설을 주도할 충분한 역량과 활력이 있다는 데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이 점에서 현재 인천에 불고 있는 건설의 바람 속에 이들의 수요와 논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간 예산이 5조 원에 불과한 지방자치단체가 향후 10년 간 150조 원을 초과하는 개발계획을 추진할 때는, 최소한 해당 도시 주민의 요구와 지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합의를 통해 그 향방을 결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도시를 온통 뜯어 헤쳐 놓는 공사를 추진하기 전에는 차분히 도시 현황, 실정에 대한 면밀한 고려와 진단을 우선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도시 공간 구조와 기반 시설, 사회경제적 변화와 자원 등 물리적 여건뿐만 아니라 인구와 공동체 의식, 역사문화적 유산 등 추상적 요소들에 대한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 문화, 사회 등을 포괄하는 지역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도시민의 삶과 연계된 추상적 공간을 포함하는 보다 입체적인 고려 하에서 경제, 문화, 역사적 활력과 특성을 살려가면서 아울러 원주민 재정착과 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 통합에 중점을 두는, 보다 완성도 놓은 도시 건설을 가능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도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인천뿐만 아니라 오늘날 도시의 삶은 그 문명 기술과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하지만은 않은데, 도시민들은 문명의 풍요로움을 향유하면서도 사물화와 소외, 상호 경쟁과 사회적 분열, 환경오염 등 근대 문명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간적 삶이 보장되고 인간적 가치와 의미가 구현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천도시축전의 한켠에서 일반인에게 크게 주목되지 않은 세계도시인문학대회라는 국제학회가 개최된다.

이는 인간적 삶과 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인문학자들의 문제제기이다. 이러한 도시와 도시인의 삶에 대한 근본적 성찰들 속에서 인천인들이 앞으로 자신들이 꿈꾸어야 할 도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유효한 제언을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승욱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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