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예술교육 어디로 가나] 정부 '미래형 교육과정'에 무용·연극·영화 교과목 추진위 결성 시정 요구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는 어린 또는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낭보가 종종 들려온다. 국제 비엔날레와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후배들이 한국의 저력을 뽑낸다.

어린 시절부터의 영재 교육과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일부 재능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우리는 음악과 미술 시간에 나름의 재능을 발휘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노래부르기나 악기연주, 그림 그리기나 조각하기 등은 우리에겐 익숙한 예술적 체험이고 교육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은 연기나 춤이다. 무대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막론하고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춤과 연기다. 세계적인 춤 콩쿠르나 댄스 페스티벌, 영화제에서 한국 무용수와 배우들의 위상은 음악과 미술 분야 못지않다.

그런데 제도교육에선 그 많은 예술 장르 중 유독 음악과 미술만 공공교육의 한 분과로 지정해 시행했다. 이만 하면 그동안의 편중된 예술 교과목 운영에 대한 의문을 품을 만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문제제기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최근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교육과정특별위원회가 발표한 미래형 교육과정 개정안에 무용, 연극, 영화 등 3개 예술교육계가 우려를 나타내며 정부의 예술교육에 대한 성토를 시작한 것.

세미나에 참석한 정두언 국회교육위원(오른쪽)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미래형 교육과정은 학기당 이수과목을 최대 5과목 줄이고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예체능 등의 과목을 특정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예술'로 통합된 과목은 기존의 음악과 미술 과목만을 표기하고 있어 예술교육계의 반발을 산 것이다.

이에 3개 분야 교육계 인사들은 무용ㆍ연극ㆍ영화 교과목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결성해 현행 개정안의 시정을 교육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체육의 한 분과처럼 인식되어온 무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작업을 해온 무용교육발전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무용교육학회, 한국연극교육센터, 한국연극교육학회, 한국영화학회, 한국영화교육학회 등 각계의 교육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뜻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18일 추진위는 학교예술교육 정상화를 위한 무용ㆍ연극ㆍ영화계의 합동세미나 <21C 글로벌 시대 한국의 예술교과, 어떻게 가야 하나>를 개최해 정부의 교과목 개편안에 대한 개정 촉구를 이어갔다.

이날 추진위는 "예술 교과에 음악과 미술만을 표기한 것은 시대적 흐름에도 어긋나며 창의력 향상과 전인교육이라는 예술교육 본연의 목적을 간과한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성토했다. 이와 함께 추진위는 초중고 교육에서 예술교육의 비중과 시수를 대폭 늘리고, 음악ㆍ미술ㆍ연극ㆍ무용ㆍ영화 등을 모두 표기한 '예술' 교과를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도 발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김문환 서울대 교수는 문화예술교육의 의의를 말하며 "관계당국은 2010년에 세계예술교육대회를 유치했다고 업적을 내세우기 전에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와 격의 없는 토론마당을 능동적으로 마련해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예술교육의 전범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의 공동대표를 맡은 김화숙 무용교육발전추진위원회 대표는 "이번에 발표된 '미래형 교육과정' 시안은 시대착오적인 반쪽 예술교육"이라고 비판하며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한 예술장르(무용, 시각예술, 음악, 연극, 영화, 등)를 제공하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특히 체육 교과 안에서 원래의 목표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무용의 현실을 토로하며 "테크닉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인성 모두를 요구하는 무용의 예술적 가치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영역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극계의 대표를 맡은 오세곤 한국연극교육센터장은 현재의 교육 현실을 '현실과 괴리된 교육', '살아있는 교육의 부재', '하나의 정답을 찾는 교육', '암기식, 주입식, 분리식 교육'이라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서 그는 "연극은 종합예술이자 협동예술로서 현재의 비교육적 예술교육을 상호소통식, 체험식, (장르)통합식으로 개선하고, 나아가 ‘21세기 창의적 인간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에 부응할 수 있다"며 연극의 공통기본교과 명기를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추진위의 공동대표를 맡은 정재형 한국영화학회장은 2000년부터 국악을 필두로 시작된 예술강사 파견제도의 실효성을 거론하며 교육부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합당한 정책과 지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형 대표는 이어서 "무용, 연극은 그 예술적 전통으로 볼때 당연히 순위적으로 우위에 서서 첨가되어야 하고 첨단과학기술과의 결합, 영상시대의 아이들과 호흡하기 위해서 영화 역시 포함하는 논의도 가능하다"며 담론의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민경원 순천향대 교수는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예술(음악, 미술)'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의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체육(농구, 배구)'라고 표기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표기와 편향된 예술 교과는 결국 아이들에게 예술의 범위를 좁혀 인식케 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우려했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현대예술을 맞이한 지금, 겨우 2개 분야를 '예술'로 표기해 교육하려는 정부의 '미래형 교육과정'이 잡음을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당연하게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5개 분야 외에도 예술 교육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할 분야는 여전히 많다. 예술교육계는 전통공예와 디자인, 사진 분야도 추가로 정규 교과에 편성해 논의하는 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생각해보면 늦은 담론이다. 동시대의 예술현상을 풍부하게 읽기 위해 벌써 통섭과 다원예술이 회자되는 이때, 두 분야뿐인 예술교육에 대한 비판은 뒤늦게, 그러나 여전히 의미있는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술교육의 올바른 패러다임 제시 위해 노력"

이송 청운대 방송예술대학장, 무용˙연극˙영화 교과목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 이번 일을 바라보는 예술계 내부의 시선은 어떤가.

이번 일 전부터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에 말이 많았다. 미래형 교과과정은 그런 불만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교과과정은 입시 위주의 개편에 다름없다.

학교장 자율에 맡기면 결국 국영수 위주의 교육이 된다는 건 뻔한 사실이다. 정부는 문화예술 정책을 시작할 때 중흥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요즈음의 정책들을 보면 그런 말과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 그동안 무용은 체육의 한 분과처럼 여겨져 왔다. 연극과 영화는 특별활동 시간에나 하면 되는 것 정도로 여겨졌다. 비단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예술 장르로서의 각 교과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지 않나.

그래서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의 틀이 넓어져야 한다는 거다. 음악과 미술만 예술 교과목에서 다루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고착된 것이다. 무용이나 연극과 같이 다양한 분야가 들어갈 틈이 없었고, 다른 분야를 천대하는 시선마저 있었다.

그런데 한류 문화 이후 공연예술이나 대중예술이 급성장하고 발전하면서 다양한 예술장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음악과 미술만 포함한 예술 교과로 통합한다는 것은 창의성과 전인교육 측면에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인 셈이다.

- 정부의 이번 교과목 통합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해갈 계획인가.

우선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의 재고를 요구할 것이다. 또 무용, 연극, 영화의 예술적 의미를 알리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무대나 현장의 체험이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리고 싶다.

사실 이번 세 분야가 만나 교과목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것도 정부의 '미래형 교과과정' 발표 이후 긴급히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올바른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앞으로 지속적인 소통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음악과 미술 분야까지 아우르는 전 분야의 운영위원회를 추진해 토론 등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성명서를 낭독하는 등의 운동을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학문적인 접근이다. 제대로 된 예술교육을 받으려는, 받고 있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요구를 정부기관에 전달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 예술 과목 안에 이 과목들이 새로 들어가게 된다면 차후 구체적인 교육 방안도 준비해야 할 텐데.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강사풀제를 이용해 예술강사들을 양성해 관련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관리해오고 있다. 인력들은 이미 준비가 된 셈이고, 무용과 연극 분야의 교재는 오래 전부터 이미 충분히 만들어져 있는 상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