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의 초상] 이주노동자와 선진국 외국인 차별 없이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가능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와 10년 가까이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한 베트남 출신 주부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 방송국의 다문화 가정 프로그램은 그를 위해 베트남으로 건너가 몰래 부모를 모시고 온다.

잠시 후 예상치 못한 가족 상봉에 출연자도 울고 MC도 울고 시청자도 운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서 만나지 못했을까. 의문이 떠오르려는 찰나, MC는 어느새 두 가정의 조우를 잔치로 이끌며 또 다른 감동을 이끌어내기 바쁘다.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방인들과 그런 그들에게 흐뭇한 미소로 화답하는 시청자. 소수자를 향한 연민의 시선과 원조의 손길이 다문화사회로 가는 과정이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외국인 미녀들이 수다를 떠는 다른 프로그램은 유학생이나 전문 직종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동정이나 연민으로 점철된 다른 외국인 프로그램과 거리를 뒀다. 그들도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타자임에 분명했지만, 적어도 외국인 근로자나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농촌의 다문화 가정과는 계급적 차이가 있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이른바 '선진국' 미녀들이 한국에 동화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 시청자는 뿌듯해한다. 하지만 가끔 이들이 던지는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에는 종종 특유의 국수주의가 발동, 해당 발언자는 한동안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반면 다른 아시아권이나 아프리카권 출연진의 한국 비판은 금세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래도 '갑'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행했던 한국사회의 횡포와 차별을 순순히 인정하는 까닭이다.

1- 폭소클럽 블랑카. 2-법무부에 의해 강제 출국된 미누(Minod Moktan). 3-KBS '미녀들의 수다'
몇해 전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개그맨 정철규의 블랑카는 이후 모든 외국인 근로자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블랑카는 한국사회의 그늘에 있던 외국인 근로자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그들에 대한 비하나 희화화의 도구도 됐다. 이미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이해하는 이들에게 한국인들의 조소가 기분 좋았을 리 없다.

개그 코너가 사라진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블랑카'로 통일돼 있다. 그리고 이 호칭은 아직도 이들을 '나쁜 사장님' 밑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불쌍한 외국인 정도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한때 그들을 부르던 이름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 이름은 '국적의 다름'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移住勞動者)'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사전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로 옮겨가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주자'와 '노동자'의 특성을 모두 갖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은 고되고 슬프다. 1980년대 말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 나라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우리와 함께 어느덧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그동안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다문화사회에 걸맞지 않은 구태적인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정작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다. 이것은 이주노동자의 삶과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단체에서조차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미디어 활동가인 마붑 알엄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이주노동자 관련 NGO는 현재 150여 개에 이르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이주노동자를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하등의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이들에게 중요한 사안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에는 소극적이다. 게다가 대부분 기독교 성격의 단체인 터라 이슬람을 비롯한 타 종교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을 전도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을 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한국사회의 다른 소수자 집단처럼 이들도 구성원으로서 다른 집단과 소통하고 융합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진입했지만 아직 과거에 인식에 정체된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문화적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한 미디어 활동가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자로서의 삶도 고되지만, 그는 문화교류와 상호이해에 그 해결책이 있다고 믿고 최초로 다국적 이주노동자밴드(스탑크랙다운)를 결성해 이주노동자의 애환을 노래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는 또 다문화교육을 통해 이주민과 한국사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동료들과 방송국(이주노동자의방송 MWTV)을 만들어 더욱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소통을 모색했다.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꿈꿨던, 이 사람의 이름은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다.

하지만 지난달 초 출근길에 잠복 중이던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에 붙잡힌 그는 결국 법무부에 의해 모국인 네팔로 강제출국을 당하고 말았다.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이 제기된 상태에서 이뤄진 일이다.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산 그였지만, 법무부의 결단은 어느 때보다 신속했다. 이주노동자는 산업화 메커니즘의 한 부속품에 불과하며, 그 기능을 넘어설 시 반사회 집단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전제된 행정이다.

미누의 강제출국은 다문화사회를 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전한 폐쇄성을 말해준다. 소통을 꿈꾸는 많은 이방인들은 한국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더 갖게 되었고, 그만큼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은 조금 더 멀어지게 됐다. 멈춰버린 미누의 꿈, 한국사회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갑을관계', '감탄고토'에 머물러있는 이방인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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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