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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보는 문화적 시선

[다문화 사회의 초상] 영화 '디스트릭트9' 뮤지컬 '빨래' 등 정체된 우리의 인식에 경종
  • 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 영화 '로니를 찾아서', 뮤지컬 '빨래', 영화 '디스트릭트9'(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말은 '실제로 있지는 않았지만 있을 법한 일'을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상상력들이 기실 그렇다.

하지만 어떤 픽션들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사람을 각성시키고 때로는 아프게 하기조차 한다. '우리 안의 이방인'을 다루고 있는 몇 편의 작품들은 다문화시대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머리가 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 인식의 정체(停滯)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핍박받는 이방인, 차별하는 사회

쓰러져가는 어느 집 앞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무장한 경호원을 대동한 공무원은 '이방인'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퇴거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세입자는 예고 없는 퇴거 요구는 불법이라며 저항해 보지만, 공무원이 양육환경의 안정성을 이유로 아이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자 세입자는 당황하고 만다. 결국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퇴거 명령을 받아들이라는 강압이 세입자를 좌절시킨다.

용산 철거민 이야기가 아니다. 안산 등 공단에 모여 사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디스트릭트 9>의 한 장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힘 없는 이방인 세입자가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지구인의 친구 E.T.에서 흉측한 괴물 에일리언, 그 외 모든 지구침략자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진화해 온 영화 속 외계인의 이미지는 마침내 지구인과 공존하는 사회구성원의 모습으로 그려진 점이 이색적이다.

영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아주 약간의 시간만 필요하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제목에서 벌써 남아공의 '디스트릭트 6(District Six)'을 연상했을 것이다.

1960년대 케이프타운의 '제6지역'이 백인 전용 주거지로 공식 인정됨에 따라 수만 명의 흑인들은 이곳에서 수십 km 떨어진 지역으로 강제로 격리됐다. 남아공 출신의 닐 블롬캠프 감독은 어린 시절 체험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흑백 분리 정책)'에서 영화를 출발시켰다.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은 (인간)사회의 해악처럼 취급받는 존재다. 철저히 '우리들'과 격리되어야 할 존재다. 그래서 영화 속 외계인은 '흑인' 혹은 '외국인'의 블롬캠프식 표현이다. 또 '소수자'나 '하층민'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는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사실은 격리수용)시키려고 한다. 인간과 닮지 않은 '혐오스러운'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 철저한 타자라는 이유로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수자 속 소수자로 살아간다(기존 흑인들도 이들을 내쫓으려고 한다).

우리와 다른 말을 하고, 다르게 생긴, 바깥 세계의 사람, 외계인(外界人). 이들이 차별받고 추방되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성가신 노력이 필요하기에 사회는 그들을 이용하다 효용이 떨어지면 간편하게 밖으로 내친다. 지구인보다 못한, 심지어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영화 속 외계인들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은 것은 그들의 모습이 현실 속 누군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영화 작업을 통한 다문화운동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은 <디스트릭트 9>처럼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풍자를 두루 활용할 여유도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주민'이라는 소재 자체가 비상업적일 뿐더러, 현실 속 '불법 체류자'들은 하루하루를 추방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 유럽인, 영미권의 선진국이 아닌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선 불법 여부를 막론한 선입견도 여전하다. 때문에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영화를 찍는다는 것, 그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실 속 인종 차별, 인권 탄압에 맞서는 문화운동의 의미를 가진다.

탈북자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의 우연한 만남과 여행을 그린 <처음 만난 사람들>(감독 김동현)은 본격적으로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그린 최초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의 두 이방인이 처한 현실은 한국에서 이들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과 우리의 여전한 편견을 반추하게 한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두 사람의 엉뚱한 대화는 관객에게 종종 의도치 않은 웃음을 주지만, 어느 순간 맥락 없이 갑자기 얼싸안고 엉엉 우는 이들의 모습은 언어보다 '우리'라는 공감대가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은 <로니를 찾아서>(감독 심상국)는 비참한 현실을 심각하지 않고 경쾌하게 그려내 주목을 받았다. 넘쳐나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치안 문제가 생긴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들을 타자에서 동반자로 이해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심상국 감독은 영화 속 전자오락실 주인의 입을 빌어 "우리도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온 외지인인데, 누가 누구에게 텃세를 부릴 수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결국은 '인종'으로 나누지 말고 '인간'으로 뭉쳐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와 한국 여고생의 로맨스를 그린 <반두비>(감독 신동일)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까지 유머러스하게 녹여내 역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거머쥐었다.

전작 <방문자>에서 소통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던 신동일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두 이방인의 소통을 다룬다.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거대한 입시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학생들도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보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백인 영어강사와 동양인 이주노동자를 다르게 대하는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그의 비판 대상이다.

무대 위, 또 다른 '우리'의 모습

무대 위 이주민들의 등장 역시 필름 속 출현의 역사만큼 길지 않다. 최근엔 이주민이 작품의 전면에 나선 다문화 연극도 활발하지만 현실 속 그들의 위치처럼 아직은 비주류에 머물러 있다.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씬짜오, 몽실>은 '우리'와 '그들'로 구분부터 하고 보는 사회의 시선에 제동을 건다. 인간 자체가 다문화의 소산이라는 전제는 다문화 문제를 거대담론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처해 있는 당면한 현실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인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틀 안의 우리를 보자는 것이 이 작품의 주장이다.

이주 여성들이 모여 만든 극단 샐러드는 지난 9월 연극 <맛있는 레시피, 애프터 더 레인>을 공연해 문화운동으로서의 의미를 다졌다. 몽골, 필리핀, 스리랑카, 베트남 등 국적도 환경도 다른 초보 배우들은 이주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에서 겪는 체험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극단 관계자는 "사회의 여전한 편견도 '아직 이주민이 익숙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며 "경기도 미술축전 등 문화행사에 몽골 이주자들이 전통춤 공연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적 접촉을 늘려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2005년 초연 후 한국뮤지컬대상을 휩쓸며 매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뮤지컬 <빨래>는 상대적으로 '주류적인' 다문화 작품이다. 몽골 출신의 불법 체류자 솔롱고와 강원도 출신의 '이주민' 서나영이 서울에서 만나 키우는 사랑 이야기 안에는 청년실업과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를 사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직은 다양성이나 깊이 면에서 다문화 작품을 다루는 시도가 많지 않고 관심도 부족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이 체감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와 문화가 좀 더 질적, 양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다문화 사회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황혜성 이민인종연구회장은 "2012년이면 한국 내 이주민의 숫자가 200만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며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외국 상황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라고 조언한다.

"출신국 따라 차별하지 마세요"
영화배우, 감독 마붑 알엄

영화 <로니를 찾아서>에서 로니 역을, <반두비>에선 주인공 카림 역을 맡은 마붑 알엄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이자 미디어 활동가이다. '10년차 한국인'인 그는 한국사람처럼 중간에 "음…" 하고 잠시 생각하며 한국사람처럼 유창하게 말한다.

이미 독립영화계에선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길거리에선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3D 업종만 전전해야 하는 이주민들의 실상을 알리고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이주민 방송국을 만들었다.

이주노동자영화제도 운영하며 현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지난 27일에 열린 인디포럼 월례비행 상영회에서 자신의 단편 <리터니>를 내놓고 동료감독과 관객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별로 변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제도도 많이 개선되고 새로운 이주민들도 다양하게 유입됐지만, 산업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법적으로 5년 이상 거주하면 시민권을 얻는 다른 나라들의 제도에 비추어보면 10년 이상 체류해도 대책이 없는 한국 이민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리터니>에서 추방된 이주민 활동가들의 개인사적 측면을 조명한 그는 다음 작품에선 한국 이주를 희망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3년째 기다리는 사람들을 취재하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주의 과정을 조명한다.

이런 의도의 배경에는 한국인이 이주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태도가 있다. 그래서 마붑 알엄 감독은 왜 그들이 모국을 떠날 수밖에 없고 왜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풀어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마붑 알엄이 한국사회에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사람은 다 똑같다'라는 사실을 인식해 달라는 것. 한국사람들이 다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신국에 따라 차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같은 식구로 보고 자연스럽게 어울리자는 거에요." 강제출국된 미누를 비롯한 모든 이주민 운동가들이 되풀이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며 그는 "이주민 문제는 이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인데…"라고 말을 흐리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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