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의 초상]

"결혼이주여성 중심의 다문화 인식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가 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죠."

17살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 현재는 '인도적 지위'를 인정받아 살고 있는 아웅틴툰(32·버마)씨의 말이다. 아웅틴툰 씨는 현재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미디어교육팀장과 버마행동한국 상담실장을 맡고 있다. 그는 길을 걷다 넘어지며 카메라를 잡으려다 다쳐 왼쪽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MWTV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에스닉 미디어(Ethnic Media)다. 시민방송 RTV에 <이주노동자 세상>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10개 국어로 다국어 뉴스를 내보낸다. 이 방송의 대표이자 다국적 밴드 '스톱 크랙다운(stop crack down·단속을 멈춰라)' 리더였던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38)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붙잡혔다 지난달 23일 네팔로 강제출국 조처를 당했다.

경기 부천시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지난달 26일 아웅틴툰 팀장을 만나 이주노동자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다문화 수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미디어의 시선이나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결혼이주여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한국 산업에 큰 기여를 한 다수의 이주노동자로 관심과 배려의 폭이 넓혀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아웅틴툰 씨는 "미누의 빈자리가 한국사회의 다문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정부와 시민 모두 결혼이주여성으로부터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100점 만점에 55점"

"100점 만점에 55점이 되기도 힘들 겁니다."

미누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웅틴툰 씨 자신이 15년여 한국사회에 살면서 이주노동자를 보는 시선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가 대학 식물학과 1학년생이었던 1994년 당시의 버마는 군부가 등장하며 학문의 자유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일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공부도 실컷 할 수 있다는 '산업연수생'에 희망을 품은 그는 17살의 나이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요일에 인근 공단에 놀러 갔다 친구가 있는 공장을 물으면 손사래를 치며 얘기조차 들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어요."

피부색의 차이에 한국인은 민감했다. 과연 옛날 얘기일 뿐일까.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최소한 밤 10시, 심하면 오전 1시까지 잔업·특근을 해야 했던 그에게 공부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렇게 노동을 한다고 이들을 더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팔짱을 끼고 말하는 버마식대로 행동했다가는 손찌검을 당했다.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은 술·담배를 하지 않는 그를 두고 누구의 술잔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임금을 떼이는 이주노동자 얘기는 고전에 가깝다.

"버마에서는 소도 오후에는 놀립니다"

"우리나라(버마)에서는 소도 오전에 일을 시켰으면 오후에는 놀립니다. 소를 먹지 않는 이유는 종교적인 가르침 때문이지만 평생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소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기도 해요."

이주노동자에게 가장 심한 문화적 충격은 '일중독'이다. 자기 가정보다 회사를 더 사랑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조건과 환경에 아웅틴툰 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한국인은 그런 가치를 이주노동자에게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왜 한국에 들어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들은 한국 산업의 필요에 의해서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제도의 모순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해요."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업, 어업 등으로 이주노동 분야를 분류한다. 허가받은 분야 이외의 업종에서 일할 수 없고, 한 군데서 직장을 놓치면 2달 안에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한다.

불평등 조건을 일부 업주들은 악용해 이주노동자를 학대하거나 임금체불을 일삼는다. 많은 돈을 들이고 한국을 찾는 이들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다. 이들 대부분은 빈국 출신이지만 소개비를 치를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추고, 해외에도 눈을 뜬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자다.

"서로의 차이 알아가는 다문화의 시작 도울 것"

"이주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공장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한국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들도 있죠."

아웅틴툰이 다문화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책임이 한국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MWTV에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그는 자국어로 보건복지법과 산업안전법 등을 번역해 이주노동자로 온 동포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화 경험 역시 그에게는 큰 배울거리다. 그는 수많은 희생에도 민주사회를 이룩한 한국의 역사와 시민사회에서 배워, 버마 민주화에 헌신할 생각이다. 그는 현재 정치활동을 엄벌하는 군사정권 때문에 한국정부에 난민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버마는 135개 민족이 모여서 만든 동맹(Union)체입니다. 비록 지금은 정치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민족간 다툼이 없었던 것은 다르게 사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때문이죠. 이들은 자기 민족에만 집착하지 않아 외국인과의 혼사를 오히려 자랑으로 여깁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에서 다문화 사회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네팔로 추방당한 미누 씨는 다문화란 말이 유행하기 전인 2004년부터 MWTV에서 이주노동자 고국의 문화와 자연, 역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다. 미누는 이를 전국의 초, 중, 고교를 다니며 소개했다. 동료 아웅틴툰 씨는 이주노동자 다국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다 홀로 남았다.

아웅틴툰의 미소는 순수했다. 그러나, 눈빛은 늘 약간의 긴장상태였고, 팔보다 더 아픈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십팔번은 '위 메이크 코리아(We make Korea)-미누'다.

아웅틴툰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미디어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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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