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서구문학, 제국을 넘어 세계로]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제국주의 문화적 배경 공통점유럽·미국 중심 출판 유통시장서 세계문학으로 발돋움 안간힘

보르헤스, 월레 소잉카, 주제 사라마구, 쑤통, 가브리엘 마르케스, 모옌(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문학기자들은 바빠진다. 수상 후보들의 이력을 찾고 유력 작가들의 기사를 미리 써두기도 한다. 후보로 거명되는 국내 작가의 집에 기자들이 진을 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도 '혹시나'하는 기대는 독일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며 '내년을 기약'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문학계 욕망은 서구 중심의 세계문학 지형도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세계문학은 왜 서구문학을 중심으로 지형도가 그려진 걸까? 비 서구문학은 어떻게 세계문학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세계문학의 또 다른 얼굴, 비 서구문학

근대문학, 좁게 1950년대 이후 비 서구문학은 일련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물론 같은 대륙에서도 국가 간 문학적 특수성이 나뉘지만, 이들은 제국주의 시대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시아는 가장 넓은 대륙이다. 광범위한 지역과 다양한 언어, 문화적 배경으로 아시아 문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힘들다. 그러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가 영어나 프랑스어(아프리카),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라틴아메리카)로 쓰인 문학이라면 아시아 문학은 대부분 자국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50년대를 전후로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는 유럽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받았다가 독립했다. 따라서 각 민족의 주체성을 옹호하고 긍지를 되살리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 때문에 아시아 중에서도 중동의 문학은 민족분쟁과 영토분쟁, 종교분쟁의 포화에서 성장한 문학이다. 주로 팔레스타인 난민의 방황, 기독교와 회교도 사이의 알력, 왕족의 부패와 억압받는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구술문학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중남부 아프리카에 2000개 이상의 언어가 있지만 문자가 없어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왔다. 아프리카문학은 레오폴드 생고르(세네갈), 레옹 다마스(프랑스령 기아나)등 프랑스 유학생 출신이 1934~1948년 사이 잡지 <흑인학생>를 창간하며 네그리튀드(N'egritude)운동을 펼치면서 전개된다. 이들은 불어로 자국의 전통문학을 알리고 창작도 겸해 전세계에 아프리카 문학을 소개했다. 아프리카 문학의 가장 큰 주제는 고유 생활풍습 묘사와 흑백갈등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어 등 식민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언어를 기존 언어 관습과의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형식을 모색한다. 마술적 세계관과 이성 패러다임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이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주제 사라마구 등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린다 허천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다양한 서술적 관점과 자의식 등을 사용하는 문학 기법, 현재의 역사를 내포하는 텍스트들과 지나간 과거나 삶, 예술과 대화를 나누며 '과거의 현존'을 드러내는 텍스트'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던한 라틴아메리카문학은 사회로부터 일탈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왜 유럽문학은 세계문학이 됐을까?

근대문학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오랜 기간, 우리 문학계에서는 '세계문학=유럽문학'이란 공식이 공공연하게 통용되어 왔고, 그 배경에는 언어, 문학 시장 등 복잡한 요소들이 엮여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문학관은 출판 시장의 자본주의 논리와 맞물려 이전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강화되고 있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서구 중심으로 재편된 '문학의 전지구촌화'는 몇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우선 출판과 유통시장이 유럽과 미국의 거대 출판사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출판시장이 서구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소통되는 언어가 영어와 프랑스어 같은 몇 개 언어로 통합됐다"고 설명한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와 같은 제 3세계 문학작품이 곧바로 국내 소개되거나, 역으로 국내 문학작품이 제 3세계에 소개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영어나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돼 서구에 소개된 뒤, 한국에 다시 수입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소수언어, 민족문학과 구술문학 등 제 3세계문학의 다양한 자산들이 사장되고, 서구 근대문학의 시각에서 살아남은 작품만이 유통시장에서 살아 남는다.

일례로 지난 주 아시아 출판사에서 장편 <적절한 균형>을 출간한 인도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 역시 서구에서 활동하면서 국내에 알려진 경우다. 인도의 카스트 문제와 여성 문제, 종교·인종 간 갈등 등을 두루 내포한 작품으로 이 작품 역시 서구 사회를 통해 국내 출판계에 소개됐다. 오창은 평론가는 "이제 서구 출판사 중에서도 이름 있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되는 것이 중요하다. 번역이 몇 개 국어로 됐느냐보다 미국, 독일의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느냐가 작품을 알리는 데 관건이 됐다"고 덧붙였다.

정은경 평론가는 "획일적인 문학만이 소통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세계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비 서구 민족문학이 국가 간 개별적으로 계속 소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제 3세계 문학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아시아·아프리카(AA) 작가회의'가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작가·평론가·저널리스트들이 문화 교류와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로 1956년에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작가 회의가 시초이며, 1958년 타시켄트에서 제1차 AA작가대회가 열림으로써 결성됐다.

제3세계 자체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허위개념에 대항하여 역사적 현실과 도덕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해 온 이 회의는 1969년에는 이런 목표에 부응하는 문학을 지지·장려한다는 취지 아래 '로터스(LOTUS) 상'을 제정, 매년 시·산문·극·비평 분야에 탁월한 작가 3인을 선출·수상해 오고 있다. 1974년 김지하 시인이 수상했다.

김재용 문학평론가는 "신생독립국가가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하려는 의지와 소련의 반제국주의 기치가 만난 결과"라고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탄생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90년 소련이 붕괴하며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유명무실해지며 제3세계 문학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어진다.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계의 자생력이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김재용 문학평론가는 비 서구문학이 세계문학계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서구를 통하지 않고 비 서구 문인과 문학작품의 직접적인 소통이 있어야 한다. 비 서구 작가들의 정기적인 만남이 필요하고, 포럼을 통해서 실현돼야 한다. 문학작품을 교류할 기관지와 문학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