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리를 말한다]

1-가로수길(임재범기자 ) 2-가로수길 지역신문 <헬로, 가로수길> 3-홍대 앞
서울의 몇몇 거리는 이제 문화적 정체성의 세밀한 차이점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고 다양해졌다. 물론 이런 기쁜 결과를 얻기까지는 거리마다 짧게는 7년, 길게는 30년 이상의 진통을 겪었다. 지금 당신이 향유하고 있는 그 거리의 달고 쓴 성장기.

가로수길
팔리는 예술가들의 거리

80년대, 이곳은 화랑가였다. 인사동에서 옮겨온 소규모 화랑과 건축 사무소가 드문드문 거리를 점한 한적한 거리. 이것이 현재 가로수길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만약 거리의 문화적 DNA에도 진골과 성골을 가리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가로수길도 성골'이라는 근거로 내세울 수는 있겠다. 물론 훗날 이 거리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이들은 성골, 진골 논란 따위에는 관심 없는 이들이다.

콘셉추얼한 카페와 레스토랑, 패션숍이 즐비한 가로수길의 현재 모습은 90년대 중반부터 생긴 패션 디자이너들의 쇼룸에서 그 전신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2세대 중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욱준의 론 커스텀이 당시 조용하게 문을 열었고 임선옥, 곽현주 그리고 지금은 번잡함을 피해 도산공원으로 피신한 서상영도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테리어 사무실, 포토 스튜디오, 앤티크 가구점, 디자이너 소품 가게 등이 하나 둘 들어섰다. 이 가게의 주인들이야말로 가로수길의 정체성을 만든 주역이라고 볼 수 있다.

1-삼청동길(임재범기자 ) 2-효자동 골목 3-통의동 헌책방 가가린
가로수길의 예술가들은 소위 잘 팔리는 예술가들이다. 순수 미술에 뿌리를 둔 홍대와 달리 이 거리의 창작자들은 패션, 인테리어, 꽃, 사진 등 생활과 밀접한 예술 분야에 종사하며 말랑한 감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30대 이상에 해외 유학파 아티스트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고급스러운 취향 한편으로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진솔하면서도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골드 미스나 초식남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첫 문화 소비 세대들을 이 거리로 끌어들였다.

상업화가 진행된 후에도 가로수길은 다행스럽게 그 정신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플로리스트가 합작해서 만든 '가로수길 맨숀'이나 소품 디자이너 정재경 씨가 운영하는 '세컨드 팩토리' 등은 작가의 작업실과 카페, 레스토랑, 제품 판매, 강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가로수길의 정체성을 이어간다.

최근 이 거리에는 예술가들끼리의 커뮤니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지역 신문도 발행되고 있다. 쇼핑 칼럼니스트 배정현 씨가 발행하는 <헬로, 가로수길>은 이 지역에 거주하거나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명함이나 쇼핑백 사진을 열거하는 단순한 기획임에도 작가들만의 감성이 묻어나 그 자체로 아트 워크가 된다.

서울 최초의 강남 문화 거리라는 정체성 때문에 최근 가로수길을 노리는 대기업들은 더 늘어났다. 제일모직 등이 고급스럽고 창의적인 거리 이미지를 덧입기 위해 연달아 자사 브랜드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변화가 피해갈 수 없는 대세라면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이나 전시회 지원 등을 고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브 앤 테이크'의 도리라기보다는 그것만이 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홍대앞
새로움이라는 이름의 용광로

홍대 앞은 한국에서 문화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처음으로 움튼 지역이다. 가로수길의 감성이 마냥 한들한들, 말랑말랑한 것과 달리 홍대 문화 저변에는 창작열과 더불어 분노가 느껴진다. 군부 독재 시절 자유가 핍박당하고 미술가에 대한 사회적 멸시가 팽배했을 때 홍대인들은 필사적으로 놀고 필사적으로 그렸다. 그랬던 그들의 열기가 남아서인지 세월이 한참 지나 사람들은 떠나고 흥청망청해진 지금에도 홍대의 어떤 곳들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삐뚤어질 테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30년 전 홍대 앞은 화실이 유난히 많다는 것 외에는 아무 특징도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홍대 미대라는 이글거리는 용광로가 이미 이 거리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미대생들의 감성과 상상력이 거리 예술제를 통해 외부로 표출되면서 80년대의 홍대는 화방, 공방, 미술학원, 갤러리가 넘치는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는 정체성을 굳혔다.

90년대에 지역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독특한 카페들이 들어섰고 중반에는 신촌에서 라이브 클럽이 대거 이동하면서 홍대 앞은 젊음, 열기, 폭발 같은 단어들과 세트로 묶이게 되었다. 이 이미지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젊은 작가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 모았고 디자인, 광고, 출판, 사진 등 이른바 영감으로 먹고 산다는 이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홍대는 서울 최대 번화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와중에도 홍대의 본색을 지키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루프, 쌈지스페이스, 상상마당 등 비주류 작가들에게 힘을 싣는 대안공간이 계속 문을 열어 현재의 자본과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지형도를 형성했다. 새로 유입된 자본에도 당연히 지역색이 묻어 있다. 미술가, 음악가들이 운영하는 이리카페, 곱창전골처럼 진정 '홍대스러운' 곳도 있고 그저 평범해 보이는 카페에도 주인의 오타쿠적 성향과 마이너 감성이 인테리어와 메뉴 구성, 맛을 통해 드러난다.

홍대 토박이들은 홍대의 본질이 흐려졌다며 탄식하는 이들에게 "그럼 홍대의 본질이 뭐냐"고 반문한다. 니들이 홍대를 아느냐는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홍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새로움과 다양성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시킨다는 이유로 외부 손님을 배제한다면 홍대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홍대 앞의 정체성을 일군 주역들 – 비록 낯가림은 심할지언정 자기와 다르다고 쉽게 배척할 만큼 철없지 않은 이 예의 바른 오타쿠들이 홍대를 지키는 한 홍대는 영원하다.

삼청동길
젊은 피, 전통의 거리에 반하다

홍대와 가로수길이 그 지역의 거주민들로 인해 문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삼청동은 한옥이라는 특수한 정취를 자아내는 오브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까지 개발 제한이 풀리지 않았던 지역의 사연 때문에 삼청동은 낡은 한옥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거의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예술가들이 먼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눈독을 들였고 그들이 한옥과 이룬 창의적인 조합에 젊은 층이 눈을 빛내며 몰려든 격이다.

"당시 작가들은 전부 삼청동 길을 좋아했어요."

1990년대 말 삼청동에 갤러리 빔을 연 조수연 관장의 말이다. 90년대 들어서 규제가 완화되며 국제 화랑, 아트 선재, 금호 미술관 등이 들어서며 이곳은 화랑 거리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는 곳은 삼청동 수제비집 정도였다.

새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삼청동에는 루이엘이라는 모자 가게가 문을 열게 되는데 지역 최초의 패션 숍인 셈이다. 이를 시작으로 모자, 구두, 액세서리를 만드는 공방이 줄을 이었고 인사동에 있던 몇몇 갤러리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레스토랑과 카페도 급격히 늘었는데 대부분 한옥이라는 자산을 영리하게 이용한 곳들이었다.

로마네꽁띠에서는 개조된 한옥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를 맛볼 수 있고, 쿡앤하임에서는 이탈리안 가정식과 함께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갤러리 피프틴의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국내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 귀여운 소품은 한옥과 매력적인 불균형을 이루며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소비자들의 감성을 흔들었다.

때마침 디카 출사가 한창 유행하던 때라 삼청동의 주말은 카메라를 들고 오는 이들로 북적댔고 이는 당연히 엄청난 홍보 효과를 불러 왔다. 블로그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전통과 현대가 재기 넘치게 조화를 이룬 이 독특한 곳을 경험하고 싶어했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아프리카 미술관 정해광 관장은 현재의 삼청동을 이루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삼청동 땅은 조선 시대부터 외래 문물에 개방적인 경향을 띠었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문화 수용 속도가 빠른 궁인들이 살던 땅이라 바깥 문물을 거침 없이 받아들였으며 이 기운은 삼청동을 넘어서 서촌으로 불리는 효자동, 통의동까지 뻗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유독 삼청동에 몰려 있는 희귀 박물관들을 보면 잠시나마 이 이야기에 솔깃해지기도 한다. 지난해 개관한 아프리카 미술관에는 아프리카와 관련된 조각,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중 세계적인 문화 유산은 약 80점, 국보급은 약 200점 정도로 수준 높은 컬렉션을 구경할 수 있다. 세계 장신구 박물관과 부엉이 박물관도 이국적인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이색 박물관의 시작을 연 티벳 박물관은 이전을 목적으로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

2005년부터 정신 없이 진행된 삼청동의 변화는 지난 해 정점을 거치며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은 삼청동이 조악한 기념품과 그럴듯한 사진 배경 외에는 볼 거리 없는 곳이 되지 않기 위해 지역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일환으로 빔 갤러리의 조수연 관장은 지역색과 잘 어울리면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삼청동의 매력은 전통의 기반 위에 살아 있는 현대성이죠. 한옥에 신선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찾기 때문에 현대 미술, 전통 미술 등 어떤 장르의 작품이 들어와도 지역과 잘 어울립니다. 한국 가요 1세대인 반야월 선생님 같은 분이 어쿠스틱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공연을 한다면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 자체가 삼청동과 잘 어울리는 퍼포먼스가 되지 않을까요?"

효자동길
우리를 가만히 놔두세요

사실 효자동은 앞의 세 거리와 나란히 소개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 아직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이고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통의동, 효자동, 창성동 등지를 아우르는 효자동 거리에 눈독을 들이는 시점이다. 지금 효자동에는 소규모 비영리 갤러리와 간판 없는 작가들의 작업실, 그들이 가는 카페, 그리고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지역 커뮤니티 등 각종 문화 생산 기지들이 비 온 뒤 대나무처럼 쑥쑥, 그러나 조용히 생겨나고 있다.

경복궁 서쪽, 서촌 지역은 경복궁과 청와대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관(官)과의 끈끈한 연은 이 지역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뿌리 역할을 한다. 과거 유신 시절, 군사 정권 시절에 이 지역은 특별히 경비가 삼엄했던 곳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과 성장이 느렸다. 덕분에 70~80년대 서울의 풍광이 얌전히 남았다. 여기에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문화 밸리 조성 움직임은 언제라도 이 지역에 예술 에너지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해 왔다.

이 지역 최초의 화랑은 진 화랑이지만 현재 효자동 갤러리들의 정체성을 말하려면 7년 전 문을 연 브레인 팩토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곳 디렉터에 따르면 당시 대림 미술관과 진 화랑을 제외하고는 이 거리에 아무 것도 없었다.

개발이 덜 되고 고즈넉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자리 잡은 브레인 팩토리는 비영리 화랑을 표방하며 작가들에게 무료로 대관을 해주고 있다. 전시의 내용 역시 상업 화랑이 시도할 수 없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얼핏 홍대의 대안공간과 비슷한 이러한 특성은 그 이후에 입주한 갤러리들의 성격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현재 효자동 거리에 갤러리가 10여 곳 정도 있는데 그 중 진 화랑을 제외하고 상업 화랑을 표방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어요. 갤러리 관장들의 나이도 많아야 마흔 정도로, 젊고 창의적인 전시를 하는 작가들을 선호합니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도 행인보다는 미술에 조예가 있거나 같은 업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러다 보니 불특정 다수와의 활발한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는 자연히 다른 지역으로 빠지면서 지역의 문화색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관도 처음에는 통의동을 고려했다가 유동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삼청동으로 노선을 바꿨다. 이런 특성은 먹고 마시는 공간에도 영향을 미쳐 가구 쇼룸과 카페를 겸한 MK2, 갤러리 카페 고희, 가수 윤건의 친환경 카페 숲 등이 유명하다. 이 곳은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자 휴식처로서 소비지인 동시에 생산지라는 특징을 갖는다.

요즘 정부는 효자동에 문화센터를 짓고 북촌의 에너지를 이 곳과 연결시키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곳의 예술가들 중에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언론과 대중의 과도한 관심에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있다. 설치미술가 겸 카페 MK2의 주인인 이미경 씨는 "거리의 문화는 관심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자생적으로 생겨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인데, 여기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이나 주변의 과도한 예단은 이런 자발적인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말

(사진제공='아트 인 서울', 전영미 외, 랜덤하우스코리아)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