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정치]

왼쪽부터 시인 김행숙, 시인 진은영, 시인 이장욱, 시인 황병승
2000년대 문학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시와 소설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편혜영의 두 권의 소설집은 특정한 사건, 사고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처한 어둡고 우울한 시대상의 묘사를 통해 정치성을 드러낸다.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은 인간, 시체, 유령 등 불분명한 화자가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고, 늪과 저수지, 알 수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 역시 건조한 문체를 통해 평범한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함돈균 평론가는 "편혜영의 소설은 시대가 갖고 있는 억압의 상황을 작가의 무의식적 지점에서 드러내고 있다. 건조하면서도 섬뜩한 묘사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정치적 메타포"라고 설명했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 서하진의 <착한 가족> 등 소설에는 소비자본주의 시대, '취향'의 문제가 등장한다. 패션과 주거 문화, 여가 생활 등 계급에 따른 취향(Habitus, 권력 기반의 사회질서가 생산, 지각, 경험하게 되는 일상생활의 장場)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산업자본시대를 넘어 상징자본시대로 들어선 한국사회를 묘사한다.

시단의 변화는 한층 더 활발하다. 특히 진은영, 황병승, 이장욱 등 '전위적' 작품을 쓴다는 젊은 시인들이 달라진 정치성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황병승 시인은 첫 시집 <여장 남자 시코쿠>로 국내 문학작품으로는 최초로 본격적인 퀴어 담론을 열었다. 그의 작품 속 시적 화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이고, 이 아이는 성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시인 이장욱은 이 시집에 붙인 해설에서 "파편적 서정성, 이질적 화법, 혼종적 이미지들로 미만해 있는데, 이는 저 '퀴어 미학'의 필연적인 원인이자 결과이다. 모든 경계/위계/질서는 이 발화의 내용에 의해 부정되기 이전에 발화의 존재 방식 자체 안에서 부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장욱 시인 역시 2000년대 식 문학의 정치성을 드러낸 문인이다. 그는 시 '동사무소에 가자'에서 공동체의 지식들이 하나의 의견 또는 특권적 지식에 불과함을 폭로함으로써 정치체제의 지식과 믿음의 질서를 탈신화한다. 그의 또 다른 시 '불가능한 이야기'에서는 집과 직장을 왕복하는 일상의 순간에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이 발화되면서, 일상의 단절을 초래하면서, 현실 속 실재하는 것들의 가능성을 되묻고 있다.

백낙청 문학평론가는 <창작과 비평> 겨울호 '현대시와 근대성, 그리고 대중의 삶'에서 진은영, 김언, 김행숙 등을 거론한다. 우선 진은영 시인은 첫 시집의 표제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 지성사 2003) 중 '자본주의'와 '문학' 항목을 보면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러의 컴컴한 터널/-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중에서)

이런 사유는 동일한 시집의 '시(詩)'나 다음 시집의 '앤솔로지'(<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 지성사, 2008)에서도 발견된다.

김언은 최근 시집 <소설을 쓰자>에서 정상적인 모국어 사용으로부터 전적으로 일탈을 시도한다. 일례로 시 '분신'은 분신이라는 사건 자체를 독특한 언어로 포착하며 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분신자살은 통상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갖지만, 시인은 특유의 무정한 스타일을 구사하며 충격적인 순간을 사건화한다.

백낙청 평론가는 같은 글에서 "김행숙의 <사춘기>와 <이별능력>같은 시집은 김언의 <소설을 쓰자> 못지않게 난해한 운산을 요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말들의 운행에 더욱 순수하게 몰입한 결과라는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