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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정신은 살아있는가

[왜 팝아트인가] 앤디 워홀서 데미안 허스트로… 한·중·일 등 지배적 미술 사조로
  • 고영훈, '코카콜라' 161×130cm_oil on canvas_1974(왼쪽), 홍지연, 'X'80×80cm_arylic on canvas_2009
지난 11일, 세계적인 미술품 옥션 회사인 소더비즈에 앤디 워홀의 작품 경매가 있었다. 초기 실크스크린 작품인 '200개의 1달러 지폐'로, 이는 당초 예상 낙찰가보다 무려 3배에 이르는 4천 380만 달러(약 507억 2천 만원)에 낙찰됐다.

생전에 이미 '상업미술가'에서 '사업미술가'로 전환한다던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팝 아트는 돈과 구색이 잘 맞는 장르가 됐다. 가장 대중 친화적인, 그래서 그 명칭도 '대중 미술'인 팝 아트가 아트페어와 옥션에서 대중과 멀고도 먼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앤디 워홀의 사업 감각 촉수는 '제2의 피카소'로 불리는 영국 현대미술계의 악동, 데미안 허스트로 건내져 수백배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거대 자본주의 시대에 본래 가지고 있던 가치나 정신이 퇴색된 채 소비재로서만 기능하는 경우는 적잖이 보아왔다. 1960년대 반문화의 상징이었던 밥 딜런의 노래는 미국의 대형회계법인의 광고음악으로 채택되기도 했고 쿠바혁명가 체 게바라는 스타벅스의 일회용 컵이나 티셔츠 위로 옮아갔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팝아트

1950년대 초 영국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팝 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중소비문화의 등장으로 기획된 전시에 걸린 작품 중 리차드 해밀턴의 <오늘날의 가정을 그렇게 색다르고, 흥미를 끌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영국 최초의 팝 아트 작품으로 꼽힌다.

  • 1-하인두, '무제' 117×80cm_캔버스에 유화_1970 2-앤디워홀, ⓒCampbell's Soup Box/Campbell's soup, seoul 2009 3-이길호 '무희자연' 190×120cm 장지에 인두, 담채, 배접, 코팅, 2009
팝 아트의 원조는 미국의 앤디 워홀이 아니라 영국의 리차드 해밀턴이라는 것. 포토 콜라주인 작품 속에서 근육질의 남자는 팝(pop)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있고 쇼파 위에 앉은 여자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젊고 성적이며, 대중적이고, 대량생산적이라는 대중문화의 속성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팝 아트가 정착한 곳은 뉴욕이었다. 그리고 사후까지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앤디 워홀에 이르러서 팝 아트의 논의는 증폭됐다. 유명인사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으로 반복적으로 찍어내거나 코카콜라 병,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잡동사니까지도 캔버스 위에 옮겨놓으면서 미국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의 일리티즘(elitism)에 맞섰다.

앤디 워홀과 동시대에 살았던 미국의 비평가 수잔 손택은 미국에서 팝 아트의 등장을 '해석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특징'으로 받아들였다. 곧 '뻔히 보이는 내용을 썼으니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말이다.

팝아트, 한국 현대미술의 재구성

팝 아트는 작가들의 이미지에 대한 작화 방식과 예술에 임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창조나 개성이 예술가들의 미덕이었다면, 팝 아트로 넘어오면서 이미 있는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작화 방식이 보편화되는 현상을 가져왔다"고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설명한다.

이렇게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점이 된 팝 아트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지배적인 미술사조로 자리잡고 있다. 하나의 경향으로 봤을 때, 팝 아트는 국내에서 가장 두터운 작가층을 가지고 있다.

1967년에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을 한국 팝 아트의 시초로 보는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간헐적으로 이어져 오다가 1980년대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작품들의 등장으로 한국 팝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윤 평론가는 또한 1990년대 젊은 작가들의 등장으로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서, 중국의 팝과 일본의 팝의 영향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팝 정신' 없는 팝아트는 공허함뿐

그러나 한국의 팝은 다소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 화단에서 '장기집권'하고 있는 한국 팝 아트가 과연 '팝의 정신'을 따르고 있냐는 비판과 자성이 없지 않다. 칫솔, 비누, 빈 상자, 빈 병처럼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하찮은 물건을 미술의 소재로 삼았다는 파격성, 이로 인해 피어난 친근함으로 처음으로 대중에 '말을 건네던' 미술이 바로 '팝 아트'였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양말짝이 그것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라는 팝 아트 정신은 나를 철학적으로 안락하게 한다. 이처럼 미술을 통해서 쉽게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바로 팝 아트의 정신이다"라고 조영남은 자신의 저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서 강조한다.

한국 팝 아트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여전히 미술관 벽에 걸린 작품에서 심오한 의미 찾기에 바쁜 관객과 흔하디 흔한 팝 아트의 소재가 슬슬 지루해진다는 관객이다. 팝 아트 작품 중에 팝 아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방증일거다.

양지윤 미술평론가는 "주류 문화의 기호를 도용하고 매스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차용하는 현재의 팝 아트에서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마케팅 징후만 보인다"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물론 한국의 모든 팝 아트 작품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팝 아트가 이름 그대로 '대중 미술'일 수 있는 친화력과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면, 팝 아트는 정신이 실종된 채 자본주의에 잠식된 '체 게바라의 얼굴'이나 '밥 딜런의 노래'처럼 자칫 예술이 아닌 소비재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을 아무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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