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팝아트인가] 팝 아티스트 조영남 화투·트럼프 등 놀이문화 예술작품으로 변용… 인사미술제 초청받아

조영남은 가수다. 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그렇고 공식적인 그의 직업 역시 가수로 명기돼 있다.

하지만 그가 가수, 그것도 대중가수가 된 것이 지극히 '팝아트적'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그가 40여 년의 음악생활에 앞서 미술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음악과 미술을 병행하고 있으며 평단에서 역량있는 작가이자 이론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조영남(64)씨는 1973년 서울 인사동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70년대 말 미국 유학중 뉴욕과 워싱터DC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귀국 이후 1990년 LA 시몬슨갤러리 전시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3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여러권의 미술 관련 이론서와 에세이를 출간, 작가 역량 못지 않은 이론가로서의 내공을 지녔다.

조영남씨가 '한국의 팝아트'를 주제로 개최한 '제3회 인사미술제'(11.18∼11.24)에 당당히 초청받은 이유다. 그의 작품전을 기획한 윤갤러리의 윤영철 대표는 "조영남씨는 국민적인 대중가수라는 이미지로 인해 그의 화가적인 재능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그의 화가적인 역량과 위치를 재조명해서 한국의 대표적인 팝작가임을 입증해 보이고자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영남씨는 삶 자체가 팝적이다"고 강조했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은, 오히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팝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18일 윤갤러리에서 마주한 작품들과 조영남 씨는 무척 닮아 보였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레디메이드)를 미술의 범위에 편입시키고, 앤디 워홀이 대중적인 이미지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듯 우리가 터부시하는 화투, 트럼프 등 놀이문화를 미술 영역으로 들여와 예술작품으로 변용시킨 파격은 '재미(Fun)'를 추구하는 그의 자유로운 삶과 유사하다.

왼쪽부터 '극동에서 온 꽃', '화투와 바둑이 있는 슬픈 영광'
그는 <현대인도 못 알아 먹는 현대미술>(한길사)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미술이란 우리의 두 눈을 즐겁게 하거나 언짢게 하는 모든 것, 즉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다"고 말한다.

팝아트에 대한 정의 또한 조영남답다. "팝아트? 무(無)아트이자 올(All)아트이지."

일반에게 음악인으로 알려져 '화가 조영남'은 아직 낯선데, 미술을 본격적으로 한 시기와 계기는

"어릴 적부터 미술에 대한 기억, 열정을 갖고 있다 군대 생활 중 <아침이슬>로 유명한 김민기(서울대 미대)를 만나 미술에 빠지면서 부대에서 그림에 몰두했다. 입대 전 덕수궁에서 열린 유럽현대미술전에서 니콜라 드 스타엘의 작품에 매료된 적이 있어 반추상의 스타엘풍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때 미술을 본격적으로 했다"

당시 그림은 지금의 팝아트와는 차이가 있을 텐데

"아마 내 팝아트의 세계는 대학에서 클래식을 그만두고 대중음악, 가요를 선택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음대를 계속 다녔으면 기존 세력에 머물렀을 텐데 대중이 좋아하고 그들에게 쉬운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대중가요를 불렀다. '대중성'이 팝아트의 핵심이 아닌가? 미술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를 답습했는데 그런 스탠더드 화가가 돼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보고 나만의 방향을 모색했다. 니콜라 드 스타엘풍의 그림을 그리면서 팝아트에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미술평론가 오광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선생은 "조영남이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화가가 됐을 것"이라며 칭찬했는데 당시 작품이 갖는 의미는

"팝아트의 순수한 정신이 담겨 있는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다. 니콜라 드 스타엘풍의 반추상이었는데 초가집, 청계천, 서울 풍경들을 그렸다. 내 그림 중 가장 비싼 작품이기도 하다. 팝아트의 정신이 배인 작품으로 지금 팝아트 작품들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가 화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막상 미국으로 가 현대 미술의 종합전시장을 둘러보고 '절망'했었다. 온갖 조류와 기술이 먼저 나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 사람들이 하는 화투를 보고 서양에는 없고, 일본에서 나왔지만 완전히 한국화된, 그리고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소재, 거기에다 놀이문화에 동양의 사상까지 담긴 독특성이 한순간에 와 닿았다. 그래서 화투 작품이 나왔고 미국 전시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작품 소재로 화투의 매력은

"화투는 놀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하는 호모루덴스다. 한국인의 심심풀이를 해소시키는 데 화투 만한 것이 드물다. 심심풀이란 뭐냐. 외로움을 떨쳐내는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화투는 인간의 삶이다. 화투 그림이 지닌 이중성, 다양성, 무궁무진한 점이 작품 소재로 그만이다"

바둑을 소재로 한 작품도 인상적인데 화투와는 어떻게 다른가

"화투와 바둑은 공자식으로 말하면 삶이 살아 볼 만한 의미가 있는 한판의 놀이이고 노자식으로 말하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해 주는 것인데 바둑은 그 자체가 매우 미학적이다. 몬드리안, 칸딘스키의 점, 선, 면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바둑판과 바둑알은 우주 철학을 담고 있다. 바둑알은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기고 짐에 따라 주인이 바뀔 수 있다.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바둑은 굉장한 소재로 언젠가 바둑만 갖고 작품을 해 볼 생각이다"

팝아트를 정의한다면

"(얼마간 생각하다)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삶의 측면에서 '덧없음'과 '덧있음'을 총칭한다고 본다. 예술적으로는 아트(art)가 없다는 것, 즉 '무(無)아트'이고, 또한 모든 것이 아트라는 '올(All)아트'라고 할 수 있다"

팝아트 이후의 미술을 생각한다면

"1940년대 팝아트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백남준, 죠셉보이스, 미래주의, 기계주의 등도 거대한 팝아트에 포함된다. 팝아트 이후의 미술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