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복지와 사람의 건강] 동물스트레스, 항생제, 성장촉진제 육류에 남아동물 생명존중 안전한 먹을거리 건강한 삶의 조건

건강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이 인간의 건강을 보장한다는 동물복지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한 동물보호단체가 몰래 카메라로 촬영한 병아리 부화공장 내부. 막 부화한 병아리들이 '삐악 삐악' 소리를 내며, 세상을 향해 앙증맞고 힘찬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수컷 병아리들은 곧장 분쇄기로 보내진다.

알을 낳지 못하고, 크게 자라지도 못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혹한 사형의 이유다. 살아남은 닭들에게도 행복한 삶이 기다리는 건 아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 갇혀 평생 혹사당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계란 후라이, 햄버거, 삼겹살처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육류를 제공하는 동물들은 어떻게 자라고, 도살당할까? 사육동물들의 삶을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복지문제는 생명윤리적 차원에서 간과할 수 없으며, 인간의 건강에도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움직임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조금 비싸더라도 유정란 등 동물복지제도를 도입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소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소의 웰빙지수' 관리 표준을 발표했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국내 농장동물 복지지침을 개발 중이다.

무심코 먹어 온 달걀과 닭, 돼지, 소의 삶을 생각해 본다.

최소한의 움직임도 힘든 사육공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겠다는 경제논리에 입각해 지어진 공장형 양계장. 좁은 케이지(cage·철망으로 만든 우리) 안에 닭들이 빽빽이 들어있다. 보통 닭 한 마리당 부여된 공간은 A4 용지 한 장보다 적다. 이런 케이지는 아파트처럼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이처럼 거대한 축사 내부의 제한된 환경에서 사는 닭들은 바닥 긁기, 먹이 찾기,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점프하기, 날갯짓 하기 같은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밀집사육은 닭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박연주 팀장은 "밀집 공간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자신의 깃털을 쪼거나 다른 개체를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공격성이 눈에 띄게 높거나, 매우 무기력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개체를 쪼아 죽게 만들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부 사육자들은 부리와 발톱, 발가락을 마취도 하지 않고 잘라 버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의 닭들이 매일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로 사육장은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 진주산업대 동물소재공학과 김두한 교수에 따르면, 부패된 분변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 자극적인 화학성분들을 발생시켜 폐렴과 같은 호흡기 질환의 발생률을 높이고, 피부염을 유발시킨다.

야외 환경에서는 햇빛의 살균선과 공기가 빠른 속도로 퇴비를 말리고, 분변의 미생물들을 죽인다. 그러나 환기가 잘 되지 않고, 햇볕이 들지 않으며, 축축한 바닥의 계사 내부에서는 살모넬라나 캄필로박터, H5N1과 같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번성한다.

소나 돼지의 생활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돼지들 역시 폭 60cm, 길이 200cm 남짓한 '스톨(금속 틀)'에 갇혀 살아간다. 배변과 섭식을 위해 앉았다 일어섰다 같은 최소한의 동작만 겨우 할 수 있는 면적이다. 스트레칭이나 돌아 다니기는 꿈도 못 꾼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돼지들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 뜯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사육자들은 생후 10여일 쯤 지났을 때 송곳니와 돼지꼬리를 뽑아버린다. 물론 마취는 하지 않는다.

또한, 암퇘지 한 마리는 보통 일년에 2회씩 새끼를 낳는다. 돼지의 임신기간은 114일. 약 20일 간의 포유기를 지나 새끼 돼지들이 젖을 떼고 나면 다시 교배에 들어간다. 암퇘지들은 일년 내내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며 출산기계의 삶을 강요당한다. 더 많은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과도하게 배란촉진제를 놓기도 한다.

동물복지협회 박 팀장은 돼지도 모성애가 있어 무리와 떨어져 새끼를 낳는 본능이 있지만 돈사에는 별도의 분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고, 움직이기도 힘든 비좁은 스톨에서 출산을 하므로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돼지는 원래 호흡기 질환에 취약한데다 청결하지 못한 사육환경으로 인해 폐렴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항생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물이 돼지다.

사육환경뿐 아니라, 마구잡이식 운송도 문제다. 트럭에 싣고 내릴 때 운송자의 부적절한 취급으로 동물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하고, 운송 중 먹이나 물, 휴식이 제공되지 않아 고통받는다.

성장촉진제 맞은 닭이 성조숙증을?

현대의 공장식 축산업은 동물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안전과 복지를 박탈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것 이상의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집약적 대단위 생산체계 하에서 생산된 육류의 안전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비좁고 비위생적인 사육공간에서 발생과 확산이 촉진된 바이러스들이 인류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물에게 과다 투여한 항생제가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물복지협회는 KBS 스페셜의 2006년 보도내용을 인용해 이 같이 주장하고 있다. 2006년 천안에서 보쌈을 먹고 집단식중독에 걸린 147명의 환자들 중 열명이 항생제에 내성반응을 보이며 일주일 이상 치료를 받았다.

이들 환자로부터 검출한 살모넬라균의 검사를 병원 측에 의뢰한 결과, 무려 7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균은 특히 농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항생제인 테트라싸이클린과 암피실린에 내성을 보였다. 축산의 과도한 항생제 사용으로 생긴 내성균이 식품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방영됐던 SBS 스페셜 '생명의 선택 2부'에서 비좁은 사육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 닭이 낳은 달걀 속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높게 나타났다는 한 미국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보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렇게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은 달걀은 먹는 사람의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파괴의 씨앗 GMO>를 쓴 저자 윌리엄 엥달은 책 속에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유전자 조작 의약품인 젖소산유촉진제가 거인증과 유방암, 결장암, 전립선암의 발생률을 몇 배나 높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장촉진제를 사용한 가금류를 먹으면 빠른 초경 등 여아의 성조숙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물복지제도 도입한 상품 수요증가

안전성뿐 아니라 실내에서 대규모 사육된 육류의 질 또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예로, 방목한 돼지의 고기가 더 붉고, 철분과 비타민이 더 풍부하다. 무정란에 비해 유정란이 영양이 풍부하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정란은 닭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암탉과 수탉이 만나 나온 달걀이다. 반면, 무정란은 양계장에 암탉을 가둬놓고, 수탉 없이 인공수정으로 알만 낳게 해서 나온 달걀이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동물의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면서 동물복지제도를 도입한 축산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동물복지제도는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축사에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가 첨가된 사료를 먹으며, 비위생적 환경에서 각종 질병과 세균에 노출된 채 사육되는 축산방식을 철저히 지양하는 것이다. 복지를 고려한 사육 프로그램을 통해 질병의 위험과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풀무원은 2007년 7월부터 동물복지제도를 도입했다. 자사 브랜드 계란인 '자연란'과 계열회사인 친환경식품 유통기업 올가홀푸드에서 판매하는 육류와 계란, 우유에 대해 '동물복지 5대 자유원칙'을 정했다. 이 원칙은 한국동물복지협회의 자문을 받아 만든 것으로,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 상처 및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한다.

풀푸원은 실제 자사의 모든 계란류와 육류에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항균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영양사료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가의 한우와 젖소는 한 마리당 8.25 제곱 미터에서, 산란계는 세 마리당 3.3 제곱미터의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방사된다. 또, 전문수의사에게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으며 부상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올가홀푸드 내부에는 식품 안전팀이 있어 동물복지 기준과 평가표를 작성해 이를 근거로 농장 실사 후 적합한 농장에 한해서만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부여하며, 정기적인 농장 점검을 통해 적합, 재점검, 인증취소 등의 판정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복지 상품은 유정란 10입 4200원, 무항생제 등심 100g 1만 4000원 등 일반 상품에 비해 30% 가량 비싸지만 판매율은 이전보다 50~60% 가량 높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아이쿱생협이나 두레, 한살림, 초록마을 등 친환경 매장들도 동물복지를 실현한 농장에서 생산되는 육류를 취급하고 있다.

아이쿱생협 축산팀 유호 팀장은 "유기농 사료를 먹이는 것은 사료값이 비싸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돼지와 소를 방목해 키우려면 학교 운동장 크기의 사육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농장에서 실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전 매장에서 항생제를 쓰지 않은 무항생제 축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항생제를 쓰지 않으려면, 공장형 밀집사육시설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한다. 아이쿱생협에서 판매되는 무항생제 소의 경우, 한 마리 당 7제곱미터의 공간에서 키우고 있다. 유정란을 생산하는 산란계는 활동이 자유롭도록 방사하고 있으며, 암수 비율도 16:1 정도로 하고 있다. 또,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는 돼지농장을 발굴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행복한 소의 기준은?

농촌진흥청은 '소의 참살이' 기준을 발표했다. 소의 참살이(웰빙)란 소가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의 잠자리, 영양상태, 분의 색깔과 형태 등의 평가로 소를 관리하는 기술을 말한다.

농촌진흥청 낙농과 기광석 연구원에 따르면, 소의 잠자리 관리는 소가 적어도 11~12시간 편하게 되새김질 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는 우상(牛床, 소의 잠자리)의 쾌적지수(CCQ)로 표현하는데, 수치가 80% 이상이면 소를 행복하게 관리한다는 기준이 되지만 50% 미만인 경우엔 반드시 원인을 찾아 해결해줘야 한다.

또, 소의 분 색깔이 암록색, 황갈색, 노란색에 가까운 갈색인 경우는 건강한 상태이지만 피가 섞이거나 회색, 노란색, 연록색인 경우 질병의 징후가 있으므로 반드시 수의사의 진찰을 받게 해야 한다.

기 연구원은 "소의 참살이 관리기준을 따르는 것은 아직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아 강제성은 없지만 이를 자발적으로 지켜가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 고기는 소비자가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농장동물복지제도 보편화될까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방역부 동물보호과 한종현 과장은 권고수준의 국내 농장동물 복지지침을 현재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국제기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EU 등 선진사례를 참고하고, 국내현실을 반영한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한 과장은 국내에서 동물복지형 축산농장 인증제 및 축산물 표시제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으나, 동물복지형 생산시스템 도입에 따른 축산농가의 손익여부 등에 대한 분석과 국내 소비자의 동물복지형 축산물 구입의사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동물복지 분야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공감대를 도출하기 위해 내년부터 관련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동물복지포럼'을 창립해 운영할 계획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