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연재 vs 단행본 '다른 그림 찾기'] 대부분 문장·단어 등 미묘한 차이… 내용이 압축·추가·변화되기도

1-소설가 백영옥
2-소설가 김훈
3-소설가 공선옥
4-소설가 박범신
한국에서 '인터넷 연재 소설'은 더 이상 진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공지영의 <도가니>, 김훈의 <공무도하>,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등 줄잡아 10여 편의 작품들이 인터넷 연재를 통해 먼저 선보인 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인터넷 연재 소설은 출간 후 독자 반응이 일반 소설보다 빠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재기간 내내 회자되며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때문. 그러나 한편으로 단행본 편집 전에 작품 전문이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작가와 출판사가 부담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왜 독자들은 '공짜'인 인터넷 연재보다 단행본으로 소설을 읽는 걸까? 인터넷 연재 소설은 전작 소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Style 1. 달라진 문장을 찾아라

어린 시절 '다른 그림 찾기'에 빠져본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터다. 인터넷 연재 소설과 단행본의 차이를 발견하는 건 그 '다른 그림 찾기'를 30대 버전으로 즐기는 느낌이다. 대부분 인터넷 연재소설이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문장과 단어 등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훨씬 세련된 느낌을 준다.

왼쪽부터 김훈 '공무도하',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박범신 '촐라체',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시봉은 시설에서 몸무게가 늘어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원장선생님은 늘 그것에 감사하라고 말했다. 우리 키가 크고, 우리 몸무게가 늘어난 것은 모두 원장선생님이 준 알약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꼬박꼬박 하루 네 알의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받아먹었다. 나머지 시간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상표를 붙이는 일을 했다.'(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연재 중에서)

'시봉은 시설에서 몸무게가 늘어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복지사들은 늘 그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했다. 우리의 키가 자라나고, 우리의 몸무게가 늘어난 것은 모두 자신들이 준 알약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꼬박꼬박 네 알의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받아먹었다. 처음 알약을 받아먹었을 땐, 속이 좋지 않고 시소 위를 걷는 것처럼 어지러웠으나, 지금은 알약을 먹지 않으면 어지럽다.'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단행본 중에서)

공지영의 <도가니>의 경우 연재 장면 번호가 붙어 있는데, 이 번호 중 유난히 짧거나 긴 대목이 있다. 단행본으로 퇴고, 편집하면서 바뀐 부분이다. 편집과정을 거치며 내용이 얼마나 압축, 추가, 변화했는지 단행본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서사의 뼈대가 바뀌진 않았지만, 작품 배경의 분위기 묘사 등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기적이 울었다. 소년의 몸은 기차에 부딪혀 팝콘처럼 가벼이 튀겨나갔고 안개 속에서 붉은 피들이 천천히 젖은 땅 위로 흘러내렸다.' (공지영, <도가니>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연재 중에서)

'기적이 울었다. 소년의 몸은 기차에 부딪혀 팝콘처럼 가벼이 튕겨나갔고 붉은 피가 천천히 젖은 땅으로 흘러내렸다. 안개는 그 붉은빛을 덮었다.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고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깊은 물속 같았다. 소년의 눈꺼풀이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리고 이어 안개가 점령한 유백색 허공에 고정되었다.'(공지영, <도가니> 단행본 부분)

왼쪽부터 소설가 박민규(사진제공=중앙일보), 소설가 정이현
<도가니>를 편집했던 김정혜 창비 부장은 "<도가니>를 편집하며 호흡을 완만하게 조절하고 에피소드를 삽입하거나 문장을 손보았다. 연재 당시 사건 주인공 강인호와 서유진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 훨씬 적었지만, 단행본으로 묶으며 그 부분을 추가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Style 2. 마지막 반전은 사서 읽으세요

인터넷 연재에서 '해피엔딩' 또는 '투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로 이야기를 끝낸 후 단행본에서 반전을 실은 소설도 있다.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은 총 11부의 이야기 중 10부까지 인터넷을 통해 연재한 후, 11부 '다이어트의 여왕, 그후 이야기'는 단행본을 묶으며 추가했다. 주목할 점은 11부가 앞의 모든 이야기를 뒤엎는 반전이라는 것.

백영옥 작가는 이전 인터뷰에서 "작품 전체 구상이 나온 상태에서 연재했다. 인터넷 연재를 10부까지만 했던 이유는 인터넷 연재만큼은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7개월에 걸쳐서 인터넷 연재를 했는데 마치 마을의 이장이 된 느낌이었다. 그 마을에서는 따뜻한 이야기로 결말을 맺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작가는 "쓸 지면과 매체 독자를 파악하고 소설을 쓴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경우 신문과 문예지, 인터넷에 싣는 작품 경향은 전부 다르다는 것. 인터넷 연재의 경우도 네이버나 다음 블로그는 불특정 다수, 예스 24는 20~30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매체, 문학동네 블로그는 소설을 많이 읽는 마니아 층 등으로 독자군이 다르고 작가는 이 독자들을 겨냥해 작품을 쓴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정이현 '너는 모른다'
"주어진 매체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거든요. 독자와의 소통을 경험하고 싶고, 꾸준히 교감하며 글을 쓰고 싶은 거죠."

연재 지면과 독자에 관한 대답으로 미루어 볼 때, 백영옥 작가가 단행본에 반전을 추가한 것은 일종의 차별화 전략으로 보인다.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이 구상이 끝난 상태에서 연재와 단행본 차이를 둔 작품이라면,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연재 과정에서 단행본 결말의 방향을 바꾼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묶이며 에필로그,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이 추가로 삽입됐다. 영화의 디렉터스 컷을 본 따 라이터스 컷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에필로그는 3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아 독자가 각자 취향에 맞는 결말을 상상하도록 했다.

이 책을 편집한 위즈덤하우스 한수미 팀장은 "인터넷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얻은 결과다. 박민규 작가가 댓글을 통해 독자들이 다양한 결말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버전의 결말을 생각해 짠 묘안이었다"고 말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책을 사면 음반이 함께 따라 오는데, 이 음반은 연재할 때 백그라운드로 깔린 음악을 CD에 담은 것이다. 출판사 측은 인터넷 연재로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단행본을 읽을 때도 같은 느낌을 선사해 주기 위해서 음반을 별도로 제작해 단행본에 담았다.

Style 3. 신문 연재와 비슷한 편집

현재 인터넷 연재 소설이 가장 많이 출간된 출판사는 문학동네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이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서점 블로그 연재 후 출간됐고, 김훈의 <공무도하>,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문학동네 블로그 연재 후 올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번 주 출간된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역시 인터넷 교보문고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묶인 작품이다.

조연주 문학동네 부장은 "인터넷 연재 소설 편집 작업도 다른 장편소설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장편소설의 경우 신문과 문예계간지 등을 통해 연재한 후 단행본으로 묶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편집자의 손을 다시 한 번 거친다.

일일연재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연재소설 편집은 신문 연재소설 편집과 비슷하다. 일일 연재의 특성상 에피소드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거나, 연재 분량에 맞춰 작가의 입담이 '과도하게' 들어간 부분을 줄이는 편집이 많다.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내용이 압축적으로 바뀌며 작품 분량이 대폭 줄었다.

조연주 부장은 "작가와 작품 내용에 따라서 편집이 달라진다. 일례로 한 가지 에피소드로 지나치게 이야기가 뻗어나가면 전체 내용에 맞춰 편집에서 생략하는 방식이다. 내용이 대폭 수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한국문학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디지로그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네티즌과 소통하면서 소설을 쓰고, 인쇄매체로 넘어가서 소설책이 나오잖아요. 아주 좋은 밀월관계예요.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읽는 것과 책을 통해 읽는 것은 분명히 다른 독서행위죠. 한동안 인터넷과 책이 공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석영 소설가는 지난 달 29일 독자들과 함께 찾은 지리산 둘레길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개밥바라기 별>을 연재했던 작가는 요즘 다시 인터파크 사이트에 장편 <강남몽>을 연재 중이다. 강남몽 연재는 황 작가가 인터파크 측에 먼저 연재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밀월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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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