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최윤정 개인전 <Moderno>

이제 이런 이미지야 흔한 것이다. 마이클 잭슨과 미키 마우스, 코카 콜라와 스타벅스. 소비 문화의 팽창과 대중화를 바탕으로 한 근대 미국식 자본주의의 팝 아이콘들. 흔하다 못해 낡아 보일 지경이다.

그러니 그 기호들을 차용하는 수법 역시 촌스러운 것이다. 해석 또한 욀 수 있을 정도다. 계급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정체성을 대체한 소비문화적 취향에 대한 지시, 혹은 비판.

그런데 최윤정 작가가 이 도식을 재탕하고 나섰다. 아이콘들이 새겨진 색안경을 낀 아이들의 초상을 줄줄이 선보인다. '팝 키드pop kids' 시리즈다. 알록달록한 색과 평면성으로 만들어낸 궁극의 발랄함!

가로 세로 1m 정사각형에 아이들의 얼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안경을 쓰고 있다기보다, 안경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안경 속 아이콘과 닮았다. 마이클 잭슨을 눈에 담은 아이는 검은 머리에 뾰족한 코, 옆으로 긴 입술을 가졌다. 미키 마우스 안경을 쓴 아이의 입은 세모꼴이다. 코카 콜라 키드가 성마른 인상이라면, 스타벅스 키드의 볼은 둥글게 부풀었다. 이들은 각각의 흘림체와 원형의 상표를 빼다 박았다.

오래된 팝 아이콘들은 당대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워너비'들을 통해 변주되고 확산되고 세대를 물리는 자기복제의 기제로 살아 남는다. 올해만 해도 '80년대의 귀환' 트렌드 속에 얼마나 많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흔적들이 융성했나. 그 와중에 '원본'의 '빈티지'로서의 위상은 높아진다. 희귀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복제되었기 때문에 얻는 가치다.

최윤정 작가의 저 낡은 이미지, 촌스러운 수법의 아이들이 여전히 눈을 끄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원본과 워너비가 겹쳐 있어 자기 복제의 기제를 담아낸다. 인류가 초기 자본주의에 품었던 이상을 옮겨 놓은 듯한 천진난만한 존재감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감성과 통하는 데가 있다. 향수와 유쾌함, 그리고 익숙함과 불편함이 한 데 뒤섞여 있다.

그래서 저 진부함, 진부해서 새삼스럽게 언급하고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 도식을 그래도 굳이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그려낸 작가의 뚝심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의 시선에 따르면, 예수나 태극기까지 우리 아이들의 눈을 가려버린 시대다.

최윤정 개인전 는 부산 중구 수정동 부산아트센터에서 20일까지 열린다. 051-461-455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