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영화가 되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 '부산 프로젝트' 등 도시영화 진행영화를 통해 도시 이미지 만들고 알리는 도시 마케팅

영화, 한국을 만나다_서울편 '서울'
'서울의 휴일', '부산에서의 로맨스', '인천, 아이 러브 유'…. 우리는 곧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도시들이 속속 영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 '부산 프로젝트' 등 도시를 테마로 한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이 '도시 영화'들은 도시 자체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다는 점에서 이전의 도시 소재 영화들과 다르다. 영화를 통해 도시 이미지를 만들고 알리는 도시 마케팅의 의미가 커진 것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

서울, 인천, 부산, 제주도, 춘천 등 국가대표 도시들을 영화화하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의 투자자는 문화체육관광부다. 제작비를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충당한 것. 정확히는 아리랑국제방송에 지원되는 교부금이 출처다.

영화·드라마제작사 디앤디미디어가 기획한 프로젝트로 지난 여름 촬영을 마쳤다. 내년 초 극장 개봉한 뒤 아리랑국제방송을 통해 188개국에 방송된다. TV 방송을 염두하고 50분 기준 10부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제주도편이 3회, 서울·인천·부산이 각각 2회, 춘천이 1회 분량이다.

도시 마케팅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독들에게 상당히 자율성이 보장되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전작을 통해 개성을 인정받은 감독들을 영입한 동시에 각자의 시선과 방향을 존중한 결과,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탄생했다. 낭만적인 풍광을 사랑 이야기에 녹인 영화가 있는가 하면, 낯선 도시 곳곳을 미스터리한 구조 속 요소로 활용한 영화, 삶의 모습을 통해 도시의 성격을 파고든 영화도 있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_부산편 '그녀에게'
배창호 감독은 제주도에서 여행을 온 젊은 커플의 사랑, 사춘기 소녀의 성장, 엄마이자 아내로만 살아온 중년 여인의 일탈을 그려냈고(<여행>) 전계수 감독은 슬럼프에 빠진 화가가 상황을 환기하는 짧은 춘천여행 <뭘 또 그렇게까지>를 선보인다. 영화 촬영 중 만난 두 남녀가 함께 서울을 돌아다니며 감정을 틔워나가는 윤태용 감독의 <서울>은 <비포 선라이즈>의 서울 버전 같은 작품.

문승욱 감독은 인천의 다문화적 특성을 다문화적 인물들을 통해 찾아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시티 오브 크레인>을 만들었다.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은 스릴러 영화를 만든 장기를 살려 부산을, 인물들이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거대한 미로처럼 담아냈다.(<그녀에게>)

도시 각각의 공간성이 감독의 영화 세계와 화학 작용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는 도시 마케팅 사례로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제작 형식으로서도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배창호 감독은 "상업 영화에서는 순수하게 자연을 담아내는 시선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제주도를 기록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문승욱 감독 역시 "공적 자금으로 제작하면서도 간섭을 받지 않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이런 프로젝트가 한국영화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영화 인프라 계기로서의 도시 영화 프로젝트

진행 중인 또 다른 도시 영화 프로젝트는 지역 기반 국제영화제가 주도하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 <부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영화제 측에서 만든 제작사 발콘이 제작한다. 올해 말부터 내년 3월까지 제작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_제주도편 '여행'
이런 프로젝트는 영화제 자체의 네트워크와 명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부산 프로젝트>에는 여러 차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연을 쌓은 감독들이 합류했다. 한국의 장준환, 태국의 위시트 사사타니엥, 일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다. 다국적 프로젝트이니만큼 외국인이 경험하는 부산의 이미지까지 담아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부산이 아시아 영화 중심 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면 이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앞으로 매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화제와 연계된 지역 영화 산업의 인프라를 다지는 계기로서의 의미도 있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더라도 막상 지역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없으면 '영화 도시'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10월 12일 열린 '영화/도시/마케팅' 컨퍼런스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위시한 부산의 영화 도시화 정책이 지역 영화 산업과 지역 영화 인력 육성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이석 동의대 영화과 교수도 "'영화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실체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부산 프로젝트>는 부산에서 제작 전 과정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부산 영화 산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전의 부산 배경 영화는 서울의 제작사가 부산에서 로케이션 촬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특산물인 한지를 테마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다. 시청 한지과에 근무하는 한 7급 공무원과 한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지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재조명하는 내용. 전주국제영화제의 송하진 조직위원장이 임권택 감독에게 제안한 영화로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초 크랭크인,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_춘천편 '뭘 또 그렇게까지'
지자체의 영화하기 좋은 도시 정책

도시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는 배경에는 각 지자체의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이 강화된 영향도 있다. 지역을 홍보하고 경제 효과를 유발하려는 취지로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영화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 지자체 산하 영상위원회는 로케이션 지원은 물론, 지역 영상 산업과 인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늘려가는 추세다.

서울영상위원회는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컬처노믹스' 정책 방향에 따른 것. 한국영화 제작 지원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해외 영화의 서울 로케이션을 유치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06년부터 한국관광공사, 경기영상위원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로케이션 팸투어가 대표적인 예다. 해외 영화인을 초청해 서울 부근의 영화 촬영지와 시설을 둘러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한 차례씩 열렸고, 올해는 상하반기 나누어 두 차례 마련되었다. 하반기 팸투어는 라이언스게이트, 디보나벤추라 등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했다. 얼마 전 개봉한 한-프랑스 합작영화 <여행자>의 프랑스 제작사측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로케이션 장소를 물색했고, 2007년 작년에는 <추격자>의 미국 리메이크판 작가가 참석했다.

한국 로케이션이 확정된 경우에는 따로 팸투어를 마련해주는데, 얼마 전에는 <폰>을 리메이크하는 미국 제작사 프로듀서가 다녀갔고 작년에는 무라카미 류 원작의 한일합작영화 <미소스프>의 메가폰을 잡는 빔 밴더스 감독이 한국을 둘러 봤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제작발표회
세계 도시의 영화 로케이션 유치전이라고 할 수 있는 AFCI(세계영상위원회) 로케이션트레이드쇼에 참석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매년 4월 미국 LA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해외 제작사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도시들의 영화 제작 지원 사업 향방을 살피고 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서울영상위원회 해외사업팀 서수민 팀장은 "미국, 프랑스 등 이미 상업적으로 많은 로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보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독일 등의 로케이션 유치 노력이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들 국가가 내세우는 것은 영화 제작비에 대한 조세지원제도. 서울영상위원회 역시 이를 벤치마킹해 제작비지원 사업을 마련했다. 해외 제작사가 서울에서 로케이션 촬영할 경우, 1억 원 한도 내에서 촬영 비용의 최대 25%를 돌려주는 사업이다.

도시 영화, 새로운 장르가 될까

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고급한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늘 제작비 마련에 애쓰는 제작사 간 공생관계는 '도시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부채질하고 있다.

비슷한 컨셉트의 드라마도 곧 제작될 예정이다. 지난 2일 드라마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은 1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명품한류드라마' 제작설명회를 열었다. 제작에 참여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16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계획. 한류 스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한국 도시의 관광지적 가치를 담아내어 아시아 전역에 방영할 예정이다. 연출은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 PD가 맡아 내년 4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후 10월 이후 방영한다.

지난 4월 미국 LA에서 열린 AFCI 로케이션트레이드쇼에 마련된 서울영상위원회 부스
이 드라마가 기획된 배경에는 내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되는 '한국 방문의 해' 사업이 있다.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이해와 '한류'를 지속하려는 제작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총 48억 원으로 책정된 예산도 양측이 반반씩 부담할 계획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영화·드라마 제작의 한 방식으로써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고, 영상과 이야기로 재현된 도시상이 국내외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친구>와 <사생결단>, <부산> 등이 줄줄이 부산을 마초들의 전장으로 묘사해 '느와르의 도시'으로서의 부산 이미지를 만들어냈듯이.

도시라는 풍부한 원천을 어떻게 흥미롭고도 의미 있게 담아낼 것인가는 문화적으로도, 마케팅에도 중요한 문제다. 1965년도에 제작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거의 반세기 동안 잘츠부르크의 자원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도시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해외의 도시 영화

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은 원래 중국 청두를 테마로 한 옴니버스 영화 <청두, 사랑해>의 한 에피소드였다. <청두, 사랑해>는 작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중국 청두를 위로하고 재건하자는 의미로 기획된 영화. 하지만 <호우시절>이 계획과 달리 장편으로 제작되면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최근 도시를 테마로 한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특히 유명 감독들의 단편을 모으는 옴니버스 형식의 프로젝트가 활발하다. <도쿄>, <사랑해, 파리>, <뉴욕, 아이 러브 유> 등이 국내 관객을 만난 바 있다.

지난 6월 서울영상위원회가 진행한 로케이션 팸투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도시를 테마로 한 여러 편의 아시아 영화들이 초청되었다. <청두, 사랑해>는 물론 네 명의 태국 감독이 방콕을 조명한 <사왓디 방콕>, 대만의 젊은 감독 8명이 의기투합한 <타이페이 24시>가 공개되었다.

이들 영화는 해외 관객에게 관광의 경험까지 주는 효과가 있지만, 정작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 영화보다는 도시에서의 삶의 진실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더 호평을 받았다.

감독에게도 이런 프로젝트는 자신의 작업을 환기하고 확장하는 기회로 활용된다. 대만의 거장 감독 허우샤오시엔이 2007년 만든 섬세한 작품 <빨간 풍선>이 그 예다. 오르세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로 원래 주문은 '파리의 현재를 보여 달라'는 것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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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