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왜 사회에 참여하나] 문예지 <리얼리스트> 좌담회6人의 편집위원 작가선언 6.9 등 문학과 정치에 관한 생각 풀어놔

앞서 소개된 바와 같이 <리얼리스트>는 리얼리즘 계열의 문인들이 주도해 만든 반년간지 문예지다. 이들은 문학이 거대 담론을 넘어 개인에 집중하던 90-2000년대에도 꾸준히 사회적 사안에 천착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69작가선언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정치, 문학적 고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리얼리스트>편집위원들에게 문학과 정치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우선 <리얼리스트> 기획의도가 궁금하다. 기존의 문예지와 차이가 뭔가?

박일환 시인_ 노동문학과 민중문학이 90년대 이후 퇴조했다. 굉장히 낡은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고. 이 문학적 지향점을 확대 심화하고 대중과 만나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로 2007년 '리얼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올해 초 논의를 거쳐 문예지를 창간했다.

△<리얼리스트>에 소개된 작품을 포함해서, 2000년대 한국문학에서 드러나는 정치성이 참여문학의 황금기인 80년대 문학과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나?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일환 시인, 고명철 문학평론가, 이민호 시인, 홍명진 소설가, 이재웅 소설가, 문동만 시인
고명철 문학평론가_ 이 질문은 <리얼리스트>에만 국한된 질문은 아닌 듯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처한 난제 중 하나다.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이 갖고 있던 문제는 '당시 문학작품들이 과연 인간 삶의 구체성에 육박해 들어갔느냐'다. 사회과학 쪽의 급진적 담론이 먼저 있었고, 문학은 노동자 계급의 당파적 인식에만 관심을 두었다. 작가들이 노동자 개인의 욕망이나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2000년대 정치를 고민하는 시, 소설이 80년대 문학 작품들을 극복했느냐'란 지적에 대해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작품을 적확하게 찾아내기 힘들다. 그건 한국 현대사에서 문학이 짊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민호 시인_ 80년대 민중문학은 어떤 형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전달성이나 구호성, 저항성을 고집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예술성을 개입하면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2000년대 시 소설은 문학적 예술성 면에서 나름대로 순도를 갖춘 작품이다. 그 점에서 다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촛불집회와 용산참사 등 일련의 정치적 경험이 작품을 쓰는 데 있어 영향을 주었는가?

홍명진 소설가_ 개인적 경험으로 말하자면 시대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작가적인 태도가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작품으로 쓸 필요성을 느낄 때 썼다. 소설을 쓰는 방향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전부터 걸어온 일련의 행동에서 작품이 나온다.

이민호 시인_ 용산참사나 촛불시위에 대해 수준 높은 담론이 나오는데, 이런 사건을 표현한 문학작품은 보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당대의 일을 그대로 보도하듯 기술해 내는 것은 신문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속성을 요구하니까. 작가가 이 시대를 대면하는 것은 오랜 시간 무르익어야 나오는 것이고, 그 기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자가 물었던 촛불집회나 용산참사 등이 나름의 동력이 되어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80년대식 설익은 태도를 취하는 작가는 지금 없는 것 같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간접화되고 내면화돼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문학인거고.

이재웅 소설가_ 작가는 살아가면서 세계관을 형성하고, 개념화된 세계관을 문학작품으로 표현한다. 대체로 작가들의 세계관은 이 세계가 가하는 충격, 그러니까 용산참사 같은 일련의 사건들보다 크다. 어떤 작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반면, 어떤 작가에게는 세계관에 편입된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타자적 세계가 가하는 자극이나 영향력에 반응하는 속도나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작가선언 69등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선배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재웅 소설가_ 작가선언 등 현장에 나온 작가들은 원칙적으로 문인이 가지는 양심에 따라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현장에 갔다는 것, 선언을 했다는 것은 다 똑같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적 체계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일환 시인_ 젊은 작가들은 정말 소중하다. 계기를 통해서 문학적인 자각을 하고 릴레이 시위를 하는 걸 보면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일상에서 문학을 해오던 방식에서 우리와 젊은 작가들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민중의 언어에 관심이 있는 반면, 작가선언에 참여한 많은 젊은 작가들은 언어의 세련미를 추구한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서로 다르다. 상호보완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문학이라는 큰 지점에서 만나면 되니까, 각자 자기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한 건 얼마나 치열하게 열심히 쓰느냐 아닌가.

△박일환 시인이 '언어의 세련미를 추구한다'고 말한 젊은 문인들의 경우, 최근 일련의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문학과 정치 사이 괴리감을 겪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용산 참사현장에서 작가들이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면서도 용산참사를 문학 작품에 발현시키는 데 주저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고민을 선배 문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박일환 시인_ 나의 경우 일상어를 문학적 언어로 끌어 올리려고 고민한다면, 사회자가 언급한 작가들의 경우 문학적 세련미를 추구한다. 방향이 서로 다른 데로 오는 차이인 것 같다. 아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텐데, 지금까지 써왔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 문학을 접목시키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문동만 시인_ 박 시인이 말한 것처럼, 어떤 문학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 내가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배웠다. 물론 문인이 사회운동을 하거나 문학이 아닌,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설 때 시심(詩心)이 고갈되지 않을까, 하고 젊은 작가들이 우려를 하는 것도 일면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으로 가능한 시심(詩心)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젊은 작가들과 사회적 활동을 함께 하는 계획도 있다고 들었다.

문동만 시인_ 8일 용산참사 헌정문집 행사에 함께 참여한다. 언어의 세련미를 추구하는 작가들과 우리들은 서로 갈 길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이 갖는 시대적 고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모더니스트와 리얼리스트가 만나는 지점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함께 하는 지점이 있다면 참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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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리=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