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현대미술, 연약함에 매혹되다: Fragile> 전

Kei Takemura, W0W3805
점점 일상과 자아, 사소하고 내밀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늘날 미술뿐 아니라 모든 문화 장르에서 보편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역사와 사회는 어디로 갔는가. 인류 안에서 개별 존재를 성찰하고,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도모하던 문화의 기능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다고 한때 정치 운동으로서의 문화가 가졌던 선전 선동의 기능을 복권하자는 것은 아니고, 일상과 자아가 중요한 화두가 된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화가 포괄하는 범위가 좁아지면서 좋고 싫음의 감각이 옳고 그름의 윤리를 당연히 대체하고, 당장 나에게 즐거움이 곧 아름다움으로 오인되는 상황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광화문'광장'의 '공공예술'적 가치는 위락에서 찾아진다. 그 스펙터클이 한국사회의 삶의 역사성과 관계성을 파괴하는 개발주의를 어떻게 가려버리는지, 또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서로 만나게 하는 '광장'의 정의를 어떻게 지워버리는지에 대한 의문은 줄어들 줄 모르는 방문객 수와 그들의 하염없이 즐거운 표정 앞에 무색해진다.

하염없는 즐거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어원이 앓음다움이라는 설이 있듯이, 즉각적 반응을 넘어 고뇌와 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그에 대한 추구 없이 미술과 예술, 문화는 귀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일상과 자아에서 출발하되, 관객을 고뇌와 성찰로 이끄는 미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22일부터 내년 3월21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연약함에 매혹되다: Fragile>(이하 <연약함>)전이 하나의 대답이다. 프랑스 생테티엔느 미술관이 기획한 이 전시의 취지는 미술 속에서 "소규모 공동체와 작은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경험에 내밀하고 직접적으로 닫가가는 시적 잠재력"(로랑 헤기 관장)을 발견하는 것이다.

KFG, Ghost Boy
예를 들면, 한국 작가 권인숙은 대학시절 단골 카페나 술집의 풍경을 모티프로 삼았고, 케이 타케무라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았던 기억을 오브제 작업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이 다만 사적 유희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공적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그 안에 타인과의 관계, 시대사회적 상황 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KTG의 <고스트 보이>나 데이비드 칸토니의 <눈먼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를 보면서 우리가 주변에 있는 빈곤과 폭력, 이 모든 것을 발생시킨 인간의 야욕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연약함> 전은 일상과 자아라는 삶의 구체적 형상을 통해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 나아가 교양과 윤리를 회복시키는 시도다. 우리가 인간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우리 안에서 나누며 보호해나갈 방안을 고민해달라는 현대미술의 제언이다.


한명옥, paves 1993-1995
Mariusz Tarkawian, 1 day before open
Davide Cantoni Blind Afghan Child
Marina Perez Simao, Untitled
이수경, Translated Vase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