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각색을 촉구한다] 무비컬, 노블컬, 만화의 연극화 등 새로운 시도 잇따라

최근 들어 뮤지컬계에선 '무비컬'이나 '노블컬' 같은 신조어가 유독 눈에 띄고 있다. 하지만 사실 대본을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다른 장르의 명품 원작을 각색해 자기화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특히 소설은 오랫동안 연극이나 영화의 젖줄이 되어왔다. 그래서 '노블컬'의 등장은 다른 장르에서 소재를 찾는 작업이 오히려 늦었다는 인상마저 준다.

만화와 드라마 산업의 발전과 함께 최근엔 '만화의 연극화'이나 '만화의 소설화', '드라마의 영화화' 같은 새로운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외 소설이나 만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에 익숙한 작품들은 소재 개발에 혈안이 된 창작자들에겐 매력적인 보험인 셈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은 한편 지루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마르고 닳도록 리메이크되고 있는 작품들은 어떻게 각색을 하건 이미 기본적인 흥미를 일으키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는 위대하고 대중도 그 사실을 알지만, 어떻게 변주하건 셰익스피어는 결국 셰익스피어다. 때문에 창작자는 대중에 익숙하되 지금까지 무대화가 (거의) 되지 않았던 작품들의 탐색에 늘 촉각을 세운다.

최근 '멀티 유즈'되는 작품들은 그래서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에 눈이 가는 것은 여전하지만, 장르적 공감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던 예전과는 달리 '좋은 작품'이면 기획자나 창작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김영하 원작의 연극 '크리스마스 캐럴'
드라마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무대화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장금>은 뮤지컬로 만들어져 올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선덕여왕>은 아예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뮤지컬화 작업이 시작됐다. 62부작짜리 대작을 2시간에 압축시키는 일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느낀, 그리고 뮤지컬 버전에서 새로이 맛볼 감동이 관객들을 설레게 한다.

최근 노블컬의 사례 리스트에 자주 회자되는 김훈과 김영하는 우리 소설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청춘들의 로맨스가 주가 되는 뮤지컬에서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극을 이끌어가는 김영하의 <퀴즈쇼>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영하의 텍스트는 뮤지컬 외에도 젊은 연극연출가 모임인 혜화동1번지가 펼치는 페스티벌 '단상전'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올해 3월에는 <오빠가 돌아왔다>가 무대로 옮겨지며 공연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는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으로 알려져 작품의 가치를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장르보다는 작품의 성격이 중요해진 문화계에서 '각색' 작업의 관건은 익숙함과 새로운 재미의 겸비다. 베스트셀러 원작의 힘에만 기댄다면 관객은 두 배의 실망감을 맛보게 된다. 향유층의 기호가 바뀐 만큼 그들의 기대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연 창작자들은 또 다른 고민과 맞닥뜨리게 됐다. 그런 점에서 올해 <꽃보다 남자>보다는 <탐나는도다>의 시도가 새로운 창작자-관객의 등장을 증명해준다.

시도되지 않은 원석 같은 작품들은 여전히 많다. 남들보다 먼저, 그것을 어떻게 장르에 맞게 각색하는가는 올해에도 여전한 창작자들의 고민과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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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탐나는도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