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각색을 촉구한다] '늑대', '우아한 거짓말' 등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 추천

'각색'이란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의 90%이상은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300>부터 <식객>과 <타짜>까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몇몇 영화도 선보인 바 있지만, 문학은 영상, 공연예술의 화수분으로 역할 했다. 그렇다면 문학계 전문가들이 영화,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하는 작품은 뭘까?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에게 공연계가 '놓쳐서 아까운' 한국문학을 물어보았다.

작품성 먼저 보는 소설가

백가흠 소설가가 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작품은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 이 작품집에 실린 9편의 단편 중 6편이 몽골을 배경으로 쓰였다. 이 6편의 작품을 옴니버스식으로 만든 영화가 기대된다고.

"몽골은 한국의 현대화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자연이 갖고 있는 평원과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가 극명하게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 사회의 3,40년 후 모습이 우리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요."

백 작가는 실제로 영화사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은 코믹하면서도 주제의식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 작가와 같은 분위기의……. 이문식 씨가 어떨까요?"

전성태 소설가는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영화화 했으면 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진중한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흥행이 되겠냐?'는 질문에 전 작가는 "대중성은 보장할 수 없지만, 깊이 있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작품은 종교적 사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써왔던 이승우 작가의 자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소설가인 화자 '나'가 다른 한 소설가를 추적하여 그 삶을 재구성하는 평전체란 특이한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

"최근 한국영화가 고전하고 있는 듯한데, 특히 형식 실험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듯해요. 영화는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승우 선생의 작품은 독특한 형식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출로 어울리는 감독을 꼽아달라는 말에 <밀양>의 이창동 감독이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김연수 소설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꼽았다.

"<남한산성>은 뮤지컬로 개봉했습니다."

"뮤지컬 말고, 연극이요."

김연수 작가가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는 화자의 서술이 많고, 남한산성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라고.

"대부분 소설을 다른 장르로 만들면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원작이 훌륭할수록 아쉽죠. 관념이 강한 소설은 대사나 지문으로 담을 수 없어서 내레이션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소설 <남한산성>은 화자 서술이 많아요. 인물들이 말로 싸워서 극의 클라이막스까지 가잖아요. 그래서 뮤지컬보다는 연극으로 만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공간도 연극화하기 쉬울 것 같고."

대중성 고려하는 편집자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가 관심을 가지려면 1차 저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 창비의 저작권 담당 이순화 씨의 말이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소설의 기준을 꼽아달라는 말에 대부분 '베스트셀러', '서사가 강한 작품', '판타지적 요소'를 꼽았는데, 이는 작품성을 우선하는 창작자들과 차이를 보였다. 장편소설의 경우 대부분 서사성이 강하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일단 대중성을 인정받은 후에 타 장르에서 계약이 들어온다는 것.

이들에게 소설을 편집하면서 '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 소설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창비 이순화 씨는 창비에서 펴낸 작품 중 <위저드 베이커리>와 <우아한 거짓말>을 추천했다. 이순화 씨는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저자 김려령의 소설로 청소년들이 겪는 또래집단 갈등 등 사회적 이슈와 공감대를 갖고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경우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고 캐릭터가 독특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조연주 부장은 장편 중에서도 미스터리적 요소, 감각적인 묘사가 빼어난 작품을 영화화했을 때 대중의 기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최근 출간된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와 김기홍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경우 미스터리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영화화했을 때 흥미진진한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과장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와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을 추천했다. 이 과장은 "두 작품 모두 근대 식민지 조선과 그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근대에 대한 대중의 동경, 향수 때문에 영화가 호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음사 한국문학 편집팀 김소연 씨는 하일지의 장편 <우주피스 공화국>을 추천했다. 하일지 작가는 전작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경마장 가는 길>, <진술> 등이 이미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김소연 씨는 "이 작품은 우수에 찬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리투아니아의 진경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며 진실을 찾아 끝없이 펼쳐진 눈 속을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면마다 '그림'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한국소설 기근? 없어서 못 팔아

"웬만한 작품은 다 만들어지지 않았나요?"

드라마, 영화로 만들고 싶은 한국소설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사실 작가들은 이런 대답을 더 많이 했다. 서사가 좋은 작품의 경우 웬만한 작품은 이미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만들어졌거나 저작권 얘기가 오간다는 것.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민음사 등 문학전문출판사에서 펴낸 소설 중 아직 드라마, 영화로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판권계약이 끝난 작품이 10여 편 가량 됐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는 이달 중 연극 공연 예정에 있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창비 펴냄) 역시 2월 중 개봉 예정이다. 지난해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창비 펴냄)도 영화판권이 팔린 상태이고,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의 <완득이>역시 영화 판권이 팔렸다. 이 작품은 이미 연극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 중 황석영의 <심청>을 비롯해 천명관의 <고래>, 신경숙의 <리진>, 오현종의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정한아의 <달의 바다> 등이 영화, 드라마로 판권이 계약된 상태.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오정희 작가의 단편 <저녁의 게임>(문학과지성사 펴냄)이 십여 년 전 판권 계약 후, 지난 해 가을 동명의 독립영화로 만들어졌다. 한편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민음사 펴냄>은 영화로 만들어질 계획인데, 이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는다.

▶▶▶ '각색이 탐나는도다' 관련기사 ◀◀◀
▶ 숨겨진 원석 명작들을 찾아라
▶ "이 소설을 영화·연극으로…" 놓치기 아까운 작품
▶ 소설, 영화 속 주인공들 무대로 모여
▶ 8명의 영화감독 "이 작품 영화화하면 딱이야"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