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백남준아트센터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

백남준아트센터의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은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백남준'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독일 출신으로 네덜란드, 리투아니아, 홍콩 등을 오가며 세계 미술의 현장에서 살아온 그는 2008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의 초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백남준에 대한 해외에서의 평가와 한국사회의 인식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지난 11월 백남준의 정신을 구현한 예술가를 선정하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기획·진행한 사람도 그다. 선정 결과는 한국 언론에서 언급되는 '백남준의 후예'들과는 사뭇 다르다. 첨단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열중하거나, 큰 규모의 설치 작업만을 하는 작가들이 아니고,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인공적인 재료는 물론 자연환경까지 활용해 사회적 가치에 저항하는 해프닝을 벌여온 작가 이승택은 주류 언론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며, 무용가 안은미는 샤머니즘적 측면에서 백남준과 통한다고 설명된다. 씨엘 플로이에는 일상적 소품을 기발하게 전복하는 미니멀한 작업을 주로 하며,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는 통신 미디어를 활용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바로 백남준아트센터와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이 정의하는 '백남준'이다. 다양한 환경과 상황, 다양한 테마와 소재, 다양한 입장들을 아울러 스스로의 개념 속에서 자유자재로 다루어내면서 그 내재된 경계를 넘어 커뮤니케이션하는 예술가다.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의 말처럼 "미디어로서의 예술media" 작업이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이 가장 많이 쓴 표현은 "모으다 bring together"와 "합하다 put together"였다. 그만큼 그 과정이나 산물의 면과 층이 다양하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그중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백남준을 다 이해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이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국사회에는 백남준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국가주의적인 것도 있고,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맞추거나 정신에 주목하는 방식 등등. 어떻게 생각하나.

백남준 자신이 여러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의 예술적 궤적이 그랬다. 인생 자체가 변화무쌍해 다양한 맥락을 거쳤고, 그때마다 새로운 스캔들을 만들어냈다. 독일 아방가르드 그룹에서 해프닝을 할 때와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에 와서 "예술은 사기"라는 한 마디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백남준은 각각 달라 보인다.

다양한 사회를 경험했고,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예술 장르를 섭렵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백남준'이라는 브랜드가 된 것 아닐까. 백남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예를 들면 그는 자신의 성인 '백paik'의 표기를 독일식으로 바꾼 후 평생 유지했다.

이런 예술세계를 가능하게 한 핵심적 능력은 무엇일까.

그는 매우 똑똑했다. 어느 사회에 가든 그곳의 미술계에서 관계 맺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그런 능력이 대단한 스캔들로 나타났다.

백남준에 대한 한국사회의 열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한국사회가 이런 예술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는 매우 흥미롭고 아방가르드하며 정치적인 인물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적으로 그의 명성을 이용한 측면이 있지만, 알고 보면 국가가 그를 이용하는 만큼 그도 국가를 이용한 셈이다. 백남준에게 이런 사회적 관계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축제의 일환으로 <프랙탈 거북선>을 옮겨 전시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백남준이 봤다면 개의치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작품의 맥락에 대해 매우 열려 있는 작가였다. 한국사회에서 광화문 광장이 일종의 공공 엔터테인먼트 공간처럼 조성되어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의 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안될 건 또 뭐 있어, 라는 생각이랄까.

그것 역시 백남준의 한 면모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인가. 백남준아트센터가 중점적으로 만들어내는 담론의 성격은 매우 다르지 않나.

백남준아트센터는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으로만 인식되던 백남준의 예술세계의 다른 면들을 제시하려는 시도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기치는 '백남준이 오랫동안 사는 집'인데, 이는 그의 영혼과 정신에 주목하겠다는 의미다. '백남준'이라는 가장 도전적인 예술가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서의 초기 저술, 철학과 지적이고 정치적인 의식 등을 알리고자 한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도 그런 취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수상자를 한국작가 1인을 포함한 여러 명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제1회에는 한국작가 2명이 공동 수상했다)

백남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을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모아볼 때야 비로소 그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한국 작가는 백남준의 정체성의 한 뿌리를 나타내고 해외 작가들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대변한다. 국적을 할당한 이유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일차적으로는 한국사회에서의 백남준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두 차례의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백남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들이 제기되었다. 동료 예술가는 물론, 문화연구자, 과학자, 인류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시각이 흥미로웠다,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백남준의 예술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특정적인 부분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서구 중심적 시각이 주류였지만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에서 행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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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