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의 인문학적 고찰]

강북과 강남 차이는 고도성장의 압축판

강북을 제대로 이해하고, 강북문화의 올바른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강남과의 차이에 대한 논의와 성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강북이라는 말과 개념 자체는 강남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강북이 등장한 계기가 80년대 강남이라는 신도시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서울은 지금의 강북지역뿐이었다.

서울은 처음 사대문 안에서 시작돼 사대문 안, 그 중에서도 지금의 광화문 일대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강남지구가 개발되면서 서울의 중심지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했고, 강북과 강남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제 강북과 강남은 격리된 삶의 공간이 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말 그럴까?

눈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부터 두 지역은 차이가 난다. 강북지역에도 옛날 주택이 헐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개발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강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것이 현실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줄지어 선 강남과 달리, 강북에는 한옥마을 등 아직도 옛 모습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후암동 골목길
소비행태 역시 차이를 보인다. 강남구 청담동의 한 패션회사에서 일하는 김 모(32세·남)씨는 "이곳 사람들은 명품소비가 생활화되어 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쓴다"고 말한다. 한편, 강북의 패션거리로 불리는 이화여대 주변은 명품 브랜드를 카피한 '짝퉁' 작품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곳으로 통한다.

또, 강북의 패션1번지로 불리는 명동은 청담동의 명품거리에 비해 저렴한 수준의 옷과 패션 제품들로 대중을 끌어 모으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한 럭셔리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박 모(28세·여)씨는 "강남과 강북에 사는 사람들은 패션과 헤어스타일, 주말 여가생활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에서 확실히 다르다. 전반적으로 강북에 비해 강남은 생활환경이 편리하고, 문화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한다.

오랫동안 종로구 효자동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 몇 해 전 강남으로 이주한 주부 최 모(46·여)씨는 "강북에서 살 때는 주변에 산도 있고, 도랑도 있었다. 주변엔 학원도 없어서 아이들은 방과 후에 자연을 벗하고 노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강남으로 이사온 후에는 집 주변이 학원 천지인데다 아파트만 있어서 놀 공간도, 함께 놀 아이들도 없다."고 했다.

그는 또, 교육비는 강북에 비해 한 달 평균 2배 이상 들어가며, 강북과 비교해 강남지역 학부모들의 학력이나 교육열도 월등히 높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는다.

타워팰리스
강북지역문화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뉴 미디어를 통해 본 강북·강남 지역성 담론에 대한 비교분석'이라는 주제로 미디어를 통해 강남북의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돼 유통되며, 재생산되는지에 대해 논의했던 덕성여대 국문과 이은애 교수의 소감 역시 흥미롭다.

그는 "오랫동안 강남에 거주하며, 강북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했다"는 말과 함께 "집과 직장을 오고 가며,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서부터 사람들의 복장과 문화 등 모든 것의 차이가 심해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야 했다. 속으로 도대체 나는 강북과 강남 중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고 고백했다.

두 지역 간 차이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의 부재가 강남화를 부추긴다

강북·강남 간의 차이는 자본논리에 의한 고속성장의 압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지역의 차이를 빚어낸 배경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의 부재는 강남 쏠림 현상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이은애 교수는 <내일신문>에 나타난 두 지역에 대한 공간 이미지가 어떻게 담론화돼 유통되며, 그것이 대중의 공간인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규명했다.

그는 "문화면을 통해 미술 전시, 음악 공연에 대한 소개를 사진화보와 함께 공들여 제시하는 강남 내일과 달리, 강북 내일에는 문화면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두루뭉실하게 전체적인 기사에 적당히 삽입돼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같은 내일신문을 통해 드러난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서 강북, 강남의 문화적 차이는 대단히 극단적으로 보이고, 두 지역이 함께 서울이라는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질적으로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언론은 강남과 비강남의 문화적 구분짓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들어, 강남이 파워 엘리트들의 집단지가 되었다는 것도 전혀 새로운 이슈가 못 된다.

대법원과 검찰청 등이 서초구 서초동 일대로 옮겨가면서 강남은 새로운 권력타운으로 부상했고, 예술원과 학술원, 국립중앙도서관 등 문화와 학술 기관들도 대거 이 일대에 포진해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 정권의 핵심인사 153명 가운데 107명이 강남에 살고 있었다. 나머지 인사 중 강북구인 종로구에 사는 인사는 단 6명뿐이었다.

20년 전,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소설로 강남의 천민자본주의와 계급화를 비판했던 이순원 작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압구정동엔 출구가 없다. 천민자본주의와 계급화는 더욱 심화됐고, 강남 선호의식은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압구정동으로 대표되는 강남문화는 진흙 바탕 위에 핀 연꽃과 같은 것입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순전히 천박한 자본 속에서 핀 꽃이니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겉모습에 반해 압구정동을 동경합니다. 매일 30cm씩 강남으로 가는 꿈을 꾸지요. 그러나 강남지역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그 꿈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요. 월급쟁이가 무슨 수로 10억, 20억짜리 집을 삽니까? 사회적 갈등이 너무 큽니다. 비상구가 없어요."

강북의 미래, 강남식 개발?

강북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강남화를 향한 열망으로 이 지역에 개발열풍이 뜨겁다. 오세훈 시장이 최근 서울의 동북지역에 대한 개발의 뜻을 밝혔고, ‘문화도시’라는 이념 하에 강북지역 현대화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많은 학자들은 도시개발을 합리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서울의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한옥들을 허물고, 최첨단의 아파트를 짓는 것이 강북문화의 바람직한 방향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백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현대사회의 발달과정은 맹목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물질적 가치, 경제적 소유논리의 숨가쁜 진행과정이었을 뿐, 풍부하고 다원적인 미학적 삶의 실현은 배제돼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이 같은 맹목적 합리주의는 20세기 전반에 들어와 역사에 유례없는 야만적 상황들을 초래했고, 21세기 지구화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야만적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역설한다. 그것의 한 양태가 자본에 의한 도시의 양극화다.

도시인문학을 통해 도시의 양극화라는 야만적 상태와 난개발에 대해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예를 들어, 역사의식을 가지고 강북을 바라본다면, 역사의 숨결이 면면이 깃든 이 지역을 신도시인 강남처럼 최첨단 빌딩 숲으로 만드는 구상은 완전히 넌센스라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역사적 자취가 있는 도심지역은 보존하고, 대신 외곽지역에 고층빌딩이 들어선 신도시를 건설했다. 역사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개발정책이다.

세계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를 전적으로 수용한 강남의 도시적 성격을 강북이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또한 옛 것과 자연, 휴식공간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을 위해 효율성만을 앞세운 도시개발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첨단의 초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도쿄의 한복판에는 이상하게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효율성을 바탕으로 세워진 도심에서 비 도시적인 것을 갈망하는 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인문학적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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