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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

[군침 도는 TV] TV·영화·책 속의 매력적인 개스트로 섹슈얼들
M은 전형적인 개스트로 섹슈얼(gastro sexual)이었다. 음식과 미술, 음악, 그리고 온갖 종류의 쾌락에 조예가 깊은 그는 자신이 준비하는 음식에 관능의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대단한 미식가였다.

"오늘 저녁에 동방박사들의 화려한 가두행진이 있는 거 알아? 그걸 우리 집 테라스에서 지켜볼 수 있어. 스키야키를 만들 생각인데 올래?"

나는 정말이지 스키야키가 먹고 싶었다.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중, 김경, 웅진지식하우스』


주방은 이제 남자들에게로 넘어갔다. '밥 좀 주라' 대신 '찜닭 만들어 줄까?'라며 팔뚝을 걷어 부치고 생닭을 감싼 랩을 간단히 찢어 발기는 남자는 식스팩의 소유자들보다 한 차원 높은 관능미의 화신이다.

'주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25~44세의 남자'라는 의미의 개스트로 섹슈얼은 1~2년 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회자되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각종 트렌드 관련 서적에 이름을 올리며 따끈따끈한 화두로 떠올랐다. 미식가를 의미하는 '개스트로놈(gastronome)'과 성적 매력을 의미하는 '섹슈얼'을 합친 말인데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말은 생각보다 근거가 탄탄한 가설이다.

  • 제이미 올리버
쾌락끼리는 통한다고, 가장 말초적인 감각 중 하나인 미각에 소홀하지 않은 남자는 다른 분야, 즉 보고, 만지고, 소통하며 느끼는 다른 모든 즐거움에 있어서도 무디지 않을 확률이 높다. 허기와 성욕을 포함한 삶의 절박한 욕구 앞에서 급하게 섭식과 삽입을 반복하는 남자들과 달리 그들은 막간의 식사와 스쳐가는 관계에서도 최대한의 쾌락을 추구하는 여유가 있다.

"뭘 좀 아는 남자는 전부 게이"라는 <섹스앤더시티>의 대사와 달리 뭘 좀 알면서도 여전히 남자인 우성 돌연변이 족속들. TV와 영화, 또는 책 속의 매력적인 개스트로 섹슈얼들을 만나보자.

제이미 올리버

최악으로 알려진 영국 음식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젊은 요리사다. 산만하고 소박하고 즐거운 요리쇼 <네이키드 셰프>로 이름을 알리고 <제이미즈 키친>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스타 셰프 반열에 올랐다.

그의 요리쇼는 사실 따라 만들어 먹기 위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버릇 같은 '너무 간단해요'란 말과 달리 그의 손놀림이 거의 전광석화에 가까운데다가 사용하는 음식 재료는 피닉스의 심장이나 바야바의 발바닥처럼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기 때문이다.

  • 알렉스
그러니 그의 요리쇼를 시청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저 잘 생긴 훈남 요리사가 순식간에 뚝딱뚝딱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그저 손 놓고 본 여자들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2월 중 온스타일 채널을 통해 <오가닉 육류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알렉스

온갖 종류의 로맨틱한 행위로 남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찍히며 '심어버리겠다'는 위협(그의 노래 '화분'을 빗댄)까지 들은 그지만 사실 알렉스는 꽤나 내실 있는 개스트로 섹슈얼이다. 어설픈 이벤트를 위해 요리하는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2년 경력의 정식 요리사다. 밴쿠버 일식당 '야나기'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는 지역 신문에 '최고의 미소 된장국'을 끓이는 요리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 낸 요리 에세이 <스푼>에서는 가족과 친구, 음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음식과 엮어 풀어낸다. 냉면 마니아들은 육수의 맛을 흐리지 않기 위해 면을 젓가락으로 들고 그 위에 식초를 아주 살짝 뿌려 먹는다는 정보에서 그다운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출연하는 드라마 <파스타>에서는 초보답지 않게 연기도 꽤 잘하며 노래는 두말할 것도 없으니, 어쨌거나 감성에 있어서는 다방면으로 반짝이는 남자다.

고든 램지

  • 고든 램지
고든 램지를 두고 요리하는 남자는 매력 있다라는 말을 하기는 좀 어렵다. 미처 눈에 하트가 그려지기도 전에 그의 고래고래 외치는 고함과 상소리, 발길질을 목격하게 될 테니. 주방 보조의 코뼈를 부러뜨렸다느니, 발로 엉덩이를 찼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에 힘입어(?)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욕설을 선보이고 있는 고든 램지는 오히려 그 캐릭터에 실력이 가려진 경우다.

그는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뛰어난 요리사일 뿐 아니라 수완 좋은 사업가다. 죽어가는 식당 살리기 프로젝트 <키친 나이트메어>에서 주방의 청결, 손님에 대한 태도에 대해 쏟아내는 그 말에는 틀린 소리 하나 없다. 남자의 섹시함은 실력과 비례한다고 했든가. 일에 집중한 그의 모습은 언제든 애정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선균 (극중 최현욱)

요리하는 남자에 나쁜 남자 캐릭터를 탑재한 최신형 개스트로 섹슈얼. 초콜릿에 생크림을 더한 것 같은 알렉스와 달리 드라마 <파스타>에서 이선균이 연기하는 최현욱 셰프는 초콜릿에 에스프레소 같은 남자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쓰고 독한 말을 내뱉지만 초콜릿처럼 살살 녹는 목소리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배신과 실연으로 트라우마를 잔뜩 안고 있는 모습이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는 한편, 설탕투성이 피클은 주방에서 가차 없이 추방해야 한다며 "진짜 좋은 것은 손님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흔들림 없이 말하는 모습은 한없이 단단해 보인다. 20% 부족한 발음만 교정하면 충분히 요리계의 강마에로 떠오를 수 있을 캐릭터.

  • 이선균
류시원 (극중 서우진)

초식남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10년 전에도 류시원은 초식남이었다. 요리책을 펴낸 최초의 남자 연예인이기도 하다. 종갓집 종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식가로 자란 그는 꽤 오랫동안 요리 프로그램의 MC를 지내다가 지난해 드라마 <스타일>에서 마크로비오틱 한식을 선보이는 유학파 셰프 서우진으로 등장했다. 비록 요리보다는 연애에 바빠 조리복을 입고 있는 시간보다 클럽에서 김혜수를 째려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마크로비오틱의 원칙을 설명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님을 연상케 했다.

정재형

전 베이시스 멤버인 정재형은 냉장고 속을 정리하다가 사놓은 지 꽤 지난 오리절임을 해결하기 위해 급히 슈퍼로 뛰어가 배와 오렌지 주스를 사오는 아줌마 영혼의 소유자다. 자격증을 가진 전문 요리사가 아닌 오랜 독신 생활 끝에 자기의 먹을 것은 자기가 해 먹는 생계형 요리사.

자기가 만드는 음식이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확신하는 그는 파리에서의 유학시절을 기록한 책 <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에서 "내가 하는 음식이 좋고, 혼자 사는 일도 즐긴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가장 알맞게 구워진 스테이크와 파스타 맛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고 있으며, 멸치 육수로 끓인 콩나물국과 추운 겨울에 된장을 한껏 풀어 한솥 끓이는 배추 된장국에 자신이 있다.

  • 류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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