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용 문화공간의 요구] 시네코드 선재, 아트하우스모모, 필름 아카이브 조제 브랜드화 노력

영화사 스폰지의 필름 아카이브 조제
"국내의 예술영화 산업 환경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습니다. 열악하다 못해 적대적인 사업 환경 속에서 예술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영화사들은 물론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대부분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8일 영화사 백두대간이 낸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다. 예술영화전용관의 위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더구나 실감하기 어렵다. 근 몇 년간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상영관 일부를 예술영화 전용화한 터다. 예술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경험하는 맥락까지 예술영화'문화'에 포함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술영화전용관을 표방하는 상영관 수만큼 문화도 다양해졌을까. 예를 들면 "<헤드윅> 같은 영화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영화사 스폰지 )가 문제인 것이다.

다양한 영화를 통해 다양한 풍경과 삶의 국면, 다양한 철학과 가치관과 재미를 '경험'하고자 하는 예술영화 지지자들에게 체인화된 예술영화 상영관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들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특정 상영관의 특정 프로그래밍 방향, 관람 방식, 인테리어와 분위기와 역사 그리고 같은 취향을 매개로 한 인연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술영화전용관은 손에 꼽는다. 독자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을 바탕으로 공간을 특성화·차별화하며 이에 공감하는 고정 관객층을 확보한 곳, 즉 '브랜드'가 있는 상영관이다. 대부분 예술영화 제작·수입사가 운영하는 이들 예술영화전용관은 최근, 정체성을 뚜렷이 하며 영화 문화를 다양하고 활발하게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위기 대응책이거나 진화의 결과, 혹은 둘 다다.

최근 영화사진전의 시네코드 선재에서 개봉한 영화 '위대한 침묵'
영화사진진이 운영하는 예술영화전용관 시네코드선재가 한 예다. 이곳은 최근 영화 <위대한 침묵>의 조용한 흥행에 일조했다. 전국 9개관에 개봉한 이 영화의 관객 5만5천 명 중 60%가 시네코드선재를 찾았다. 주말에는 거의 매진이다.

그 비결은 공간 자체가 가진 매력이다. 서울 안국역 근처 문화공간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있는 이곳은 주로 유럽의 예술영화를 수입하는 영화사진진의 정체성과 인사동과 삼청동 사이라는 지역적 특색이 맞물린 곳. 영화사진진 마케팅팀 양희순 팀장은 "시네코드라는 이름 자체가 특별한 감성 코드와 연관된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주변에 갤러리, 도서관, 학교, 카페 등이 있고 오래된 골목길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의 입지조건은 묵언 수행하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이 상영되기에 적합해 보인다. 영화사진진은 이런 맥락을 반영해 시네코드선재의 브랜드화를 꾀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기획전과 연계해 프로그래밍하고, 나아가 미술작가와 영화감독이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영화사 백두대간은 자사의 예술영화전용관 아트하우스모모를 함께 꾸려나갈 객원 인력인 '모모 큐레이터'를 모집하고 있다. 모집 분야는 상영관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사장', 영화제와 행사 등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획자, 웹사이트 관리자 등. 이는 "관객을 문화 생산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예술영화 산업의 한계를 넘는 문화운동으로서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백두대간 진명현 과장) 시도다. 예술영화문화는 '소비자'를 넘어서는 관객의 역할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까지 3개 지역에 총 5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는 등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여온 영화사 스폰지는 지난 21일 '필름 아카이브 조제'라는 영화 상영 공간을 열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 조제의 지하에 위치한 이곳은 스폰지가 수입·제작한 200여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 자체적인 상영 스케줄이 있되, 관객이 스스로 작품을 선택해 관람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소규모 상영회를 위한 대관도 가능하다.

영화사 백두대간의 아트하우스모모
기존 예술영화전용관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상영관'이기보다 카페를 겸한 복합공간이라는 것. 커피와 차는 물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는 이 공간을 구상하며 "80~90년대 초 일부 카페에서 열리곤 했던 국내 미개봉작 불법 상영회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보는 게 메인이라는 개념을 바꿔보고 싶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한 공동 관람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한에서 공간을 변화시키고 다용도로 활용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영화전용관은 나름의 색이 있어야"

영화사 스폰지

필름 아카이브 조제는 작년 스폰지하우스 압구정과 중앙을 닫은 후 여는 공간이어서, 전용 상영관에 대한 스폰지의 전략이 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스폰지하우스 압구정과 중앙을 닫은 이유는 각각 다르다. 스폰지하우스 압구정은 오랫동안 적자였다. 특히 압구정 CGV에 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기면서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스폰지하우스 중앙은 그보다는 중앙시네마의 상영관을 임대한 탓에 '우리' 공간이라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스폰지하우스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형태의 상영관이 여럿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학교 등 상영시설이 갖춰진 공공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은 살아남았다. 여러 스폰지하우스 중 가장 스폰지다운 상영관이라고 봐도 되나.

여러 가지 특색이 있다. 관객 접근성이 좋고, 그 결과 수익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내고 있다. 만들 때부터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카페가 있고, 그곳에서는 계속 전시가 열린다.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식당으로 허가를 받았다. 더구나 임대료도 싸다. 그 건물을 소유한 신문사가 스폰지하우스를 유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관만 남다 보니 앞으로는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좀 더 스폰지다운 영화만 상영할 수 있다.

조성규 대표
필름 아카이브 조제는 어떻게 운영되나.

기본적으로 라이브러리다. 스폰지의 영화들을 언제라도 원하는 대로 찾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일주일 전에 신청만 하면 된다. 자체적인 프로그램도 있다. 짐 자무시 영화 상영회를 21일 시작했고 왕가위, 빔 벤더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구스 반 산트 영화 상영회를 할 계획이다. 가끔 압구정 CGV에서 상영되지 않는 스폰지 개봉작도 상영할 예정이다.

생각은 많다. 한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은 너무 심각한 경향이 있는데, 그와 다른 영화 관람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예를 들면 락 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 다큐멘터리 영화나 <헤드윅>, <맘마미아> 같은 영화를 앉아서 숨죽이며 보는 것은 좀 웃기지 않나. 맥주도 마시고 노래도 따라 부르며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예술영화전용관이 위기라는 이야기도 있고, 체인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술영화전용관도 자본의 논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체인의 예술영화 상영관이 대세인 것이 사실이고, 이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영화전용관은 자체적인 프로그램 수급 능력을 갖추고 나름의 색을 지켜야 한다. 관객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술영화전용관도 문제지만, 서울에 아직 시네마테크가 없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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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