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말하는 2000년대 한국문학] 심포지엄 열고 '근대문학의 종언' '미래파 논쟁' 등 10년간의 변화 정리

가라타니 고진
현대문화의 한 구분점이 지나고 있다. 2000년대의 첫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 문학을 어떤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2000년대 문학계는 '90년대와 차원을 달리한다'고 말한다.

IMF를 계기로 우리사회 삶의 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됐고, 노동력의 세계적 이동과 계층 간 양극화 심화 등의 변화로 문학계 패러다임은 달라졌다.

2000년대 10년 간 한국문학계 변화를 정리하는 자리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고 민족문학연구소가 주관한 이 심포지엄에서 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비롯해 2000년대 시단을 달군 '미래파 논쟁', 젊은 소설가들의 달라진 작품 경향 등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근대문학의 종언? 한국문학 위기 담론의 실체

심포지엄에 참석한 문학평론가들은 2000년대 문학계의 최대 이슈였던 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계 10년의 변화를 정리했다.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의 요지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 퇴조'다.

근대문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떠맡고 있었기 때문에 즉, 문학과 정치, 문학과 종교 등 대립된 논의에서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학은 단순한 오락이 아닐 수 있었다. 또한 근대문학은 공감의 공동체이자 근대 생성의 모태인 '네이션(nation)'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네이션은 이미 확립되었기 때문에 근대문학의 역할도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2000년대는 활자매체 이외에 다양한 매체들이 번성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윤리적 목적을 위한 문학 활용은 과거처럼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출판상업주의와 대중소비문화와 결탁한 문학을 만들어냈다.

고진의 진단을 우리 문단에서 주목한 이유는 고진이 현존하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상가·문학평론가란 점과 함께 '근대문학의 종언'의 통찰 대상이 바로 한국이라는 데 있다.

1부 총론 발제자로 참석한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고진의 이론을 중심으로 최근 문학계 흐름을 정리한 후, "2000년대 한국문학은 환상, 유머, 엽기, 탈국경, 팩션, 미래파, 극단적 언어 실험 등 다른 어떤 시대보다 문학 언어를 세련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현실 대중과 단절된 채 연예계 스타시스템처럼 더 전문적으로 기능적인 영역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한국소설의) 서사체질이 변하는 동안 우리 문단은 크게 두 차례의 진통을 겪는다. 하나는 리얼리즘-모더니즘 회통론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문학 종언론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학성 논의다. 첫 번째는 환상, 비인간화, 장르 혼종이 일반화되면서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이라는 낡은 구도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고, 두 번째는 근대 문학 종언론이나 문학성 논의는 본격문학 대 대중문학의 구대가 해체되어버린 사태를 놓고 겪는 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은경, <밀교의 사제들>중에서)

권혁웅
정은경 평론가는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 이후 국내 문학계의 반응을 크게 3가지로 진단했다. 첫째는 고진의 의견에 동의하고 문학장을 떠나는 것이다. <녹생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생태운동, 송경동 시인의 파업현장 투쟁과 시 창작 병행, 문학평론가 이명원-오창은 씨가 이끄는 지행네트워크의 (재소자를 위한) '행복한 인문학' 등 몇몇 문인들이 활자화된 문학에서 벗어나 '문학 너머의 문학' 활동하고 있다.

둘째는 종언론을 부인하고 한국문학의 건재함을 확인하는 일이다.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 목록, 인터넷 소설의 건재, 중진작가의 정치적 행보 등 한국문학의 대중적 성공이다. 한편에서 고진이 문제 삼았던 리얼리즘 기율에 기반한 근대문학의 쇠퇴를 전면 부정하는 논의도 있다. 창비진영(백낙청, 한기욱 등)과 권성우 평론가 등으로 대표되는 중진 문인들은 한국문학에서 리얼리즘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흐름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근대문학 이후 문학은 오락'이란 지적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모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문학평론가 황종연을 비롯한 신진 비평가들의 작업, 최근 문예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문학과 정치 담론이 이에 속한다.

"다양한 매체 발달로 인해, 활자문화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졌습니다. 오락이든, 삶의 방향성을 위해서든 대중이 문화예술을 찾는다고 할 때, 이제 그것이 꼭 문학예술일 필요가 없는 겁니다. 더 수준 높은 정보와 감동으로 우리의 영혼을, 삶을 고양시키고 사회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문화예술은 주변에 널려있습니다. 문학은 그것들과 경쟁해야 하거나 과거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은둔'해야 합니다. 궁극은, 개별적인 시인, 작가들에게 있습니다."

2000년대 문학, 새로운 감각과 재현

하상일 문학평론가는 미래파 논쟁을 중심으로 2000년대 우리 시단의 변화를 정리했다. 2005년 계간지 <문예중앙> 봄호에서 문학평론가 이 처음 사용한 후 2000년대 시단의 대표적인 경향이 된 '미래파'는 황병승·김민정·김행숙·김언·이민하·이장욱 등 30∼40대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90년대를 풍미한 서정시의 대척점에 선 젊은 시인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미래파는 '새로운 흐름'이란 진단의 한편으로 '소통부재의 난해시'란 비판도 잇따랐다. 환상과 엽기, 그로테스크한 요설과 고정된 시 형식의 해체와 같은 새로움이 사회적 관계 안에서 창조적 의미를 생성해 내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상일 평론가는 <2000년 이후 우리 시를 둘러싼 논쟁과 불협화음>에서 "미래파 논쟁의 핵심에는 서정의 개념과 위상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비판의 대상이 너무나 자의적이어서 생산적 논쟁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래파는 서정시의 보수성을 넘어서는 진보적 미학의 가능성을 열어가면서도 한편으로 또 다른 권위를 형성하는 모순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처음 몇몇 시인의 시적 경향에 대한 소박한 명명에서 시작된 미래파는 점점 집단화되면서 우리 시단의 가장 의미 있고 시의적절 한 트랜드로 급부상하는 문화적 양상으로 확대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미래파 논쟁이 남긴 또 하나의 문제점은 우리 젊은 시단이 미래파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구도로 재단되어버릴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사실이다. 이원화된 인식과 평가가 어느 쪽에서 귀착되지 않는 수많은 시인에 대한 평가를 삭제하거나 유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시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맺어진 최소한의 언어적 소통체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자의적이거나 자폐적인 언어의 재생산으로 새로운 발화를 시도하고 있다. 2000년대 우리 시가 '재현'이 아닌 '감각'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상일 평론가는 "이런 점에서 전통적 의미의 재현으로서 시 쓰기는 점점 우리 시단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현의 다양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관점을 통해 재현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문제의식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얼리즘은 우리사회를 읽어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요 정심으로 살아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미래파로 대표되는 젊은 시단의 '난해한 시'는 소통 불화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상일 평론가는 "미래파적 경향의 변화와 혁신은 상당히 문제적이고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지만, 독자와의 관계 나아가 현실과의 교섭을 외면한 채 시인의 자의식 확장으로만 전개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정리했다.

2000년대 문학의 변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근대문학 종언', '환상'과 '감각'으로 점철된 젊은 문학은 달라진 시대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알고 싶다면, 지금 바로 서점의 문학코너를 눈여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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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