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문화의 새바람] 특권층서 소시민으로 '십시일반'의 새로운 기부 문화 형성
이로부터 수백 년 후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자들의 사회환원 및 기부 형태로 뿌리내리게 된다. 1890년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도서관과 대학, 교회 등을 지어 사회에 환원하며 자선사업가로서 이름을 올렸다. 마이크로 소프트 전 회장인 빌 게이츠도 46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은퇴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최근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처럼 여겨졌던 이 말이 대중화, 평준화되고 있는 듯하다. 일단 거창하지 않다. 일반 소시민들이 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 특권층의 거창한 기부 문화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못지 않은 정신으로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 1월 12일 발생한 아이티 강진 사태만 봐도 그렇다. '티끌 모아 태산', '십시일반'의 정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체하며 새로운 형태의 기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아이티 강진으로 본 기부 문화
'티끌모아 태산'. 소액 기부자로 불리는 일명 '개미 기부자'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개인 기부자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구호단체들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로 아이티에 희망을 선물할 수 있게 됐다.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한국컴패션 등 네 단체는 각각 13억, 14억, 15억, 8억여 원(26일 오후 12시 기준)을 거두었다. 모금활동을 시작한 지 12일 만이다.
이들 구호단체의 성금 규모로만 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걷힌 모금액은 100억 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 기부자들의 참여도가 높은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 두고 구호단체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와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2008년 총 2,702억 원을 모금했다. 이중 일반 개인 기부(공공기관, 종교단체 기부 제외)는 484억 원(17.9%)이었다. 이는 1999년 79억 원에 비하면 6배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개인 기부자들의 참여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서 기부 방법에 대한 진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을 이용한 네티즌의 기부와 휴대폰을 이용한 문자메시지 기부, 카드 포인트 기부 등이 생기면서 젊은 소액 기부자들이 형성됐다. 과거에는 기부가 부유 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면, 현재는 단돈 100원부터 '십시일반'의 정신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유니세프의 채정아 미디어팀장은 "개인 기부자들의 증가 추세는 소액 기부와도 연관이 있다. 온라인이나 ARS 등을 이용한 손쉬운 방법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기부문화를 형성했다. 기부 방법의 다양성이 우리나라만의 색다른 기부 문화를 만들어냈다. 소액, 개인 기부자들이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기부 계층의 다양화
굿네이버스는 2009년 한 해 동안 신규 가입 회원(정기회원)만 10만 명을 넘어섰다. 굿네이버스는 절대 빈곤 국가인 제3세계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윤 간사는 "인터넷을 이용한 가입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루어 보면 젊은 층의 기부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통계청의 2006년 후원(기부)인구 통계에서는 기관이나 단체를 이용한 후원을 제외한 '대상자 직접 후원'이 11.9%(전국 기준)였다. 3년 후인 2009년에는 15.9%로 기부 인구가 4% 증가했다. 또한 2006년 20~29세를 대상으로 기부 인구를 조사한 결과 12.6%였으나, 3년 후에는 17.6%로 5% 가 늘었다. 소폭이지만 20대 젊은 기부 인구의 상승이 눈에 띈다.
소득별로도 그 상승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표 참조). 각 소득별로 약 4% 가량 기부 인구가 늘었다. 저소득층도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기부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구 소득 400만~600만원 미만의 중산층의 기부 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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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