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를 감시하다] 진기종, 양아치,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 작품으로 표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현재 전시 중인 <국제예술상전>의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의 작품 5점이다. /용인=임재범 기자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정치인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TV를 보고, 그 TV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조그만 프레임 안의 바보상자에서 누군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알아간다. 그것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고 심지어 조작된 것일지라도 말이다." 미디어를 향한 대중의 근거 없는 신뢰에 대한, 진기종 작가의 뒤늦은 자각이다.

국가권력이 장악한 앵무새 언론의 암울한 현실은 2040년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극단적으로 그려진다. "이민자들, 회교도들, 동성애자들, 테러리스트들, 더러운 에이즈 환자들, 그들은 죽어 마땅했습니다! 국가를 통한 힘, 신념을 통한 국가." 극우 정권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다름'은 곧 '악'이다. 그들은 위험요소를 의도적으로 생성하고 과장하며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공포를 주입하는데, 이 세뇌의 과정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상과 설치작업을 하는 진기종 작가는 얼마든지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조작되고 변질될 수 있는 미디어에 주목했다. 2008년, 그는 첫 개인전 에서 2006년부터 선보인 시리즈를 확장해 8개의 TV채널을 비틀었다. '흑백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피부가 검을까?'라며 어린 시절 품었던 호기심에서 출발한 시리즈는 미디어가 주조해내는 이야기의 진실성과 일방적 소통방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9.11 테러 사태를 지속적으로 방송하는 CNN, 반대로 이라크 바그다드 폭격을 알리는 알자지라(Aljazeera)방송,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의 진위공방을 잠재우는 디스커버리 채널, 황우석 박사의 가짜 줄기세포에 열광하던 YTN, 세기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히스토리 채널, 그리고 스포츠카 광고를 연신 방영하는 메르세데스 벤츠까지.

진기종 작가의 'YTN'
"그들이 실시간 보여주는 치밀한 정보의 뒷면이 마치 만화처럼 편집된 하나의 허술한 스펙터클에 불과하다는 사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을 작가는 소규모의 방송 재현 설치작업을 통해 말하고 있다.

평등하고 공정한 시선은 없을까?

권총을 든 15명의 남자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탕! 탕!' 도망치고 추격하고, 한데 엉켜 바닥에서 뒹굴다가 결국 피를 보고야 만다. 한 명의 본드 걸을 차지하기 위한 열 다섯 명 007의 추격전이 처절하다. 더 굴욕적인 상황은, 회심의 미소를 날리는 최후의 승자에게 본드 걸이 총구를 겨눈다는 것이다.

양아치 작가가 재해석한 영화 <007>은 내용 못지 않게 형식이 흥미롭다. 이 한 편의 에피소드는 건물 내에 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를 통해 생중계되어 갤러리 안에서 보여진다. '감시 드라마'로 명명된 이 퍼포먼스에서 관람객들은 감시자가 되고, 이들은 또 다시 갤러리 안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피감시자로 전락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로 구분된, 단절되고 일방적이며 숨겨진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에 제 3자의 시선(갤러리 관람객)이 끼어드는 것. 감시와 피감시의 관계에 대한 양 작가 식의 '딴지'인 셈이다.

"과거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던 '감시와 통제'의 문제를 미시적인 시각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옮아왔다. 개인이 마주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거대한 화두와 마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기종 작가의 'Asronaut -Spaceman'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컨셉이지만 기존에 설치된 CCTV를 이용하는 작업은 법적인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이 든다. 건물이나 거리에 설치된 CCTV 감시권에 대한 (일종의)대여는 기업과 CCTV관리 업체에 취지를 설명해 동의를 얻는다. 거부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면 작가는 "해프닝으로 보아줄 수 있는 것을 괜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닫힌 사회가 아닌가"하고 우리 사회를 반추하게 된다. 반면 수신기만 가지고 있으면 주파수를 맞춰 감시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무선 카메라는 더 재미있지만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세계의 파놉티콘화에 대한 양아치 작가의 의식은 인터넷 시대, 전자정부와 기관, 기업에 관리되는 현실(인터넷 실명제, 전자도청 등)에서 발아했다. 이는 정보 제공자와 정보 사용자, 양자 간의 이해와 합의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으로 발전되어 왔다. "한쪽이 옳다, 그르다 혹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감시가 부정적이지만도 않다. 그러나 왜 우리 사회에서 감시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터놓고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엄중한 권력 구조를 전복하는 예술가

1979년부터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예술작품을 해 온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Robert Adrian X). 캐나다 태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 중인 작가는 '로우-테크'로 대변되는 텔레팩스나 전화, 슬로우 스캔 TV, 아마추어 무선 통신(ham) 등을 이용한, 텔레커뮤니케이션 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세계의 예술가와 미디어 전문가들과 소통하거나 즉흥 잼 콘서트를 여는 등의 대형 프로젝트(<24시간의 세계, 1982>, <텔레폰 뮤직, 1983> 등)를 통해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허무는 시도를 했다.

그가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도를 감행한 건, 197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제작된 <감시, 1979-1984>시리즈에서다. 오스트리아 도심에서 CCTV를 장착한 차량 한 대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찍은 화면과 그 차를 찍은 또 다른 CCTV 동영상을 나란히 놓고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시자의 시선과 피감시자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엄중하고 닫힌 감시 체계를 환기한다.

양아치 작가의 감시 드라마 '007'
작가는 감시에 대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통제로 주제를 옮겨간다. 1991년 걸프전 당시 CNN에서 방송되는 전쟁 소식을 보면서 자신이 해 온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들이 전쟁에서 이용되고 있음에 충격을 받은 이후다. 형광등 100개와 전투기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혼존하는 <그린 라이트, 1994>로 구체화된 작품은 걸프전 이후 전쟁의 타당성을 선전하는 데 앞장서는 미디어에 대한 반동이었다.

예술로 시스템의 모순을 극복해보고자 했던 70대의 노예술가가 남긴 말은 하이테크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가들은 현존하는 조직과 시스템에서 모순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이기적인 권력 구조를 전복하기 위해 매체와 물질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왔다. 우리는 적어도 이 전자 공간 내부, 상업적/군사적 세계에 인간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방법을 찾는 시도는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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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