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비평시대] 이영준 기계비평가인터넷과 휴대전화 결합 '아이폰' 새로운 이동성 만들어 낼 것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사진예술과 이영준 교수는 국내 최초, 그리고 유일한 '기계비평가'다.

누구도 한낱 기계를 비평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는 기계가 문명, 시대와 사회,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무의식에 개입하는 성격에 관심을 두었다.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사진 비평을 주로 하던 그는 "사진의 본질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그것에 달라붙는 요소들, 즉 사진이 움직이는 속도, 그 속도가 우리의 지각과 인식에 가하는 작용, 그에 대한 우리의 신체적, 인식적 반응"이라는 생각에서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서의 사진을 실마리로 사고를 펼치는 글"(<비평의 눈초리-사진에 대한 20가지 생각> 서문)을 쓰게 되었고, 이런 관점으로 기계를 비평하는 데 이르렀다.

그래서 이영준 비평가가 기계를 통해 보는 것은 우선 그 정확한 원리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얽힌 수많은 요소와 요인, 영향이다. KTX가 등장했을 때 그는 이렇게 썼다.

"고속을 제1의 가치이자 덕목으로 내세우는 KTX에서 승객은 속도를 느낄 수 없다.(중략) 그가 속도를 느끼는 것은 공간적 지각이 아니라 시간적 이해라는 차원을 통해서다. 즉 광명-대구가 한 시간 반밖에 안 걸린다는 매우 추상화된 사실에 의해 속도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공간의 시간화, 혹은 공간의 추상화라는 근대적 성향의 연장선이다."(<기계비평>)

기계에 의한, 혹은 기계를 통해 가시화되는 현 시대의 패러다임을 '가속加速'으로 짚어내며, 발전과 편리라는 정당화 명목 너머 현황을 살피는 것이다. KTX의 속도가 공간을 지우는 것은 가깝게는 시야에서부터다. 달리는 KTX의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요란한 간판과 구석구석의 쓰레기 같은 구체적 사실이 사라진 윤곽과 "색의 혼합된 인상"으로서의 스펙터클일 뿐이다. 이는 사람들의 지리감각이 추상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지표다.

이것이 문제인가. 속도는 왜, 누구를 위해 추구되는가, 같은 감히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해 이영준 평론가는 그럼 이것이 재미있는지 되묻는다. 이동은 있으나 지리감각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온전한 여행이란 여행자가 이동성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혼자 여행 갔다가 길을 잃고 난감한 상황에 처해도 그런 여행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행자 자신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오퍼레이터의 작동에 철저히 내맡겨진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수동적 존재인 승객으로서는 유일하게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지리감각을 동원해 현재 자기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이제 감각적 경험의 추상화로 그게 불가능해진 이상 KTX 타고 가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게 되었다."

사람의 노력과 경험이 축적된 '항해'라는 원뜻을 배반하고 운전자를 독촉하는 "고성능의 지리적 문맹 장치"로 통용되고 있는 내비게이션은 어떤가.

길 잃어버리는 공포와 함께 모르는 길을 가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날 방랑의 즐거움도 빼앗아간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비게이션은 일종의 인터페이스인데, 그게 인간에게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하는가 아닌가가 문제다.(중략) 디지털 지리 정보의 조밀한 매트릭스 속에서 우리는 근육을 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 두뇌를 쓸 필요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인가?"('내비게이션 시스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디자인저널 양귀비 1>)

이런 이유로 내비게이션 없는 자동차를 고수하는 이영준 평론가에게 기계와 기술, 그리고 우리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해석과 그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기계비평'이 대중적이진 않다. 자신의 관심사를 정리해 준다면.

기계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특히 여행을 좋아해서 땅과 인간 간 인터페이스인 기계들이 흥미롭다. 지도에서부터 철도, 선박, 항공기 등. 이런 기계들이 어떻게 지리와 인간의 감각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그 기계들의 영향이 속도에 대한 패러다임이라는 점이 여러 글에서 언급된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10km/h나 항공기의 100km/h 같은 속도는 아무 필요가 없다. 즉 기계가 의미 있는 속도를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게 왜 필요한지는 잘 묻지 않는다. 어떤 기계가 사회에 도입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KTX가 20세기말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은 단지 기술적 발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기계에 대한 매혹이 세대적 특성은 아닌가.

그런 면도 있다. 어렸을 때 조립하는 플라스틱 모델을 갖고 논 세대니까. 대학원 시절 만난 친구 중 한 명은 10대 때부터 자동차 엔진을 뜯어보는 게 꿈이었다더라. 실제로 집에서 사준 첫 차에 여자를 태우기도 전에 엔진을 해부했다.(웃음)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길을 파악하기보다는, 땅 전체를 보면서 길을 찾아 땅과 나 사이의 연관을 짓고 싶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는 사람의 습관을 바꾸고 감각과 의식, 사회적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사회적 정체성이라니.

예를 들면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거나 괴짜처럼 인식된다. 이메일이 없는 사람은 컴맹이거나 아예 컴퓨터 고수처럼 여겨지고. 이런 식으로 사람이 기계를 규정하는 만큼 기계도 사람을 규정한다.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미디어 기술들에 대해서는 관심 없나.

모든 기계와 기술은 역사 속에서, 시대사회와 결부해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막 팽창하고 있는 기술들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아이폰이 주목할 만한 기술이라는 생각은 든다. 새로운 발명이 없어진 20세기 이후 인터넷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랄까.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결합이 새로운 이동성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나침판 애플리케이션이 있더라. 기계가 스스로 지리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마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이 기술들을 쓰게 되지 않을까.

기계비평의 역할은 뭔가.

기계가 뭐냐,고 묻는 것이다.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던지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인류학자가 던질 수도 있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기계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호기심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왜 기계를 좋아하나,를 밝히려는 것이기도 하고.(웃음) 기계를 역사 속에서 쓴다는 점에서 고고사학자의 일 같기도 하다.

그럼 늘 사후적일 수밖에 없나.

비평이 사후약방문이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메시아를 자처해도 안될 것 같다. 최근의 디지털-미디어 기술에 대한 담론이 많은 경우 후자여서 우려스럽기도 하다. 기술에 대한 찬탄 혹은 그 폐해에 대한 앞선 비판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담보하지 못했듯, 기술이 구현되는 현실과 그 영향은 더 복잡하다. 그 밑지층이 더 많은 것이다. 내 관심은 밑지층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평가나 판단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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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