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에 빠진 대중문화]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 잡기, 리얼 버라이어티·토크쇼 등 범람

#"남자들이 거기(?)가 커야 남성미와 자신감이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여자들도 가슴이 커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 그래서 가슴 (확대)수술을 할 거야."(SBS ETV <결혼은 미친 짓이다2>)

#김연아가 스케이트 장에서 휴대폰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TV는 거의 못 보는데요. 하지만 T옴니아2의 지상파 DMB로 언제 어디서나 TV시청을 할 수 있죠. 쉬는 시간에는 어플에서 게임을 다운받기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 보실래요?"(김연아의 삼성전자 T옴니아2 CF)

#"아는 언니에게 배신당한 것을 알고난 뒤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고, 실어증까지 앓아야 했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안에 악재가 따르는가 하면 통장 잔고가 없어 빈털터리가 돼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해외여행을 갔지만 주변의 수근대는 사람들 때문에 숙소에서 자해까지 했다."(SBS <>)

개인의 사사로운 생활, 즉 '사생활'이 방송의 '주무기'로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굳이 알 필요 없는 이야기들이 미디어의 힘을 빌려 대중에게 전해진다는 뜻이다. 사실 방송계는 스타들의 신변잡기들로 넘쳐난다.

연예인들의 사생활 잡담이 점령한 상태라고 봐도 무관하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 형식 등 두 갈래로 나뉘면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방송의 '메인 디쉬'가 됐다. 심지어 부부의 이불 속 은밀한 이야기조차 방송에 거리낌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비방도 서슴지 않는다. 미디어가 이처럼 사생활 노출에 중독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승장구
방송 관계자들은 유명인들의 사생활 노출이 시청률의 보증수표라고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PD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이 사생활 노출과 더불어 폭로전을 방불케하는 방송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환경이 유명인들의 사생활 노출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생활 노출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바로 화제성과 시청률이다. 또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도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을 넘어 케이블 채널에서도 온갖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토크쇼가 생기면서 스타들의 설 자리를 제공한다.

KBS <김승우의 > <달콤한 밤> <해피투게더3>, MBC <세바퀴> <황금어장> <놀러와> <무한도전>, SBS <> <> <절친노트3> <패밀리가 떴다> 등 지상파 방송에서는 일주일 내내 유명 스타들의 사생활로 도배된다.

스타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전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일도 다반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스타가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문제와 한동안 논란이 된 '거짓 방송'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연이어 반복되자, 케이블 채널에서는 색다른 수식어로 스타들의 사생활을 들춘다. MBC 애브리원 <>, SBS ETV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은 스타 부부들의 일상을 그대로 노출한다. 출연 부부들은 자신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부부생활, 생활패턴, 육아 등 그리 모범적이지 못한 부분들까지 고스란히 카메라에 맡긴다.

강심장
리얼한 방송을 위해 부부간의 막말과 함께 개념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에게 발길질을 하며 고함을 치는가 하면, 남편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몰래 아내의 액세서리를 팔기도 한다. 여과없이 브라운관에 그려진다. 지난 3월 첫째 주 지상파 방송 주간시청률 톱 20위 중 6개가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중 리얼리티와 토크 형식을 빌린 예능이 <해피선데이> <세바퀴> <무한도전> <> <해피투게더> 5개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생활을 노출하는 프로그램이 더 양산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또한 <슈퍼맘 다이어리>와 <토크 앤 시티>, 온스타일 <스타일 매거진> 등은 생활하는 환경을 달리해 스타의 이면을 집중 조명한다. 주부로 살아가는 연예인이나 방송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거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우는 스타들의 패션 노하우를 위해 집을 공개하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들 프로그램은 '슈퍼맘', '패셔니스타' 등 또 다른 컨셉트로 사생활을 노출하는 창구를 만들어냈다. 일반인들의 사생활 노출도 과감해졌다. KBS <인간극장>, QTV <엄마를 바꿔라> 등은 일반인들의 사생활을 일주일 동안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광고에서도 30초 이내에 짧은 효과를 위해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이용'한다. 아이돌 그룹 SS501의 김현중이 삼성카드의 CF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말한다. "잘 때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김현중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잠을 잔다"는 사생활 고백은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러자 광고계에서 그의 발언에 착안해 광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과 광고들에서 여과 없이 방영되는 은어와 비속어, 과도한 자막 등은 방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가 후원하고, 한국방송학회(학회장 김현주)가 주관해 '오락(예능) 프로그램의 정체성 위기: 선정성, 공익성만이 살 길인가?'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과 선정성', '오락 프로그램의 공익성: 가능성과 한계', '오락 프로그램의 심의 현황과 규제에 대한 제언' 등이 발표됐다.

동국대 대중문화연구소 이종임 수석연구원은 "과거 로컬 중심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프로그램 제작환경은 다매체 다채널 환경, IPTV의 출현과 채널의 확장으로 인해 보다 폭넓은 시청자의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이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으나,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학술세미나
그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상황, 스펙터클한 리얼리티를 전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해외의 다양한 프로그램과의 경쟁, 방송사간, 프로그램 제작사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방송에서 재현할 수 있는 '리얼리티'의 소재는 점차 시청률을 의식하면서 내용의 질적 확보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극적 소재에 집중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최근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팩추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오락 프로그램의 중심을 이루면서 표현 수위 상승, 인신공격, 사생활 노출, 타인의 생활 폭로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적 리얼리티 추구로 인해 성인에게도 유해한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 방송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선정성 관련 매체·장르별 구체적 심의기준 마련, 제작진의 주의, 시청자의 능동적 프로그램 시청 등을 촉구했다.

'오락 프로그램의 공익성'에 대해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정의철 교수는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이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으나,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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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