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비움, 행복]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권정생

아동문학가 故 권정생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해마다 밀 200만 섬을 수확할 수 있는 농지를 세습받은 제정러시아의 귀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농부처럼 간소한 삶을 살고자 했고, 평생을 걸쳐 '무소유'를 설파했다. 이 때문에 아내와 생긴 불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는 몰래 집을 떠나 며칠 뒤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생의 마지막에 그가 남긴 유언은 "하늘이 꾸미신 그대로 거두어라"였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그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톨스토이가 간소한 삶을 바탕으로 '무소유의 문학'을 일구어냈다면, 한국에서는 시인 오상순과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이에 비견될 터다.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 시인은 '자신을 비우고(空) 세상을 초월(超)한다'는 뜻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 가족도 집도 없었던 그는 사찰을 돌아다니다 말년에는 조계사의 가건물 골방에서 묵었다.

시인 故 오상순
그의 호를 빗대어 지인들은 오상순 시인을 '꽁초' 내지 '골초'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붙인 담뱃불을 잠자리에 들 때까지 꺼뜨리지 않았다는 것. 그는 명멸하는 인생과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동일시했고 이는 오상순 시를 관통하는 화두다.

소박한 시어와 폭풍처럼 몰아치는 광대한 격정의 시어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공초 시 세계의 특징이다.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담아낸 시의 내용은 시인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 주요 작품에는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 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로 알려진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삶을 관통하는 것도 무소유였다. 2007년 타계한 선생은 1967년부터 40년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예배당 옆 한 구석에 겨우 자신만이 누울 수 있을 만한 방을 만들고 긴 세월을 보냈다. 5평의 작은 흙집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면서 그는 자연과 인간,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담은 100여 편의 장·단편 동화와 소설 등을 남겼다.

그는 생전 "내 죽을 때 30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돈으로 화장해 집 근처에 뿌리고, 집도 없애 자연 상태로 돌리고, 기념관도 절대 짓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든 상을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1995년 아동문학가 윤석중 씨가 선생의 의사를 묻지 않고 '새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오두막으로 직접 상패와 상금을 가져오자 다음 날 우편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사후 그가 남긴 인세 수입은 1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고 유언에 남겼다. 지난 해 그의 유산과 인세를 기금으로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 위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번역가 겸 철학자, 수필가였던 민병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별명은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였다. 1960년 <새벽>지에 '사일의 철학적 단편', '사천세의 은자'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사상계>, <새벽>, <세대>, <창작과비평> 등에 수많은 철학에세이와 전기를 발표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사후 후배들의 뜻으로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이 발간됐다. 60평생을 독신으로 청빈한 삶을 살다 간 그는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동서고금의 서적들을 두루 읽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번역서와 수필을 남겼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