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스포트라이트 받기까지]기본기와 담력 갖추고 트레이닝 거치며 최적의 캐릭터임을 입증해야

뮤지컬 오디션 현장과 회사 면접장의 공통점은 뭘까.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저곳을 많이 다닐수록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진다, 심사위원의 압박을 이겨내는 담력이 필요하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뽑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극명한 차이가 하나 있다. 회사원의 경우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만, 뮤지컬배우는 천형처럼 오디션을 거치며 사는 존재라는 것.

'매의 눈'을 한 심사단의 테스트를 통과해도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될지 몰라도, 좋은 배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배우'가 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또 배우에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어떤 훈련을 거쳐야 할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 현장 <사진제공 플레이디비>
무엇보다 그런 배우를 가리는 '눈'들엔 어떤 기준이 있는 걸까. 오디션이라는 관문을 넘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첩첩산중을 들여다 본다.

그들 앞에 펼쳐진 오아시스 혹은 신기루

뮤지컬배우들에게는 최근 들어 가장 좋은 기회가 주어진 한 해의 출발이었다. 지난 1월의 <라디오스타> 오디션을 시작으로 <스팸어랏>, <지킬 앤 하이드>, <웰컴 투 마이 월드>, <페임>, <아이다> 등 기대되는 국내 초연작과 이미 유명해진 스테디셀러 등이 오디션을 치렀거나 앞두고 있다.

현재 최종 선발을 앞둔 작품 중 가장 먼저 오디션을 치른 <스팸어랏>에는 무려 4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국내 초연작인 <스팸어랏>은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 줄거리를 패러디한 극에 풍자를 곁들이고 언어유희를 가미한 코미디 뮤지컬. 때문에 코믹연기에 능통하거나 성대모사가 가능한 배우가 유리했다. 이 같은 특수성 때문에 신예들이 대거 지원했지만 초반 오디션에서 대부분의 지원자가 떨어지고 현재 42명만이 최종 오디션을 앞둔 상태다.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를 스타배우로 키워낸 <지킬 앤 하이드>의 오디션에는 무려 1400여 명이 지원해 차기 지킬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다. 특히 지킬 역은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전달하기 위한 세밀한 감정 표현력과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등 명곡을 소화하기 위한 뛰어난 가창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8일 치러진 최종 오디션으로 남녀 57명이 추려졌지만 최종 선발인원은 26명인데다 적합한 배우를 찾지 못한 배역도 있어 추가 오디션을 계획 중이다.

뮤지컬 '스팸어랏' 오디션 <사진제공 scenePLAYBILL>
총 13명의 배우를 뽑는 <웰컴 투 마이 월드>의 오디션에는 창작뮤지컬로서 초연작임에도 불구하고 4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3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총 책임을 맡은 김태웅 프로듀서는 "이번 오디션이 초연 뮤지컬치고는 많이 응시한 편이라 적잖이 놀랐다. 그만큼 실력 있는 연출가(오재익), 작곡가(허수현) 등의 유명 스태프가 참여하는 작품이어서 많은 배우들이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디션 경험이 많지 않은 지원자들에게 중대형 작품의 오디션은 배우의 역량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력과 담력은 기본이고 자신의 색깔에 맞는 역할을 찾아 지원하는 감각과 그날의 컨디션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래서 이 모든 요소가 갖춰지지 않는 한, 수많은 오디션들은 지원자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초연작과 재연작, 오디션도 다르다

기준이 없으면 신중해진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얼굴을 찾을 가능성도 많아진다. 국내 초연작의 경우는 해외 배우의 모습이나 창작자의 초안 이미지가 그대로 하나의 기준이 되지만,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이면 발탁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아시아 최초, 대한민국 1대 빌리'를 찾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1년 동안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진행됐던 <빌리 엘리어트>는 얼마 전 제작발표회를 열고 네 명의 1대 빌리를 발표했다.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키 150cm 이하 대한민국 소년 누구나'를 대상으로 열린 '빌리 찾기' 대장정은 지난해 2월 1차 공개오디션을 시작으로 올해 1월 4차 공개오디션까지 전국의 800여 명의 예비 빌리들을 만난 끝에 막을 내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아크로바틱 장면
이 오디션의 최우선 선발 기준은 다양한 재능과 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열정과 끈기를 지녔는가에 있었다. 그래서 이미 완성된 스타 아역배우보다는 빌리 역에 도전하며 기나긴 훈련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빌리를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2월에 치러진 <스팸어랏>의 1, 2차 오디션 현장에는 초연작인데다 코미디가 강한 작품이기 때문인지 신예들의 모습이 많이 띄었다. 경험이 부족하고 연령대도 낮은 지원자들은 오디션에 익숙하지 않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심지어 탭댄스 심사 때 탭슈즈를 준비해오지 않거나, 오락기기 '펌프'처럼 탭을 하는 지원자들은 심사위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결국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간 것은 경력이 있는 노련한 배우들이었다.

한편 재연작의 경우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매력이나 더 출중한 실력을 우선할 것 같지만, 예상 외로 요구되는 것은 뮤지컬배우로서의 안정적인 기본기다. <지킬 앤 하이드>의 오디션에 참여한 데이비드 스완 연출은 안무 심사를 진행하면서 지원자들에게 "스텝에 너무 신경을 쓰기보다는 인과관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 달라"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춤을 얼마나 잘 추고, 노래를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본인이 지망하는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얼마나 잘 녹여내는가를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잘 알려진 대형작품의 경우도 기본에 충실한 안정성을 먼저 눈여겨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무대에 올라갈 자격을 입증하라

신춘수 프로듀서
사실 기본기와 담력의 겸비나 뮤지컬배우로서의 감각, 스스로를 아는 냉철한 판단력 등은 오디션에 응하는 지원자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항들이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스무 명 안팎의 '떡잎'들이 추려지는 것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체화했는가의 여부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의 낮아진 연령대가 곧 배우로서의 자질 저하가 아닌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오디션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은 어린 지원자들은 연륜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대신 센스 있게 대처하는 순발력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담함에서는 높은 점수를 줬다.

<지킬 앤 하이드>의 홍세정 안무는 어린 지원자들이 많아지면서 안무 심사 오디션에 임하는 자세가 좀 더 대범해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무용전공자나 안무 트레이닝을 받은 지원자들은 기술적으로 너무 잘하고, 그렇지 않은 지원자들은 너무 얼어서 잘하는 이와 못하는 이의 갭이 굉장히 컸다. 하지만 요즘은 전공자가 아니고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어도 굉장히 적극적이고 표현에 두려움이 없다."

초연작의 경우는 특히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 배우로서의 기본기 외에도 작품이 대표하는 특성을 해당 캐릭터 안에서 잘 살려낼 수 있는가에 더 점수를 주기 때문. <스팸어랏>의 변희석 음악감독은 작품이 영국의 80년대 코미디 양식을 빌린 패러디 성향이 강한 점을 들어 오디션에서도 캐릭터의 개성을 최우선 선발 기준으로 삼았다.

"노래를 잘 부르면서도 웃겨야 하고, 개성이 강해야 하는 인물인지 아닌지가 가장 중요했다. 극 속 아더왕과 기사들의 캐릭터에서도 기사들은 1인 다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을 다 소화할 수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개성이 강한가를 우선적으로 봤다."

<빌리 엘리어트>의 1차 오디션에 통과한 빌리 후보들은 지난해 4월부터 제작사인 매지스텔라가 설립한 '빌리 스쿨'을 통해 'Making Billy Project'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오디션을 거치는 특이한 과정을 거쳤다. 오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지속되는 '빌리 스쿨'의 트레이닝 일과는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진행됐다. 발레, 탭댄스, 아크로바틱, 연기, 보컬, 즉흥춤, 현대무용, 힙합, 필라테스까지 모든 예비 빌리들은 1주일에 평균 14회의 클래스를 30여 시간 동안 집중 트레이닝받으며 최종 관문까지 도달했다.

예전에는 오디션 이후 본격적으로 캐릭터에 맞춰가는 트레이닝 과정이 시작됐다면, 최근엔 오디션 과정에서부터 얼마나 자신의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를 검증한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다. 그래서 1, 2차에 끝나지 않고 4차 이상의 오디션을 거치고, 때로는 후보들에게 트레이닝을 병행시키며 더 적합한 배우를 키워내는 진화된 시스템의 등장은 더 수준 높은 작품을 관객과 만나게 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 최근 오디션의 특징적인 경향은 무엇입니까.

일단 오디션 일정이 공연 시작에 앞서 상당이 빨라졌다는 점이고, 예전에는 주로 오디션을 비밀로 했다면 지금은 공개 오디션을 이슈화해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스태프들이 오디션에 참여한다는 것도 한 특징이 될 수 있습니다.

- 좋은 배우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해당 작품에 적합한 배우를 가리는 기본적인 기준이 있습니까.

배우층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중간이 없다는 겁니다. 탄탄한 조연을 찾기가 어려워요. 연출가로서는 스타성이나 발전 가능성, 무대에서 매력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되겠습니다. 음악 면에서는 적절한 음역대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의 여부가 되겠지요.

- 해외의 경우와 비교할 때 선발된 배우들이 거치는 레슨 과정도 다를 것 같습니다.

외국의 뮤지컬배우들은 대개 기본기가 다 갖춰져 있지만, 우리는 좀 다릅니다. 오디션 이후 사전 연습이나 노래, 안무 등의 개별 레슨은 필수지요. 특히 국내 초연작의 경우 사전 리딩이 필수적입니다. 그만큼 캐릭터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경우 신인급이라면 노래 부분에 더 치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