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송하나 개인전 <메멘토 모리>

꽃, 2009
평범한 꽃 그림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육감적인 느낌이다. 들여다 보았더니 꽃잎이 살덩이다.

동식물 간 이종교배로 만들어진 변종 생물이다. 어이쿠, 떨어져 다시 보니 의뭉스럽다.(<익숙한 식물>)

하기야 이종교배야말로 송하나 작가의 오랜 특기다. 2004년 개인전에서는 발이 달린 지갑과 가위, 필통과 때수건 그림을 선보였다.

(<발을 달다>) 쓰려고만 하면 사라지는 물건들이라는 뜻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1년에도 일상적 물건들을 뒤섞어 이은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의 태생은 작가의 결혼이었다. 살림을 시작하며 작가는 물건들의 '생명'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물건은 명령을 내렸고, 어떤 물건은 반항했다. 그가 뒤돌아 있는 사이 그것들은 서로 대화하거나 몸을 섞을지도 몰랐다. 이 예민한 상상이 곧 자유자재의 짜깁기로 이어졌다.

익숙한 식물, 2009
그리고 작가가 독일 유학 후 갖는 첫 개인전 <메멘토 모리>의 풍경은 한층 더 두터워졌다. 이전 작품이 평면적 교배였다면 이번 작품은 입체적 교배 같다. 이전 작품들에서 아이디어가 보였다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구성이 느껴진다. 기호들은 자리만 바꾼 것이 아니라, 그 가치까지 재해석된 채다.

꽃을 이룬 살덩이는 슈퍼마켓 전단에서 오려낸 것이다. 흔하고, 쉽게 버려지는 보잘것없는 형상인데 줄기 위에 덧붙어 눈을 끌게 됐다. 주변과 잘 어울려 제법 아름다워 보인다.

입장 바꾸기의 자극적 즐거움뿐 아니라 윤리가 있다. 흔하다고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당장 하찮아 보인다고 쓸 데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삶의 매 순간을 대입해 보면 그 뜻이 더 새삼스럽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죽음을 기억하라'다.

이 거창한 명제가 송하나 작가의 작품에서는 거북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 여기에 다다른 오래되고 일관된 과정 때문일 것이다. 짜깁기의 배경이 살림이었음을 기억하자.

작가는 자신이 직접 가진 예민함으로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삶을 '살려내' 왔다. 쌓이고 쌓인 정직함은 삶의 지혜에 가까워졌다. <메멘토 모리>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갤러리고도에서 열린다. 02-720-2223

효도관광, 2009

익숙한 식물, 2008
익숙한 식물, 2007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