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갤러리의 재발견] 기업 이미지와 전시 접목 시도, 뉴욕 레시던시 프로그램 독보적 행보

우후죽순의 기업 미술 공간 중 어떤 곳을 주목해야 할까. 두 곳을 골라 봤다.

기업의 문화예술 마케팅과 사회 공헌 사업, 미술에 대한 이해와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뚜렷한 지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공간들이다.

코리아나화장품의

"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기업 이미지와 연관되면서도 미술적 가치를 잃지 않는 전시를 기획하는 역량이 뛰어난 것 같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의 말처럼 은 미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 미술관이다. 1000여 점의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이슈를 반영하는 기획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2003년 개관 후 2006년 사립미술관으로 정식 등록했다.

코리아나미술관
전시를 훑어 보면 기업 이미지를 미술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모기업이 화장품회사인 만큼 여성과 몸을 꾸준히 테마화했다. 2004년에는 근현대 미인도를 통해 한국 미인의 원형을 찾는 <자인姿人> 전을 열었고, 2007년에는 후속작 격으로 여성에 대한 현대미술의 해석을 탐색하는 전을 마련했다.

후각의 사회문화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전, 미술 속에 나타난 피부의 개념을 전시한 전 등을 통해 신체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몸의 체험을 확장시키는 '신기관'이라는 개념을 미술로 풀어낸 전을 영국문화원과 공동 주최했고, 5월에는 현대미술에서의 예술가의 신체를 테마로 한 <예술가의 신체> 전을 열 계획이다.

이들 전시는 기업 이미지와 연관된 테마를 중심으로 하되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은 기획전마다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세미나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는 데 부지런하다.

의 또 하나의 강점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다. 이는 박물관과 함께 운영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2006년 열렸던 <이미지 극장> 전이 상징적이다. 현대미술과 연극 무대를 결합시키며 예술의 시간적, 장르적 크로스오버 가능성을 보여준 이 전시의 화두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는 애니메이션을 뉴미디어아트로 해석한 전을 열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김환기, 이중섭 등 잘 알려진 작가 이외에 미술사적으로 다시 평가할 가치가 있는 작가들을 연구, 소개하는 작업이다. 미술사 연구자들과 함께 한다는 데 더욱 의의가 있다. 지난 3일에 막을 내린 <지홍을 다시 본다>는 그 세 번째 전시. 동양적 추상화를 그린 지홍 박봉수 화백의 작품 세계를 돌아본 전시로 윤범모, 황빛나 등의 연구자가 함께 했다.

두산갤러리 뉴욕의 개관 장면
두산그룹 연강문화재단의 두산갤러리

2007년 문을 연 두산갤러리는 기업 미술 공간의 '앙팡 테리블'이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미술 공간들 중 가장 도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년 미국 뉴욕에 두산갤러리 뉴욕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의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기업의 정체성이 미술 지원 사업에도 녹아든 셈이다.

1기 레지던시 프로그램 선정 작가는 이형구, 정수진, 최우람.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국제 비엔날레와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한 경력이 있는 작가들이다. 두산갤러리 의 표현대로 "국가대표 작가들을 통해 세계에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는 것"이 사업의 초기 목적임을 알 수 있다.

기업의 미술 지원 사업이 대부분 국내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두산갤러리의 해외 사업은 한국 미술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두산갤러리 측은 앞으로 뉴욕과 서울의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해 작가들이 잠재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두산갤러리 인터뷰
"세계화된 현대미술에 맞는 실질적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지원 사업을 체계화하는 데 분주한 를 만나 진행 상황을 물었다.

김종호 디렉터
두산갤러리 뉴욕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련한 취지는.

-작년에 국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이런 작가 지원의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미술 문화가 확장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외 사업을 제안했다. 뉴욕 첼시는 국제적인 갤러리와 레지던시 스튜디오가 많은 곳이다. 한국 작가들의 식견과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곳에 갤러리와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갤러리 운영 내용은 어떻게 되나.

-개관 후 총 6회의 한국 작가 전시를 열었다. 이를 통해 현지 미술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와 내년에는 한국 작가와 현지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간 교류를 활발하게 할 예정이다. 세미나 프로그램, 현지의 다른 레지던시 스튜디오와의 협업도 고려하고 있다.

운영 인력도 중요할 텐데, 어떻게 꾸렸나.

-현재 큐레이터 2명이 상주하고 있다. 현지의 한국인 큐레이터를 채용했다. 이번 사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인력 문제다. 국내에는 해외에서 일할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현지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큐레이터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1기 작가들이 이형구, 정수진, 최우람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들인데, 굳이 이들을 선정한 이유는.

-이를테면 '국가대표' 같은 의미다. 두산갤러리 뉴욕이 국내 최초의 해외 비영리 갤러리인 만큼 먼저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미술계가 신뢰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들을 통해 한국미술이 현지에 알려지면 점점 더 젊고 잠재력이 있는 작가들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기수 작가들은 선정했나.

-올해에는 홍경택과 김인숙, 내년에는 민성식과 이주요 작가가 참여한다. 김인숙과 이주요는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이렇게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들까지 포괄할 예정이다.

두산갤러리의 미술 지원 사업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나.

-현대미술이 세계화되는 현실에 맞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서울과 뉴욕의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해 작가들을 전방위적, 지속적으로 관리해줄 생각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