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그 통제와 자유] 비, 이효리 등 뮤직비디오 도로교통법 위반 방송부적격 판정

최근 가요계는 때 아닌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단어로 고민에 빠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 비와 이효리의 뮤직비디오가 각각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KBS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는 이번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곡 <널 붙잡을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차가 없는 도로의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모습이 문제가 됐다.

이효리는 4집 타이틀곡 <치티치티 뱅뱅>의 뮤직비디오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트럭을 운전하는 장면과 도로 위를 점령하고 댄서들과 춤을 추는 장면, 버스에 앉아있지 않고 춤추는 장면 등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KBS는 '방송은 제작·편성에 있어 관계법령을 준수하고 시청자의 준법정신을 고취하며 위법행위를 고무 또는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MBC와 SBS에서는 별다른 지적 없이 심의를 통과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비와 이효리는 KBS가 지적된 장면들을 편집해 재심의를 통과했다. '도로교통법'에 대한 후유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듯 방송 심의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왜 우리 대중가요는 방송 심의에서 무사하지 못할까.

통제, 시대를 역행하는 방송 심의

"방송사마다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공개를 해달라!"

가요계에서 한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방송국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심의실에 앨범을 제출하는 일이 가수 활동의 첫 관문이다. 그러나 각 방송사의 심의에서 앨범이 통과하지 못하면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 라디오에서도 전파를 탈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반 제작자들은 되도록이면 방송사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창작을 한다. 일단 각 방송사의 심의에서 앨범(가사)이 문제없이 통과되면 뮤직비디오의 심의도 받을 수 있다. 앨범이 통과됐다고 해서 뮤직비디오도 안심할 수 없다. 비와 이효리처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방송사마다 심의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무척 헷갈린다. 그렇다고 방송사들이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수정해서 재심의를 받아야만 방송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비, '널 붙잡을 노래' 뮤직비디오
최근 KBS 심의실은 가수 비와 이효리를 비롯해 싸이와 김장훈, 유승찬 등에 '도로교통법'에 따른 위법 행위를 문제 삼았다. 싸이와 김장훈은 월드컵 응원가 <울려줘 다시 한번>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광화문 광장에 길거리 응원을 한 게 지적을 받았다.

유승찬도 <케미스트리>의 뮤직비디오에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이들 역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가요관계자들은 "선정성과 폭력성에 있어서 제재를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도로상 법규까지 지켜야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며 입을 모은다.

앨범에 있어서도 웃지 못 할 '방송 불가' 사유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듀오 노라조의 <변비>는 가사 내용 때문에 KBS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SBS에선 '방송 품위를 해친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가수 아주도 <재벌 2세>라는 곡의 가사에서 물질 만능주의에 치우쳤다며 KBS에서 방송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가수 케이윌의 <최면>은 노래 가사 중 '벙어리'라는 표현 때문에 KBS에서 반려됐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듯한 의미로 비쳐질 수 있다는 데에서다.

최근 앨범을 발매한 에반도 <너 울리게>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MBC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가사 중 '내 등 뒤에는 칼이 꽂혀 있어서...'라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또한 뮤직비디오에서 실제로 등에 칼을 꽂는 장면이 반려된 이유다. 이 곡은 KBS와 SBS에서는 심의를 통과해 관심을 끌었다.

이효리, '치티치티 뱅뱅' 뮤직비디오
이처럼 방송사의 모호한 심의 기준으로 인해 가요계의 창작활동이 위축된다면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비와 이효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방송 심의는 대중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뮤직비디오를 단순히 음악을 전달하는 영상물로 보면 되는데 상식선을 벗어난 이유로 규제한 점은 아쉽다"며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지적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현실성이 없는 잣대로 규정짓는 건 문제가 있다.

이상한 건 예술 작품에서 '바른 생활 사나이'로 그려지는 대중문화가 맞는 것일까? 건전한 가요를 만들겠다는 규제는 표현을 위축시키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고 방송 심의에 대해 비판했다.

방송심의, 대중문화의 필터링?

"지나친 자유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난 1996년 정부에 의한 음반의 사전심의는 위헌 판결을 받게 된다. 음반의 사전심의제가 폐지된 이후 음반에 대한 심의는 각 방송사의 재량에 맡겨졌다. 즉 각 방송사의 자율심의에 따라 음반의 방송 적격과 부적격의 시비가 갈리는 셈이다.

각 방송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배부되는 <방송통신심의 관련 규정>에 의거해 각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심의한다. 각 사의 심의팀에는 10명 내외의 위원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중 방송, 음반, 뮤직비디오 등을 심의하는 위원이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1~2명의 심의위원이 일차적으로 심의를 마친 후 판단이 애매한 음반과 뮤직비디오는 10명 내외의 위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거쳐 방송 적격 여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각 방송사의 심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방송통신심의 관련 규정>에 따라 음반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심의를 내리지만, 그 관련 법규의 각기 다른 해석으로 심사결과가 달라진다.

불행히도 각 방송사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구비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음주와 흡연을 하는 장면이 뮤직비디오에 비쳐졌을 때, 그 정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S의 경우 같은 음주 장면이라도 많은 술병이 노출된 장면이라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된다.

한 방송사의 심의위원은 "음반이나 뮤직비디오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부분을 반려하는 건 각 방송사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기준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한지'에 대한 이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심의한다"며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심의위원들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심의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보수적이거나 관대한 결과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방송(프로그램)심의는 먼저 심의실에서 대본과 영상을 심의한 다음 방송위원회에 넘겨져 또 한 번 심의를 받는다. 두 번에 걸쳐 검열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방송사에서 심의한 결과가 최종 판결이다. 이 때문에 뮤직비디오에 대한 심의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이 많이 나타난다. 최종심사의 결과물이 바로 방송에 송출되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각 방송사에서 한 달에 평균 15편, 일 년에 600~700편을 심의한다. 이 중 10% 내외가 방송 부적격 판결을 받는다. 음반도 하루에 10개 이상 100여 곡이 심의를 받는다. 음반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묘사, 특히 자살 등 직접적 표현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한 세상에 대해 세적이거나 부정적이고, 암울한 가사들도 심의에서 배제된다.

KBS의 한 심의위원은 "KBS는 보수적인 심의 결과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먼저 뮤직비디오는 청소년들이 많이 본다는 점과 그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스타들이 등장해 모방심리를 자극한다는 점 때문에 주의깊게 심사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심의 결과를 내린 것은 가능하면 준법정신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50~60대 시청자들의 충성도와 기대치에도 부응을 해야한다. 그러나 가수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고, 그것을 최대한 살려주는 방향으로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SBS의 한 심의위원도 "각 방송사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른 게 사실이다. 최근 음반과 뮤직비디오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창작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사들도 이 점을 감안해 주제, 장르별로 상황에 맞게 심의하고 있다"며 "다만 방송사별로 자사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 듯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방송사별로 필터링 작업의 결과가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시선을 지울 수 없다. 객관적으로 통합적인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든지 제3의 심의위원들을 확보하는 것도 천편일률적인 심의결과에 맞서는 대안이라고 하겠다.

한 음반 제작자는 "예전 사전심의가 사라진 이후 방송서의 자체심의가 대중가요의 유일한 필터링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 윤리를 위해서나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부분을 규제하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이고, 현 상황에 맞지 않는 납득할 만한 사유가 아닌 심의결과는 반대한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