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가다]개막작 <키스할 것을>, <숏!숏!숏!> 프로젝트 젊은 감독 밀어주기

올해로 11살. 10년을 넘겼지만 전주국제영화제는 여전히 젊은 영화제다. 상영작 선정 기준, 이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관이 그렇다. 무엇보다 젊은 감독들을 편애한다.

영화제의 중심지인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는 매일 인디밴드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펴진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지향하는 '젊음'이 특정 나이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험정신과 도전정신, 당대의 모든 진부하고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것에 대한 반대, 덜 세련되었더라도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지지, 그리고 젊음을 공유하는 매체이자 문화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는 모든 사람들의 속성이다.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열렸다. 이 젊은 영화의 최전선에서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을 살펴 봤다.

젊은 감독 밀어드립니다

홍보대사 송중기와 박신혜의 핸드프린팅 행사
개막작은 박진오 감독의 <키스할 것을>이었다. 선댄스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에서 단편 <런치>와 <요청>을 상영한 적이 있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역시 젊은 감독을 전폭 지원하는 전주국제영화제다웠다.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촉망 받는 신인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앞으로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뉴욕의 배우 지망생인 남과 여의 만남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며 현대사회의 고독한 풍경을 그려낸다. 감독 자신의 뉴욕 생활과 영화에 대한 갈망이 녹아 있는 듯하다. 박진오 감독은 "외롭고 소외된 인물들이 어느 순간 느끼는 설렘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또 하나의 젊은 감독 밀어주기 프로젝트는 바로 <숏!숏!숏!>이다. 젊은 감독들에게 단편 영화를 찍도록 한 후 이를 옴니버스 영화의 형태로 상영한다. <숏!숏!숏!>의 특징은 기획과 제작은 물론, 배급까지 책임지는 전천후 지원 프로젝트라는 것. 영화제 상영 후 국내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되며 해외 배급도 모색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독립영화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와 KT&G상상마당과 함께 진행한다.

올해 <숏!숏!숏>의 주인공은 <리턴>의 이규만 감독, 재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단편 <기차를 세워주세요>로 호평을 받은 한지혜 감독, <독>의 김태곤 감독이다. 극장이라는 소재와 판타지·호러라는 장르가 이들에게 공통 과제로 주어졌다.

이규만 감독은 배가 고파 자신의 기억을 먹는 인물들을 등장시킨 <허기>를 선보였다. 영화란 시간 예술이어서 관객이 극장을 나선 후에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는 데 착안했다. "죽어서 먹을 기억, 살아서 먹기 시작하는 게 노망"이라는 극중 대사는 이 설정을 삶과 죽음에 대한 은유로까지 확장시킨다.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한지혜 감독의 작품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소머리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이에 맞선 채식주의자 소년의 이야기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다. 감독은 이 신화적 모티프에 한국사회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지점들과 유머 감각을 버무렸다.

김태곤 감독의 <1000만>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감독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자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감독의 사연을 코믹하게 담았다. 1000만 관객 시대에 들어선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한국영화 문화에 대한 풍자다.

작은 영화라고요? 포부만큼은 태평양입니다!

"저희 영화 주인공은 영웅이 아닌 '루저'이기 때문에 요즘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악인은 너무 많다> 김두연 프로듀서)

"한국 공포영화 수요가 있는 동남아와 태국의 배급사에서 판권 구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어둠의 저편> 강소영 프로듀서)

개막작 '키스할 것을'
지난 1일 전주영화제작소 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는 곧 만들어질 젊은 한국영화들이 모두 모였다. 신진 감독들의 저예산 영화의 투자·제작을 활성화하는 취지로 영화산업 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전주프로젝트 프로모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은 '프로듀서 피칭'과 '다큐멘터리 피칭'. '프로듀서 피칭'에는 다섯 편의 극영화가, '다큐멘터리 피칭'에는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영화가 소개되었다. 치열한 예심을 거쳐 선발된 작품들이며 최종 선발된 작품에는 제작지원금이 수여된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작은 영화의 건강한 재생산 구조를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말했다.

작은 영화라지만 이 영화들의 포부는 결코 작지 않다. 예산 대신 기획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재기발랄한 주제와 소재, 스타일로 무장했다.

극영화 중에는 명품 가방 하나 때문에 부자들을 응징하는 사람들에게 납치된 후 스스로 살인마가 되어가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공포 스릴러물(<몬스터>), 뒷골목 생활을 청산하려는 전직 건달이 마지막으로 맡은 일 때문에 살인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겪는 내용의 하드보일드 액션 탐정물(<악인은 너무 많다>), 암 말기의 외로운 바람둥이 남자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탱고레슨을 마련하며 벌어지는 휴먼드라마 <탱고와 아파트> 등이 있다.

'다큐멘터리 피칭'의 작품들에서는 언론에서 소외된 한국사회의 모습에 주목하는 시선이 돋보였다. 김희철 감독은 1998년 판문점에서 일어난 한 장교의 자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진정>을, 류미례 감독은 4대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의 변화를 겪고 있는 팔당 주민들을 기록한 <강>을 선보였다.

숏!숏!숏!의 '1000만'
태준식 감독은 '노동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소선 여사를 주인공으로 한 <어머니>를, 이승준 감독은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을 만들고 있다. 이 영화들은 곧 일반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근심은 무엇입니까

어렵다는 소문이 무성한 한국영화의 상황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2일 열린 '한국영화 기획개발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서는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좋은 한국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논의했다.

발제를 맡은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의 최수영 PD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화 기획개발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신씨네, 명필름, 우노필름, 시네마서비스, 기획시대 등의 제작사가 붕괴한 것이 오늘날 한국영화 기획개발 경쟁력이 낮아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분산되었고 제작측 인력은 개별화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감독이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맡느라 업무가 과중되거나 작가들에 대한 낮은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현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기획개발 경쟁력 강화 방안 세미나
반면 투자사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투자사가 제작 영역까지 흡수하거나, 투자 프로젝트를 찾을 수 있는 프로젝트 마켓이 등장하는 현상이 있다. 최수영 PD는 "투자사가 기획개발 영역까지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감독, 작가, 프로듀서 등 제작 인력들이 독창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은 어떤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통로인 극장 지형에 대한 이슈도 제기되었다. 개막 다음날인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예술영화관협회가 주최한 '다양성영화 관객 어떻게 사로잡을까?' 세미나가 열렸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는 시도로 예술영화전용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특히 척박한 지역 문화 속에서 활동해 온 극장의 고민이 깊었다.

예술영화전용관들에 공통된 문제점은 관객의 평균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젊은 관객들이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는 "세대가 변했다는 것이 실감 난다.극장은 더 이상 젊은 관객들에게 다양성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장들은 자체적인 커뮤니티와 행사들을 마련함으로써 이런 위기에 대처해 왔다. 대구 동성아트홀의 관객들은 '동성아트홀릭'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고 극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서울 하이퍼텍나다와 시네코드선재를 운영하고 있는 영화사진진은 다큐멘터리영화 상영과 관련 강연을 묶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프랑스문화원에서 수급한 프랑스영화를 상영하는 '시네프랑스', 인디포럼과 함께 하는 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인 '월례비행' 등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대는 이들 극장의 문화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봉 첫 주 유효한 스코어가 나오지 않으면 영화를 내리는 멀티플렉스식 배급 방식이 보편화되었고 관객 역시 이에 적응한 것이다.

영화의 거리에서 열린 인디밴드 '옥상달빛'의 공연
CGV의 경우 무비꼴라주라는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을 갖추어 기존 예술영화전용관 관객을 상당수 흡수한 상태다. CGV 무비꼴라주는 자체적인 기획전, 관객과의 대화, 문화 관련 강연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CGV 다양성영화팀의 이원재 팀장은 "예술영화전용관과 멀티플렉스 극장 간 상생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지적하며 무비꼴라주가 "다양성 영화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예술영화전용관은 단지 영화를 관람하는 창구일 뿐 아니라 관객들이 모이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동성아트홀의 남태우 사무국장은 "영화가 공공의 문화라는 인식으로 예술영화전용관을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가 일회용 소비품이 아닌 곳

일상 속에서 영화는 일회용 소비품이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며칠 지내다보면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일탈이고,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고리이며 누군가에게는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성찰하는 중요한 모티프라는 것이 새삼 실감난다. 그러니까 영화가 문화라는 것 말이다.

영화의 거장을 초청, 관객과 예비 영화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의 주인공 중 한 명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11년 전 첫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선보였던 그는 2003년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하고, 2004년에는 심사위원을 맡는 등 영화제와 계속 연을 맺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그 역시 전주국제영화제가 편애한 젊은 감독 출신인 셈이다.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후 봉준호 감독은 "반짝거리는 수백 개의 눈들과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누니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영화제는 영화를 구실로 사람들의 눈을 빛나게 하고, 사람들을 회춘시키는 사건이다. 실험정신과 도전정신, 당대의 모든 진부하고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것에 대한 반대, 덜 세련되었더라도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지지 같은 젊은 혹은 문화의 속성이 살아 있는 곳. 올해에도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렇게 열렸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