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맛있는 진화] 단순한 조리법 다양한 변형 가능 세계인 입맛 공략나서

"한 나라의 음식을 바깥에 소개한다는 것은 단일 음식 한 가지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아무리 외국인들이 찬사를 보낸다고 해도 지금 한국인들이 즐기는 음식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도 없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프렌치 론드리의 수석 조리장을 지낸 재미교포 코리 리는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하며 한식 세계화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은 전통과 퓨전, 고급과 저급을 가르려는 소모적인 논쟁을 일거에 잠재웠다.

한식이 해외로 진출할 때 한국인들의 손을 가장 많이 탄 음식이 1순위여야 한다는 사실은 두 말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주자는 누가 뭐래도 떡볶이다. 지난 해 정부는 한국쌀식품가공협회와 함께 떡볶이 세계화를 선포했다.

월드 스타 후보에 오르기 무섭게 떡볶이는 각종 스캔들에 시달려야 했다. '근본 없는 놈'이라는 정통성 논란부터 노점에서 지저분하게 만들어진다는 위생 논란, 매운 맛과 찐득이는 식감이 외국인 입맛에 적절치 않다는 인신공격(?)까지. 가장 사랑 받는 음식에서 졸지에 못 미더운 자식이 된 떡볶이, 아니 토포키(topokki)에 대한 편애 가득한 변명.

한국 문화의 블랙홀, 떡볶이

초콜릿 떡볶이 <사진 제공= 떡볶이, 한국을 말하다>
출처도 분명치 않은 천민이라는 말이 서러웠던지 떡볶이 연구소에서 지난 1년간 꾸준히 진행한 것은 역사 자료 속에서 떡볶이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 그 결과 14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떡볶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자료는 19세기 말에 쓰인 <시의전서>의 3줄이 전부였습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고 다른 찜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가루즙을 하지 않는다고만 되어 있지요. 그런데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에서 떡볶이의 한자 이름인 병자(餠炙)를 찾아내는 의외의 수확을 올렸습니다. 병자로 다시 한번 검색하다 보니 1469년 <식료찬요>라는 식이요법서에 나와 있더군요. 고기와 고추를 넣고 만든 음식이고 제사상에도 올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떡 병'자에 '구울 자'. 구운 떡으로 불리던 시절, 떡볶이의 주무대는 왕실이었다. 조선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 승정원 일기에는 치아가 워낙 약해 나이 든 어머니보다 음식을 더 못 씹었던 영조가 유달리 떡볶이를, 아니 병자를 아끼고 사랑했다고 기록돼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시의전서>, <주식방문>, <주식시의> 등 여러 요리책에 본격적으로 떡볶이 조리법들이 소개된다. 지난 5월7일 열린 제2회 떡볶이 페스티벌에서는 이 사료들을 근거로 당시의 떡볶이를 재현해 놓았는데 모두 지금의 궁중 떡볶이와 비슷한 모양이되 상당히 공 들여 만드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흰 떡을 잘 만들어 닷 푼 길이씩 잘라 네 쪽씩 내어 솥을 달구어 기름을 많이 바르고 소고기를 가늘게 두드려 떡 썬 것과 같이 넣어 볶는다. 송이와 도라지를 납작하게 썰고 석이도 채치고, 계란을 부쳐 채치고, 숙주나물을 기름장에 주물러 한데 넣고 질지도 되지도 않게 소금과 장을 맞춘다. 생강, 파, 후추, 잣가루를 넣고 김을 구워 부수어 넣고 애호박, 오이, 갖은 양념을 다 넣는다 – 주식시의 中」

토마토소스 떡볶이와 리코타 치즈소스 두부크로켓
떡볶이가 왕실을 벗어나 지금 우리가 먹는 식으로 매운 국물에 질펀하게 젖은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마복림 할머니가 젊었을 때 집안 행사에 갔다가 자장면에 떡을 빠뜨리면서 영감을 얻었다는 현대식 떡볶이의 탄생 설화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밀가루 떡과 고추장으로 만든 신당동 떡볶이가 떡볶이 대중화의 시발점인 것은 확실하다.

그 후로 장장 60년간 이어진 떡볶이와 한국인의 인연은 애정을 넘어서 애증에 가깝다. 가격, 접근성, 제한 연령이라는 벽을 완벽히 허문 이 '쉬운 음식'은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돈 없는 청년, 추억에 젖은 중년, 향수 어린 맛을 찾아 회귀하는 장년에 이르기까지, 마치 만만한 애인처럼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해 줬다.

지배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 그 지배는 완성된다고 했던가. 떡볶이 국물에 잠식된 우리의 정신은 외국인들의 시선을 통해서야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떡볶이 마니아를 자처하는 엘카코리아의 CEO 크리스토퍼 우드는 떡볶이를 200%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이렇게 썼다.

"떡볶이 집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 집으로 골라라. 자동차와 인파의 열기가 길거리 음식의 흥취를 더욱 돋우어 줄 것이다. 아줌마가 비닐 씌운 접시에 담아 줄 테니 절대로 놀라지 마라. 설거지의 수고를 덜기 위한 기막힌 발상이다. 떡볶이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기다란 떡이 쩍쩍 달라 붙어도 당황하지 마라. 100% 쌀가루로 만든 떡인데다가 3~4시간 동안 졸여진 것이니 자연스런 현상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술이 화끈거릴 것이다. 꿀꺽 삼키면 그 열기는 식도를 지나 위로 연결된다. 매워도 기침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 열기의 관통을 느끼며 꿀꺽 삼켜라. 도저히 못 참겠으면 아줌마에게 오뎅 국물이나 물을 달라고 하라. 오뎅과 삶은 달걀을 함께 버무리면 훨씬 맛있다. 오뎅 꼬챙이는 재활용이니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 것. 아줌마한테 몹시 혼날 수 있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입맛, 선호하는 음식 궁합, 길거리 물가, 위생 관념 현황, 소음에 대처하는 자세, 노점상 주인의 위상 및 아줌마라는 명칭의 쓰임새, 손님과 주인의 관계도 등등, 떡볶이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화를 빨아 들이고 있는 블랙홀이다.

떡볶이 레스토랑 베거백의 미스터백 떡볶이
국민 간식, 요리로 부활하다

떡볶이 세계화를 앞두고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위생이었다. 지금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세계화의 조건이 다 갖춰진 것은 아니다. 떡볶이는 '노점'이라는 태생 상의 약점으로 인해 유달리 위생 문제에 취약했다.

한 유명한 미식 블로거는 옛날 떡볶이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떡볶이 계의 지존'으로 불리는 홍대앞 조폭 떡볶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핵심은 역시나 위생적이지 않다는 것. 맛은 둘째 치고라도 식재료를 아무 데나 방치한 것이나 조미료를 인정사정 없이 들이 붓는 것은 어떻게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끼리 즐길 때에야 '조미료 맛에 먹는다'는 농담도 할 수 있지만 세계 진출을 앞두고는 위생과 건강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고 각국의 민족 수만큼 다양한 취향에 맞춘 변신 능력도 필수다.

세계화를 목표로 지난 해 문을 연 떡볶이 레스토랑 베거백은 간식이 아닌 요리로서의 떡볶이를 표방한다. 만들어 놓은 떡볶이를 퍼주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바로바로 만들며 100% 국내산 쌀만 사용한다. 조선 시대 궁중 음식으로 먹던 떡볶이의 격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메뉴는 그야말로 변신을 위한 변신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쫀득탕수육떡볶이
떡의 종류만 7가지로, 비엔나 소시지 모양의 비엔나떡, 가운데 구멍이 뚫린 피리떡, 치즈를 넣은 치즈떡, 파스타처럼 돌돌 말아먹을 수 있는 롱떡, 완벽한 공 모양의 볼 떡 등이 있다. 소스는 고추장 소스, 크림 소스, 토마토 소스, 오리엔탈 소스가 있는데 또 크림 소스 안에서 고추장 크림, 흑임자 크림, 날치알 크림 등으로 나눠져 종류는 총 20여 가지에 이른다.

"외국인들은 치아에 달라붙는 떡의 쫄깃한 식감과 너무 자극적인 매운 맛을 꺼려한다는 통계가 있죠. 가운데 구멍이 뚫린 피리떡이나 기름에 굴려 표면을 바삭하게 만든 롱떡은 낯선 식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익숙한 크림 소스, 토마토 소스 등을 개발해 더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변신은 맛에만 한정되지 않아, 카페처럼 모던한 인테리어에서 샐러드와 와인을 곁들이고, 밀전병에 떡볶이를 싸서 사워 크림을 얹어 먹는 등 먹는 방식과 장소에도 변화를 주었다.

떡볶이 요리 경연대회에는 한층 실험적인(?) 작품들이 선보여졌다. 수프처럼 떠 먹는 수프 떡볶이, 초콜릿과 아몬드를 넣은 초콜릿 떡볶이, 레드 와인으로 졸인 와인 떡볶이 등이 참신함을 인정 받아 수상했다.

도저히 맛이 상상이 가지 않는 초콜릿 떡볶이의 레시피를 살짝 소개하면, 생크림을 끓여 초콜릿을 부수어 넣고 여기에 잘게 부순 아몬드, 땅콩, 쿠앤크 아이스크림을 넣어 녹인다. 여기에 튀김 옷을 입혀 튀긴 바나나와 고구마, 삶은 떡을 넣고 잠깐 끓이면 완성. 시판되지 않아 맛은 알 수 없지만 맛도 심사 기준에 포함되니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비빔떡볶이
"떡볶이의 장점은 조리법이 단순하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노점 문화가 활성화 돼 있고 자극적인 맛에 거부감이 없는 동남아는 동남아대로, 매운 맛에 익숙지 않고 레스토랑 문화가 발달한 서구는 서구대로 둘 다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세계화를 앞두고 다양한 변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의 변화다. 위생과 영양이라는 음식의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랑스런 한국 문화의 정수로서 역할하기 힘들다. 인천에서 옛날식 국물 떡볶이와 수제 튀김으로 이름을 날리던 미미네 떡볶이는 최근 홍대앞으로 옮겨와 장사를 시작했다.

화려한 퓨전도 아니고 그저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떡볶이지만 칼칼하면서 달콤한 국물과 말랑한 떡은 떡볶이로 유명한 홍대앞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맛이다. 주인은 맛의 비결에 대해 고추장 배합 비율보다는 식재료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가게가 쉬는 날은 떡 공장이 쉬는 날이에요. 당일 뽑은 떡을 쓰지 않으면 이런 말랑말랑함은 나올 수 없어요."

소금은 간수를 뺀 신안 소금을 볶아서 만들고 고추장은 가게에서 직접 담근 것을 쓴다. 수돗물을 쓰면 비린 맛이 난다고 정수기 물을 사용하고 신선한 파의 흰 부분만 잘라서 넣는다. 조미료의 양은 50인분에 1½ 큰술 정도.

"조미료를 안 쓸 수는 없어요. 그럼 맛이 안 나거든요. 대신 정말 적게 넣으려고 노력해요. 떡볶이 한 접시를 드신 손님들은 조미료를 반 꼬집도 안 되게 드신 거에요."

먹는 사람의 몸을 생각하며 고집을 부리는 주인은 떡을 닷푼 길이로 자르고 질지도 되지도 않게 숙주 나물을 무치는 조선시대의 요리사와 닮은 면이 있다. 세계로 진출하는 떡볶이가 고급 레스토랑에 올라갈지 노점에서 팔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있든 이런 고집도 같이 나가줘야 하지 않을까?

도움말: 떡볶이 연구소 이상효 소장
참고자료: <떡볶이, 한국을 말하다>, 서울미디어그룹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