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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문화 콘텐츠에 역사와 맵시를 수놓다

[한복의 스토리텔링] 사극 열풍 타고 TV 스크린 누비며, 패션쇼 통해 다양한 모습 선보여
입는 문화 넘어 보고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문화로 계승 발전 시켜야
  • 드라마 '동이'
한복이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 사극 열풍을 타고 TV와 스크린을 수놓는가 하면, 패션쇼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부각되는 것은 한복의 문화 콘텐츠적 가치다. 전통으로서의 가치와 옷의 실용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적으로 응용하기에도 적합하다.

명절에 입는 옛 옷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 문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한복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한복, 영역과 장르를 넘어 대중에게 다가서다

한복이 대중과 성큼 가까워진 것은 TV를 통해서다. 지난해 하반기 인기를 끈 <선덕여왕>에 이어 올해에도 <추노>, <제중원>, <거상 김만덕>, <명가>, <동이> 등의 사극이 방영되었거나 방영중이다. 브라운관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양각색의 한복이 저마다 맵시를 뽐내는 무대가 되었다.

  • 영화 '방자전'의 몽룡 의상 스케치
최근 사극 속 한복은 단지 시대적 배경을 알리는 기능만 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되고, 입은 이와 상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다. 예를 들면 <선덕여왕>의 의상은 인물들의 성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모양과 색을 컨셉트로 제작되었다.

덕만공주는 매니시한 라인의 청색 톤 의상을 입어 씩씩한 성격을 부각시켰고, 천명공주는 아기한 장식이 달린 파스텔톤 의상으로 여성스러움을 드러냈다. 남색, 짙은 보라색의 화려하고 진중한 미실의 의상은 그녀의 카리스마를 표현했다.

김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제작한 드라마 <황진이>의 의상은 기녀 문화를 재조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의상에 대해 연구한 학술 논문이 있을 정도다.

성경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의 복식과 색채 연구>에서 "황진이의 복식은 전통 한복의 아름다운 실루엣은 유지하되 과감한 색채와 현대적 감각의 직물로 황진이를 현대의 인물로 재탄생"시켰으며 "복식 자체가 무언의 대사로, 그녀의 삶과 심리를 탁월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과 역사, 그리고 디자이너의 해석과 상상력이 적절히 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성경희의 분석에 따르면 황진이의 저고리에 그려진 매화 문양은 황진이의 강인함과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여린 성품을 동시에 드러낸다.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봄소식을 알려주지만 부드럽고 섬세한 꽃잎을 지닌" 양면적인 꽃이기 때문이다.

  • 방자 의상 스케치
황진이가 수련 시절 입는 의상의 특징은 짧은 치마 밑으로 속옷이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역사를 고증한 것인 동시에 인물의 성격을 설명한 것이다. 18세기 기녀들은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풍기기 위해 일부러 치마 밑으로 단속곳을 살짝 드러냈다. 드라마 속 황진이는 이 의상을 발랄한 인상으로 소화했다.

황진이가 입는 춤을 출 때 입는 거들치마 역시 조선시대의 원형과는 달리 여러 면으로 분할되어 있어 화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보여졌다.

한복의 무대는 영역과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이달 초에는 경기도 양주시 연화사에서 이순화 한복 디자이너의 한복 패션쇼가 열렸다. 뒷마당 배나무 아래 런웨이가 꾸며져, 사찰의 정경과 어우러진 것이 이번 패션쇼의 특징이었다.

이처럼 단지 한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컨셉트를 내세우는 것이 최근 한복 패션쇼의 경향이다. 이순화 한복 디자이너는 작년 11월에는 <오천 년 역사는 흐른다>는 제목의 디너 패션쇼에서 단군에서 명성황후까지 역사적 인물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올해 초 명성황후를 모티프로 한 패션쇼를 열었으며, 김혜순 디자이너는 작년 가을 드라마 <황진이>의 의상을 다시 런웨이에 올렸다. 이 무대에서는 모델이 워킹 대신 기녀의 춤사위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런 패션쇼 구성은 한복이 춤과 자태, 역사를 담은 옷임을 알린다.

  • 춘향 의상 스케치
이인영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 제목은 <인생>으로 돌잔치에서부터 결혼식, 장례식 등 한복을 입는 인생의 순간들을 줄거리로 한다.

한복 디자이너들과 해외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도 눈에 띈다. 김혜순 한복 디자이너는 작년 펜디의 바게트백에 한복의 디테일을 가미한 '황진이의 바게트백'을 만들었고, 이효재 한복디자이너는 일본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총괄 디자이너와 공동 작업한 옷과 가방을 전시했다. 한복의 문양과 디테일이 해외 패션계에도 영감을 주는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도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세계를 잇는 한복의 감성에 주목했다. 한복 디자이너의 작품을 영화제의 얼굴인 공식포스터로 채택한 것이다. 이영애 한복 디자이너의 작품인 <이야기 속으로>를 바탕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최순대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이 포스터에는 한복의 다양한 색과 문양, 소재의 질감이 어울렸다. 한복의 특성을 디자인적 요소로 응용한 것이다.

보고,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한복 문화

한복이 입는 문화를 넘어 보고,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문화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드라마 '선덕여왕'
지난달 10일 한복문화학회는 <문화 콘텐츠로서 한복>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건국대학교 김기덕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한복의 문화 콘텐츠적 가치를 "사람과의 연관성"에서 찾았다. "장르로 접근해도, 매체로 접근해도 한복은 옷이기 때문에 '사람'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매혹적인 이야기는 매혹적인 인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복은 인물의 형성을 돕고 입체감과 깊이를 부여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안동대학교 유동환 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복이 오감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옷이라는 점을 꼽았다. 고유의 고운 색과 특유한 향이 있으며 삼베, 적삼 등의 소재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복을 갖추어 입는 것은 다른 어떤 옷을 입는 것과도 다른 촉각적 체험이다. 유동환 교수는 이런 특성을 잘 살릴 때 한복은 다양한 감성과 상징, 지식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콘텐츠 의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복산업마케팅연구소 박현주 소장은 한복의 생활 문화적 측면에 주목했다. <대장금>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화려한 스펙터클보다 오히려 아기한 생활 문화 때문이었다. 한복의 진가는 그 안에 배어 있는 삶의 방식과 시대상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데서 발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전통을 재해석한 사극들과 함께 영상의 구성 요소로서 한복이 보여지는 방식도 진화했다. 박현주 소장은 이들 사극의 다양한 접근이 "한복이 촌스럽고 불편하다는 젊은 세대의 고정 관념을 깨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 드라마 '추노'
그동안의 사극들은 한복 디자이너들에게 한복의 영상화 가능성을 고민하는 실험실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대장금>, <이산>, <동이> 등을 연출한 이병훈 PD는 인물을 주로 상반신 앵글로 잡는데, 이 경우에는 저고리의 라인, 깃과 동정 등의 디테일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촬영 장비가 디지털화되면서 화면에 잘 나오는 새로운 색들이 개발되기도 했다. 최근 눈에 띄는 사극 의상들은 이런 노하우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문화 콘텐츠로서의 한복의 또다른 자산은 인문학이다. 한복은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다. 예를 들면 <선덕여왕>의 고급스러운 비단 의상들은 보기에 근사하도록 창작된 것만은 아니다. 비단은 당시 신라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다.

따라서 한복의 문화 콘텐츠화에는 역사, 문화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박현주 소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원형 창작소재 개발 사업 같은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산업과 체계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까지 한복의 문화 콘텐츠화는 몇몇 스타 한복 디자이너들이 이끌어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한복을 비롯해 한식, 한지, 한옥, 국악 등의 전통문화 콘텐츠의 생활화와 산업화를 꾀하는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스타일' 사업의 방향성 역시 국가 이미지 홍보를 넘어 관련 학술, 산업 진흥에 맞춰져야 한다. 박현주 소장은 "한복의 브랜드화와 인력 육성을 지원한다는 원래 취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한복 문화가 지속되고 콘텐츠 산업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복, 시장의 위기를 넘어 문화 콘텐츠로 꽃필까

한복계가 문화 콘텐츠 산업과 만난 배경에는 사실 한복 시장의 위기가 있다. 드라마와 영화 속 한복은 점점 아름다워지지만, 정작 한복을 사입는 고객은 거의 없다. 한복 관련 종사자들과 한복 문화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복의 문화 콘텐츠화는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치파오와 기모노, 아오자이 등 아시아의 여러 전통 의상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들 의상이 모티프가 된 문화 콘텐츠들은 다시 이들 의상의 실용화와 대중화로 이어졌다.

이 거대한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인력과 영역 간 융복합이 요구된다. 한복 디자이너도 인문학과 경영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유동환 교수는 "한복을 넘어 한복의 이미지와 이야기, 감동을 담는 것이 한복 문화 콘텐츠"라고 말했다.

전통과 상상력, 위기와 가능성 사이에서 지금 한복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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