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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패러디

[패러디의 미학] 시대와 발맞춘 풍자와 해학, 드라마·영화·문학 등 다양한 장르서 재탄생
  • SBS '인생은 아름다워'
얼마 전 김수현 작가의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패러디(parody)'를 보는 듯한 한 장면이 나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42년 동안 드라마 작가로 이름을 날린 김 작가가 자신의 드라마 속에서 패러디를 감행해 짧은 여운을 줬다. '문제'가 된 장면은 극중 부연주(남상미)와 양호섭(이상윤)이 나눈 대화. 오믈렛을 만들어 달라는 호섭에게 연주가 채소를 손질해 달라는 주문을 하자, 호섭은 짧게 "예, 셰프!"라며 웃어 보였다.

이 장면이 유독 화제가 된 것은 김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에 "덮어놓고 아무 때나 악을 쓰는 셰프가 미친 놈 같아서, 셰프한테 당하는 이들 보는 게 불편하고 화가 나서 볼 수가 없다"며 MBC 드라마 <파스타>를 꼬집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트위터 속 글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예, 셰프!"라는 짧은 외침을 들음과 동시에 '피식'하는 웃음을 지었으리라. 김 작가 본인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이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패러디의 순기능을 경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패러디는 대중문화와 더불어 여러 장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패러디는 어떻게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대중문화 속 패러디의 변화

  •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
패러디의 개념은 문학 작품의 한 형식으로서,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한 그런 작품을 말한다. 패러디 속에는 익살과 풍자가 적절하게 조합돼 야유, 장난, 조소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패러디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 작품에서 기원하지만, 최근에는 대중문화와 밀접하게 방향을 함께 하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패러디의 묘미를 살렸다는 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김 작가가 은근한 패러디로 대중에게 풍자적 조소를 날렸다면, 얼마 전 종영한 KBS <부자의 탄생>의 배우 이시영은 '할리우드의 악동' 패리스 힐튼을 직접적으로 패러디해 이슈가 됐다.

극중 부태희 역할로 재벌가 딸을 연기한 그는, 패리스 힐튼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패러디함과 동시에 재벌가의 이중성 등을 비틀면서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가상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패러디의 익살이 표출됐다.

패러디가 대중미디어와 만나 뿜어내는 절정은 광고에서 많이 보여진다. 케이블 채널 tvN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의 무미건조한 내레이션이 각종 TV CF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를 외치던 성우 서혜정 씨는 유제품, 치킨, 학습지 등의 CF 속에서 딱딱한 어조로 광고 문구를 읊조리며 소비자의 귀를 즐겁게 한다.

(주)하이마트는 영화 <과속스캔들>의 주인공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등 세 명을 모조리 출연시키는 광고를 냈고, 삼성증권의 자산관리 브랜드(POP)도 KBS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 출연진을 모두 섭외해 실제 방송을 연상케하는 패러디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캐주얼 브랜드 BSX도 아이돌그룹 빅뱅을 모델로 해 영화 <스텝업 2>의 첫 장면을 패러디했다. 빅뱅이 지하철에서 펼치는 댄스는 영화 속 실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런 광고의 패러디 기법은 낯 익은 콘텍스트를 광고텍스트에 도입해 상품을 친숙하게 만드는 이미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패러디가 인터넷과 조우하면서 그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 패러디가 합성사진을 통해 풍자적 코드를 내보이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가수 이효리의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통해 재탄생됐다.

'지하철 효리춤'이라는 이 사진은 이효리의 4집 타이틀곡 <치티치티 뱅뱅>의 춤 동작을 패러디한 것으로 급속도로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이 뿐만 아니라 MBC 사극 <동이>의 출연진이 '감찰 미녀 삼총사'라는 이름으로 영화 <미녀 삼총사>의 포스터로 재연됐다. 트렌드를 이끄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합성사진을 통해 더욱 친근한 대상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될 때 합성사진을 통한 패러디는 더욱 빛을 발한다. 최근 이른바 '경희대 패륜녀' 사건이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경희대 패륜녀' 사건은 경희대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는 미화원 아주머니께 욕설을 했다는 내용이다.

'경희대 패륜녀'에 대한 패러디로 경희대생을 구별하는 '경희우유' 사진까지 등장해 비난하고 나섰다. 이는 보는 사람에게 단순히 익살적 조소를 주는 것을 뛰어넘어 사회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패러디와 인터넷의 만남은 대중을 적극적으로 패러디 문화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의 장르로 봐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학작품 속 패러디의 진중함

<현대시와 패러디>(김준오, 현대미학사)에선 "패러디의 역사는 문학사만큼 깊다. 패러디의 역사는 패러디 개념이 끊임없이 수정되는 역사다. 말하자면 패러디 개념은 문학사의 각 단계마다 재정의되는 시대성을 띤다"고 했다.

현대 문학에서 패러디는 고전 문학을 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김영하의 소설 <아랑은 왜>는 오래 전부터 여러 형태로 전해 내려온 '아랑전설'을 파헤치면서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설(說) 중에서 어떤 전설을 바탕으로 현대화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아랑전설'을 패러디해 현 시대에 맞게 캐릭터를 고치고 모으는 과정에서 작가의 고민이 밀도 있게 드러나기도 한다. 김영하는 '아랑전설'의 패러디를 통해 현재에서 과거를 역추적하는 긴장감도 불어넣었다.

현대시에서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여러 시인들에 의해서 패러디됐다. 장경린의 <김춘수의 꽃>, 장정일의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 등으로 재창조됐다. 김춘수가 꽃을 현상적 사물로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존재로 표현했다면, 이를 패러디한 작품들은 꽃을 다른 의미로 접근했다.

  • 이효리 패러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나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장경린의 <김춘수의 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물질만능에 따른 인간관계 등 현 세태를 풍자했고, 장정일의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는 문명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찰했다.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에선 언어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픈 열망을 드러냈다.

나와 섹스하기 전에는
그녀는 다만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 섹스를 하고 난 후
그녀는 더 이상 꽃인 체하지 않는
이자(利子)가 되었다.

내가 그녀와 섹스를 한 것처럼
세일즈맨이든 경찰이든 꽃이든 망치든 컴퓨터든
무엇이든 내게 와서
나의 떨리는 가슴에 온몸을 비벼다오
그와 한 몸이 되어 이자가 되고 싶다.
나도 그로부터 자유로운 이자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한 송이의 이자가 되고 싶다
나는 너의 이자가 되고 싶다
너는 나의 이자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이자가 되고 싶다.
장경린의 <김춘수의 꽃>

내가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불러다오
그에게도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장정일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현대문학과 패러디>(신익호, 제이앤씨)에선 "패러디는 역사적, 사회적 문맥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원 텍스트가 있더라도 그 텍스트가 상황에 따라 역사적 현실과 의미가 바뀐다는 것이다.

현대시에서 패러디의 양상을 살펴보면, 정지용의 <유리창1>과 이가림의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최두석의 <성에꽃>과 문정희의 <성에꽃>, 김소월의 <왕십리>와 박목월의 <왕십리> 등이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다른 어조와 색감으로 변화해 표현했다.

전진우, 김융, 신경숙 등 작가들도 패러디를 통해 전통 시학에 대한 도전을 펼쳤다. 이들은 앞선 시대의 작품에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며 패러디를 사용했다. 전진우의 소설 <서울, 1986년 여름>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패러디한 것으로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삶에 대한 비판이 서려있다.

김융의 <나는 실천한다. 내가 책에서 읽은 것을>은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패러디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보는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꼬집었다. 신경숙은 기형도의 시 <빈집>을 토대로 구체화된 캐릭터를 설정해 서사적 맥락을 확대시켰다.

신경숙은 글의 서두에 기형도의 <빈집>을 제시했고, 중간 부분에는 기형도의 시작 메모를 고쳐 인용하는 등 시를 소설로 연장하는 산문적 패러디를 완성했다. 이제 패러디된 문학 작품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패러디한 작품이 원본과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를 볼 것이 아니라 '작가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다시 쓰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영화와 미술 속 패러디의 재해석

영화는 패러디하면 떠오르는 장르로 꼽힌다. 할리우드 영화 <롱풀리 어큐즈드>나 <무서운 영화> 등은 이미 알려진 유명 영화들의 히트 장면을 패러디해 패러디 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다. 국내에서도 장규성 감독이 영화 <재밌는 영화>를 만들며 무려 33편의 한국 영화를 패러디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영화들은 일부 명장면들을 차용해 만들어져 대중에게 신선함을 제공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6월 3일 개봉될 영화 <방자전>은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가 어떻게 재해석 되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방자전>은 고전 <춘향전>의 패러디 격으로,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방자(김주혁)가 춘향(조여정)에게 한 눈에 반해 이몽룡과 삼각관계에 놓인다는 설정이다. 방자가 자신을 홀대하는 몽룡의 태도에 반감을 품고 춘향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춘향 또한 방자에게 마음을 열어 정을 통하게 된다. 그러나 신분상승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는 춘향과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도 출세를 위해 전략을 펼치는 몽룡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방자전>은 <춘향전>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원작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예고하며 현 세대와 다르지 않은 비판과 풍자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전 속에 현 시대의 모습들을 투영해 비판적 시선으로 패러디를 감행한 셈이다.

<방자전>의 김대우 감독은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하 스캔들)를 연출하기도 했다. <스캔들>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패러디한 영화. 해외의 작품을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풀이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특히 국경과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보여주는 결말은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패러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김 감독은 패러디와 묘한 인연을 이어가며 영화에 새로운 해석법을 불어넣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도 패러디를 이용한 작가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현대미술의 대가로 손꼽히는 남미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1932~)와 북미 출신의 화가 앤디 워홀(1928~1987)은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패러디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했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자리자'를 '뚱뚱한 모자리자'로 패러디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고전명작을 빌려와 특유의 부풀려진 인물상으로 변모시키는 패러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보테로는 작품의 패러디를 통해 익살과 해학을 담으며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속에는 비판의식이 서려있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다빈치, 라파엘, 고야, 고야, 루벤스, 뒤샹, 피카소 등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뚱뚱하면서 멍한 표정을 하며 세상을 바라본다. 전문가들은 보테르의 작품을 두고 단순히 가볍고 재미있는 유머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앤디 워홀도 보테로 만큼이나 반항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패러디하는 데 동참했다. 그는 미국 문화의 상징인 마릴린 먼로와 코카콜라를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써 대중문화에 대한 고찰과 대량소비사회로의 불안감을 작품에 반영했다. 현대미술의 패러디는 문학작품과는 다르게 대중에게 익살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며 친숙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참고자료: <패러디와 문화>(한양대학교 출판부), <현대문학과 패러디>(제이앤씨), <패러디의 시학>(문학세계사), <현대시와 패러디>(현대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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