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의 생존과 변주] 영화, 연극, 무용서 시대상 반영하며 진화 거듭

영화 '방자전'
한국에서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는 이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에로티시즘은 성인들조차도 숨을 죽이고 침을 삼키며 음미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에로티시즘은 이미 일상 속에 만연해 있다. 하드코어 포르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금, 에로티시즘이라는 말은 심지어 로맨틱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달라진 에로티시즘의 위상은 극장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때 <투 문 정션>, <와일드 오키드>, <레드 슈 다이어리> 등 에로티시즘 영화를 대표했던 '잘만 킹'의 후배들은 이제 다양한 장르에서 에로티시즘을 변주하며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그 결과 당당한 에로티시즘은 이제 칸을 누비고, 박스오피스 수위를 다툰다.

금기에서 벗어난 에로티시즘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 존재할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에로티시즘의 속성은 뭘까. 예술과 외설,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존재하는 에로티시즘의 뒤를 밟아본다.

억누르면 더 커진다

영화 '음란서생'
이제는 사극에서조차 에로티시즘이 트렌드가 될 정도로 관대한 사회가 됐지만, 그럼에도 에로티시즘은 여전히 '금기'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린다. 지난해 개봉된 <박쥐>에서는 흡혈귀가 된 신부와 유부녀의 금지된 사랑이 농밀하게 그려졌다. 50년 전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를 리메이크해 올해 칸에 입성한 <하녀>는 빈부 격차가 극도로 커진 오늘날의 현실에 초점을 맞춰 주인-하녀의 노골적인 계급 갈등을 다뤘다.

한국에서 에로티시즘이 금기를 호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거쳐온 역사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서구사회는 대개 예술의 손을 들어줬지만, 한국에서 에로티시즘은 아직까지 문화 담론이 아니라 법리적 해석 대상이었다.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작품들에 사회는 오랫동안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철퇴를 내렸다.

그런 인식의 배경에는 한국영화의 한 경향이었던 에로영화가 있다. 1980년대 등장한 <애마부인>이나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뽕> 등 에로영화들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에 핑크색 선입견을 집어넣는 데 일조했다.

이 시기에 에로티시즘이 유독 빈번하게 나타난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억압이 강했던 당시, 민심은 억압된 욕구를 표출하기 위해 이런 원초적 본능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또 지금처럼 사회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던 그 시절, 에로티시즘은 검열의 눈을 피하기 위한 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1970년대 초부터 1980년 중반까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8년 <가루지기>와 <쌍화점>, <미인도> 같은 에로티시즘 영화가 잇따라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보일 듯 말 듯' 찍는 촬영법이나 몸에 흐르는 땀을 클로즈업하는 에로티시즘 영화의 전형적인 법칙들이 사극의 형태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이 해엔 심지어 서울독립영화제의 세미나 주제도 '섹스 이스 시네마'였다. 1980년대의 에로티시즘이 정치적 억압에 따른 결과였다면 이 해의 에로티시즘은 그에 덧붙여 불황의 그늘에서 자라난 현상인 셈이다.

영화 '쌍화점'
에로티시즘의 새로운 경향, '에로 사극'

최근 영화계의 흥미로운 화제는 <방자전>을 둘러싼 입방아들이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은 개봉 이틀 만에 27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 때문이 아니다.

극 속에서 춘향이 방자를 품고 또 다시 몽룡에게 향한다는 설정 때문에 춘향제를 주관하는 '춘향문화선양회'로부터 영화 상영 중지 요청을 받은 것. 이번 해프닝은 그만큼 <방자전>의 각색과 인물들의 노출이 파격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사극에서 에로티시즘의 활용은 이미 <어우동>, <뽕>, <변강쇠> 등 1980년대 영화들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에로 사극들은 일반관객에게 폭넓게 사랑받기보다는 마니아층만을 위한 맞춤형 장르에 가까웠다.

에로 사극이 에로티시즘이라는 원래의 미적 가치를 되찾은 것은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부터였다. 프랑스 작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에 끌어들인 영화는 전도연, 배용준, 이미숙 등 스타배우들을 동원해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한국 버전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영화 '미인도'
이번 <방자전>을 연출하고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을 쓴 김대우 감독의 데뷔작인 <음란서생>(2006)은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과 설정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음란소설을 쓰는 사대부 자제가 왕비와 불륜을 벌이는 과감한 상상과 희비극적인 결말은 고품격 에로티시즘의 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2008년 연말연시를 점령한 <미인도>와 <쌍화점>은 에로 사극 안에서 동성애 소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역사 속 실존인물인 신윤복이 실제로는 여자였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미인도>는 양성애적 코드로까지 나아가며 그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함께 신윤복 신드롬을 일으켰다. 반면 <쌍화점>은 그야말로 본격 동성애 영화를 표방하며 고려왕과 호위 무사의 사랑 등 역사를 흥미롭게 재해석해 상영 내내 이슈를 만들었다.

이에 비하면 <방자전>은 이런 에로 사극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원작 비틀기'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화의 매력은 정절과 정의, 충성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된 춘향과 몽룡, 방자의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전복시킨 데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는 '역사의 파격적인 재해석과 은밀한 성애사의 결합'이라는 에로 사극의 두 요소를 최대한 확대시킨 작품"이라고 평했다. '춘향전을 범하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광고 카피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무대 위 살아 움직이는 에로티시즘

반면 살아있는 몸의 에로티시즘을 보는 것은 스크린에 투사된 몸을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부터 선정성에 대한 입소문이 끊이지 않는 연극 <논쟁>과 <교수와 여제자>의 공연 중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다.

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심장질환을 앓던 50대 남성이 작품의 높은 수위에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가 하면, 동영상 촬영을 하다 극장 관계자에게 들킨 중년 관객도 있었다. 작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한 남성이 객석에서 무대로 뛰어들어 여배우를 껴안은 사건은 유명하다.

1994년 공연된 <미란다> 이후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잣대는 아직까지 '벗는 공연'마다 등장하는 오랜 주제다. <미란다>의 경우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 등으로 인해 연극 작품으로는 최초로 대법원으로부터 음란물이라는 유죄 판결까지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예술과 외설에 관한 기준 설정은 아직까지 설왕설래 중이다. 그런 잡음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해 한 작품은 여배우의 누드 출연 시간을 5분 더 늘리기도 했다.

최근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마광수'와 '이파니'라는 두 이슈메이커의 힘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원작소설 <즐거운 사라>의 주인공 사라와 젊은 마광수 교수의 섹스 판타지를 담은 이 작품은 축제 기간 중 대학교 교정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담고 있다.

언론과 평단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도덕보다 본능을 추구해온 마 교수는 이 작품에서도 성 판타지의 진수를 보인다. "학점만 잘 주신다면 다 드릴게요"라는 다소 전형적인 대사와 알몸 연기의 시너지는 여전히 남성 관객들에게 유효하다. 그 순간 관객은 마 교수가 의도한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양면성과 엄숙주의 비판'을 잊고 마 교수의 남성 판타지에 기꺼이 합류한다.

하지만 무조건 벗는다고 해서 외설이라거나 반대로 에로티시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벗는 연극'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연극 <논쟁>은 평단에도 호의적인 평가를 얻었다. 사랑의 욕망에 대한 역학관계를 조명하는 작품에서는 옷을 입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가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Ferenc Feh & eacute
또 무대에서 공연자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육체와 물질, 정신과 인격에 관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대공연예술의 중요한 흐름이기도 하다. 올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해외 초청작인 는 누드로 등장하는 남자를 통해 원시성을 표현해 관객의 눈을 끌었다. 마치 고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의 몸은 복잡미묘한 남녀 관계만큼이나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또 무용수들의 벌거벗은 몸을 스시로 표현한 <>는 마치 스시 식당에서 접시를 고르듯 관객들에게 12가지 시퀀스의 순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매일같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 같은 독특한 스타일은 관객들이 오늘날의 춤과 퍼포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Running Sushi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